자유를 배운다-황구지천변기행19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주말 아침, 황구지천 둑방길을 걷는다. 두터운 겨울 재킷을 벗고 나서니 봄이 먼저 와 있다. 까까머리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배운 영어 단어 ‘Spring’. 용수철처럼 솟아오르는 계절이라는 뜻이 실감난다. 윤슬 위에서 노니는 청둥오리들. 겨우내 눈길을 위로하던 단골 손님들이다. 물길 위의 진짜 주인은 그들인지도 모른다. 맞은편에서 마라토너들이 달려온다. “화이팅” 짧은 응원에 손을 흔들어 답한다. 말없는 인사지만 마음은 환하다. 한때, 나 역시 소양강변과 한강 둔치를 달리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녹슨 기차처럼 잠시 멈춰 섰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몸속에서 살아 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이 흐른다. 자유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선택이라고. 노예 출신이었던 그는 자유를 말했고, 절름발이였지만 누구보다 자유로운 정신을 가졌다. 내 안의 나를 지키는 것. 그것이 자유다. 문득 물길 위를 나는 청둥오리 십여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언제나 제철을 안다. 경칩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빛이 깨어난다. 대자연은 누가 지휘하는 것일까. 사유의 공간, 천변에서 걷는 이도 자유를 맞는다. 사방
경칩날에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 경칩이다. 만물이 약동하며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속에서 깨어난다는 때다. 개구리만 깨어나랴. 절기에 맞춰 날씨가 누그러지니 움츠렸던 내 몸도 절로 펴지고, 쭈그렸던 마음에도 생기가 돋는다. 자연의 섭리가 참으로 오묘하다. 가녀린 봄비의 빗살을 헤아리며 광교에서 용인으로 발길을 옮긴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봄맞이 여인의 자태가 참 곱다. 때이른 봄비 속에 스쳐 지나간 님의 모습처럼 휘리릭 흘러간 세월이 문득 무상하다. 젊은 날의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던가. 지구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쿵쾅거리는 소식에 금융시장이 시끌하다 싶더니 이내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 땅속 개구리들도 놀랐을 법하다. 녀석들의 속성처럼 금융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마음이 쓰인다. 행여나 하는 기대를 얹어 부평에서 지인과 두 장씩 사들었던 로또복권이 주머니 속에서 바스락거린다. 늘 꽝이건만 왜 또 사게 되는 걸까. 꽈당하기 전까지의 설레는 기다림, 그 값이 어찌 투자금액에 비하랴. 소시민의 행복이란 이런 것일 게다. 우리 삶 또한 늘 내일을 향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흘러 흘
바이오 뷰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우리 말로 옮기면 무엇이 될까. ‘바이오(Bio)’는 생명과 생물, 곧 살아 있음의 기술과 산업을 아우르는 말이다. 의학과 제약, 생명공학을 넘어 먹거리와 환경까지 포괄하는 미래 산업의 축이다. ‘뷰티(Beauty)’는 화장품, 피부 관리, 메이크업, 헤어 디자인, 네일 아트 등 외모를 가꾸는 미용 전반을 일컫는다. 두 단어를 합치면 결국 ‘생명에 기초한 아름다움’, 혹은 ‘생명력을 살리는 미용’쯤으로 풀 수 있겠다. 겉치레가 아니라 생명의 결을 돌보는 일, 그것이 바이오 뷰티의 속뜻 아닐까. 우연한 만남에서 이 분야에 눈길이 머물렀다. 헤어디자인이야 동네 이발소와 미용실을 한 달에 한 번 찾는 일상이니 낯설지 않다. 그러나 피부 관리, 네일 케어, 체형 관리 등 세분화된 미용 산업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고 넓다. 세상 흐름에 한참 뒤처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지인과의 만남 끝에 허리 마사지와 발톱 정리를 받게 되었다. 잠시였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시큰하던 허리가 풀리고, 발끝이 가벼워지니 마음까지 산뜻해진다. 허리는 상체와 하체를 잇는 연결부위다. 몸의 중심이자 균형의 축이다. 발은 공간 이동의 근원이다. 문명이 발달하며
콩콩 네몸짓 놀이와 가위·바위·보 놀이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놀이는 배움의 다른 이름이다. 교과서보다 먼저 다가와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깨닫게 하는 삶의 첫 스승이다. 반세기 세월을 건너온 이들이라면 마루에 둘러앉아 아가의 재롱에 웃음꽃 피우던 장면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게다. 도리도리, 짝짝꿍, 잼잼, 곤지곤지. 작은 손짓과 고갯짓 속에 우주의 질서가 숨어 있었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배우고, 손뼉을 마주치며 ‘관계’를 익히고, 손을 펼쳤다 오므리며 ‘의지’를 깨닫는다. 손끝을 짚으며 ‘존재’를 확인한다. 두뇌는 자라고 정서는 고요해지며 언어는 움트고 사회성은 싹튼다. 나는 이를 편의상 <콩콩 네몸짓 놀이>라 부른다. 마당자락 앞밭에서 콩깍지를 까며 콩콩 뛰놀던 기억, 강낭콩처럼 몽글몽글 여문 추억이 지금도 가슴을 두드린다. 먼 데서 오신 전문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몸짓들은 유아율동의 뿌리가 되어 지구촌을 향한 새로운 창작 춤사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등장할 유아율동이 또 하나의 한류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놀이, Rock–paper–scissors.
107주년 삼일절을 맞이해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올해의 3·1절은 107주년이 되는 날이다.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며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1919년, 한일합방(경술국치) 이후 침묵을 강요받던 백성들이 들고일어섰다. 이름 없는 민초에서 지식인, 학생과 상인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제에 항거한 거대한 물결. 그것이 바로 3·1운동이다. 이후 1945년 해방을 맞기까지, 나라를 되찾기 위한 처절한 독립의 서사는 쉼 없이 이어졌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할 역사다. 오늘의 세계는 다시 소용돌이친다. 동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소식은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게 한다. 국제정세는 빠르게 변하고, 강대국의 질서는 재편을 모색한다.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음을 역사가 증언한다. 식민의 시간과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우리는 불과 반세기 만에 기적 같은 도약을 이루었다. 배고픔을 견디며 산업화를 일궜고, 세계가 놀란 성장의 서사를 써 내려왔다. 그 바탕에는 면면히 이어온 민족정신, 지도자들의 통찰, 그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107주년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독립운동 정신 계승 의지를 밝혔다. 김동연 지사는 "107년 전 그날처럼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이 경기아트센터 광장에 울려 퍼진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등에는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가슴에는 저마다의 3·1정신을 새기고 ‘평화런’을 완주한 107명의 도민들과 함께 107주년 3·1절을 맞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중근 의사의 유묵 두 점과 순국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장탄일성 선조일본’, ‘독립’ 휘호가 소개됐으며, 조소앙 선생이 작성한 최초의 독립선언서인 ‘대한독립선언서’의 의미도 함께 되새겼다. 독립을 향한 선열들의 뜨거운 열망을 다시 한 번 새긴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 지사는 “일제의 탄압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의 가치를 지켜낸 선열들의 헌신을 기억한다”며 “오늘의 3·1정신을 국민주권의 실현과 평화, 번영으로 더 크게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눈의 행복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가방 속에 시집 한 권을 넣었다. 고(故) 김남조의 <심장>. 심장이 아프다 했으나, 오늘은 눈이 먼저 뛴다. 의정회 정기모임을 마치고 평생지기와 함께 동해 쪽으로 차를 몰았다. 지인의 부름으로 나선 길, 모처럼 바다를 향하는 여정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처럼 길은 늘 뜻밖의 선물을 숨겨 둔다. 수년 전, <한반도횡단소나타>를 쓰기 위해 화성에서 강릉까지 이백팔십 킬로미터를 걸었던 기억이 차창 밖 겨울빛 위로 겹쳐진다. 산과 들과 마을이 제 빛을 천천히 되찾는다. 눈에 생기가 도니 심신에 가벼운 날개가 돋는다. 도심을 벗어나서일까. 아니면 빛이 마음을 씻어주어서일까. 강릉. 대관령의 바람, 경포대의 물빛, 동해의 수평선. 고구려 때 ‘하슬라’라 불리던 고장, 큰 바다와 밝음을 품은 이름이 지금도 숨결처럼 살아 있다. 회의를 마치고 명함이 오간다. 이름 석 자가 손에서 손으로 건너갈 때마다 어느 시인의 구절처럼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온다. 한 사람의 일생이 건너온다.” 빛에 드러난 얼굴들.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행복. 길 위에서 마주친 자작나무 숲, 산허리에 흰 숨을
하루 수상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점 하나가 길을 내어 선이 되고 선이 서로를 감싸 안아 면이 된다. 그 단순한 이치 하나가 벽에 붙은 작은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고 마음에 매달려 한 달 내내 나를 즐겁게 한다. 면이 숨을 불어넣어 부피를 얻고 정육면체로 일어서는 순간 닫혀 있던 세계가 열리고 공간은 갈라지며 상상은 별들 사이로 번져 다시 하나, 둘, 셋 숫자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수학과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마를 짚던 소년은 어느새 여섯 마디 세월을 건너와 그 사유 속에서 번잡한 하루를 벗어 던진다. 오래 묵은 책장 속 곰팡내 밴 말들이 봄볕에 눈 뜬 씨앗처럼 유와 무로, 선과 공으로, 이와 기로 되살아나 옛 철인들의 목소리를 데려온다. 전철은 화성시, 고양시, 서울 충무로와 수원을 잇고 나는 눈을 감은 채 흘러가는 하루의 소리를 듣는다. 구순을 넘어 떠난 부모를 말하던 친구의 담담함, 명대사를 되뇌던 배우들의 웃음, 종친 원로들의 낮은 한숨— “살다 보면 알게 돼” 노랫말 하나가 차창에 기대어 흔들린다. 정육면체에 난 작은 홀, 불쑥 솟은 혹 하나— 그것이 내 삶의 흔적이고 너의 시간이며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하나, 두울, 셋 들꽃 한 송이가 피기
달하 노피곰 도다샤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오전 여섯 시 기상. 편도 오백여리,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길을 달려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으로 향했다. 간밤에 내린 눈발 탓에 길은 조심스러웠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웠다. 재정자립도가 도시의 살림살이를 말해 준다면, 정신문화는 그 고장의 품격을 드러낸다. 반만년의 시간과 고대 사국시대의 화려한 역사로 한반도 곳곳이 문화의 결을 지니고 있지만,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며 이어온 안동의 정신문화는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평생 선비의 몸가짐을 잃지 않던 군대 동기생이 문화원장으로 취임하는 날이기에 설렘은 더욱 컸다. 전임 원장의 발자취를 잇고, 미래 세대와 호흡하는 문화운동을 다짐하는 작은 거인의 모습에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축하객들의 박수가 잊혀진 선비정신이 깨운 듯 장내를 가득 채웠다. 청춘 시절 푸른 제복 속에 담았던 굳건한 국가관, 중·장년의 단정한 한복 차림으로 이어온 삶의 절제. 전쟁사 속 영웅이나 통치자가 아닌,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걸맞은 또 다른 작은 거인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동기 모임 때마다 지역 사랑을 담아 건네던 안동소주와 간고등어 꾸러미, 절제된 몸가짐 속에 배어 있던
소리와 입체공간 생성 알고리즘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명절 연휴 동안 일상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오래 붙들고 있던 화두는, 오감을 깨우는 놀이였다. 천재 발명가 박경화 씨가 이끈 <3·9, 소마, 펜토> 홀릭큐브 창의놀이를 체험하는 시간은 사유의 지평을 놀랍도록 넓혀 주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해 어린 백성을 깨우고자 했던 뜻을 떠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손자국에서부터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화성 탐사에 이르기까지 생각은 거침없이 확장되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속 기호와 형상, 일상에서 들려오는 동물의 소리, 정월 대보름의 윷놀이, 그리고 수원화성 봉화대의 신호 체계까지 — 인류는 점과 선과 면, 몸짓과 소리와 구조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신호였던 소통은 이제 과학과 통신 기술을 만나 시공을 넘어선다. 소리 생성의 알고리즘은 훈민정음에 있다. 스물네 자모가 결합해 1만 4천여 음절을 만들고, 사라진 네 글자를 복원하면 1만 5천여 음절로 확장되는 이 구조는 단순한 문자의 차원을 넘어선 질서다. 발성 기관을 본뜬 자음과 천지인의 원리를 품은 모음이 만나 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