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관상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온 세상이 AI 이야기다. 정부 정책을 비롯해 산업, 교육, 언론, 예술 등 사회 전 분야에 AI의 물결이 거세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마주하게 하는 변화다. AI는 인간의 학습과 추론, 문제 해결 같은 지적 능력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데이터를 학습하고 분석하여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고, 음악을 만들며 사람의 일상과 업무까지 돕는다. 교육박람회장이다. 여러 강의를 듣다 보니 머리가 다소 띵해 이리저리 부스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AI 관상이라는 부스에 눈길이 멈췄다. 그런데 어느 부스보다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호기심에 필자도 그 줄에 섰다. 사주와 관상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앞에 ‘AI’라는 말이 붙으니 왠지 더 궁금하다. 첨단 장비로 얼굴을 분석하더니 세상에 둘도 없는 복이 발견되었단다. AI가 알려주는 나의 관상, 나의 복이다. 뜻밖에 AI 홍보대사가 된 셈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나를 알아가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런데 AI는 요술램프처럼 잠깐 사이 나를 분석하고 몇 마디로 설명해준다. 참 편리한 녀석이다. 온종일 이 부스 저 부스를 오가며 강의를 듣고 체험하다 보니 오후녘에는 몸이 천근만근이
아침의 향연-천변기행54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아침에만 만날 수 있는 산책의 환희겠다. 아침햇살이 참 곱다. 고운 햇살에 풀냄새가 피어난다. 오후 산책에서 맡는 풀냄새와는 사뭇 다르다. 그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밤새 시름을 내려놓고 고요 속에 몸을 푹 담갔으니 풀잎마다 새로 태어난 듯 신선하다. 올망졸망 참새떼가 화르르 나뭇가지에 날아든다. 마치 나뭇가지에 참새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듯하다. “째째째…” 까치 소리에도 다른 생기가 묻어난다. 비둘기 비행단이 하늘을 가르고, 물길에는 백로들이 고요히 서 있다. 저마다 제멋의 아침을 맞는다. 이슬 머금은 벼포기, 들깨, 고구마, 콩, 도라지……저마다 아침 기운에 생생하다. 나팔꽃, 메꽃, 달맞이꽃……맑은 보랏빛, 핑크빛, 노란빛 마저 아침의 빛깔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시각이 깨어나고, 청각이 깨어나고, 후각이 깨어난다. 그렇다면 미각의 아침은 어떨까? 바람결에 피부의 촉감은 또 어떠한가? 오감이 하나씩 깨어나는 아침. 대자연이 차려놓은 한바탕 향연이다. 아침의 빛깔, 아침의 소리, 아침의 냄새, 아침의 맛, 그리고 살갗에 닿는 아침의 감촉……선연한 몸기운. 오감으로 떠나는 아
들숨과 날숨-천변기행53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고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른 호흡법이라 한다. 그렇다면 달릴 때의 호흡은 어떨까? 달리다 숨이 차오르면 코와 입을 함께 이용해 깊게 숨을 쉬고, 발걸음에 맞춰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라 한다. 처음에는 의식하며 달린다. 하나, 둘, 셋, 넷…. 들이쉬고 내쉬며 발걸음과 호흡을 맞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호흡과 발걸음이 하나의 리듬이 된다.
코스모스-천변기행 52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이른 아침, 동문아파트단지 뒷길에 코스모스 씨를 뿌리기 위해 자원봉사단원들이 모였다. 코스모스. 생각나는 말이 많다. ‘코스모스(Cosmos)’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우주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가을의 대표적인 꽃이기도 하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그 책을 바탕으로 한 13부작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는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으며, 미래에 있을 그 모든 것이다.” 그 문장이 다시 의식의 울 안을 맴돈다. 몇 날을 붙들고 긴밤을 지새 였던가. 막막한 우주를 떠도는 상상의 즐거움이 있었다. 고속으로 팽창하는 우주를 생각하다 보니 어린 날 바람개비를 들고 온 힘을 다해 달리던 날들이 떠오른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그런데 휴일 이른 아침, 사람들은 코스모스 씨앗을 한 알 한 알 땅에 묻는다. 그 손길이 참 고맙고 기쁘다. 며칠 전에는 황구지천변 유휴지에도 코스모스 씨를 뿌렸다 한다. 가을이 오면 천변 가득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그 꽃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리라. 한들한들. 꽃이 흔들리는지 바람이 흔들리는지. 바람결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그 모습이 벌써 눈앞에 달려온다.
내가 나를 모른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릴 적 또래들과 동네 공동 우물터에 놀러 가곤 하였다. 논 가운데 파놓은 우물터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하며 동네 대소사를 나누던 곳이었다. 말하자면 동네의 소식이 모이고 흘러가던 작은 광장이었다. 어느 날 허리를 굽혀 우물 안을 들여다본다. 물 위에 비친 내가 나를 바라본다. 언뜻 스친 또 다른 나. 보는 나와 비친 나,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 요즈음 문득 그때의 나를 자주 만나는 듯하다. 나는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세월만 화살처럼 날려 보낸 것은 아닌가! 누군가 나를 향해 “너”라고 부르니 비로소 내가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일까? 두 눈에 세상이 들어오고, 밤하늘의 별빛마저 들어온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는 것인가? 서늘한 기운에 젖은 산자락의 고요 속에도 말없이 내가 있는 것인가? 한 글귀 속에 내 안의 나를 욱여 넣으려 애쓰다 보면 가끔 그 나를 만난다. 의식의 울타리는 생채기 투성이다. 그 안 깊숙이 숨어 있는 나를 끄집어 내려니 몸과 마음의 고통 또한 여간하지 않다. 광막한 우주도,망망한 바다도 어쩌면 내 울 안이다. 그런데 나만 있으랴! 너도 있는 것이
아, 구름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여느 때와 달리 이른 아침 산책길에 걷고 뛰는 분들이 많다. 한낮의 열기를 피해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깨우려는 게다. 축사 곁을 지나니 강아지풀이 산들거리며 마음에 하얀 반달을 그린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모녀의 모습도 환하다. 상큼한 기운으로 아침을 열고 수원 영통을 지나 푸른 한강을 건너 대학을 거쳐, 2호선 순환전철에 몸을 싣고 강변 풍광에 젖어든다. 시청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병점역으로 귀환이다. 뜨거운 열기에 빙수가 생각나 평생지기를 호출한다. 주말의 여유일까? 자동차 도로에 올라서니 황구지천 위 허공을 가르는 고가도로 너머 서녘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다. 햇살을 타고 눈꽃보숭이를 피워 올린 구름, 마치 푸른 대해에 떠가는 비행체 같다. 아, 구름아!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아리아리한 감정이 가슴에서 타오른다. 아, 꿈에도 못 잊을 여인아!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여인아! 여인을 대신하는 것이 오늘은 저 구름인가. 젊은 날의 환희, 자연의 울음, 이 모두 내 안의 울림이요 우주의 섭리에 이르는 마음이려. 이른 아침 산책길에 문득 작은 생명들과 나눈 밀어가 언뜻하다. 얼마나 기다려 만났기에 그리 환하니?
도서관의 한낮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40도에 이르는 폭염이다. 집안의 열기도 34도를 웃돈다. 시쳇말로 열불이 날 지경이다.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영상 제작을 홍보하려 컴퓨터 앞에 앉으니, 그야말로 땀줄기가 내를 이룬다. 대충 챙겨 들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1층에 들어서니 지팡이를 짚은 동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따금 책을 펼쳐 들고 한담을 나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피서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노트북 사용실에는 방학인데도 학생들이 이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열공 중이다. 행운처럼 가운데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역사 공부, 수학 문제 풀이, 영어 학습…. 저마다 자기 몫의 시간을 성실히 채우고 있다. 문득 반세기 전으로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 동네 잿마당.큰 느티나무 한 그루 아래 풀지게 두어 개, 장기판 하나. 옥수숫대 동강을 손에 쥔 채 런닝셔츠 차림의 꼬맹이들이 뛰놀던 풍경이다. 세월이 무려 50년 흘렀다. 느티나무 그늘은 도서관으로,들바람은 에어컨으로,옥수숫대 동강은 아이스크림으로,라디오는 휴대폰으로,장기판은 게임기로 바뀌었다.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대핫민국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날이 얼마나 뜨거우면 ‘대핫민국’이라 비유했을까 생각했는데, 줄줄 흐르는 땀줄기에 그 생각마저 멎는다. 높은 곳에 사는 덕에 별 어려움 없이 올여름을 지나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열기가 여간 아니다. 마치 사막의 열기를 한반도 상공에 통째로 덮어씌운 듯하다. 아내 성화에 전기세를 아끼느라 웬만한 후덥지근함은 선풍기와 창문을 열어 견뎠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찜통 같은 더위다. 사흘 후면 입추건만 절기를 잊은 것일까? 이상기후 탓일까? 한서린 매미 소리만 여름을 증명하듯 요란하다. ‘핫(hot)’은 영어로 뜨겁다는 뜻. 그러니 ‘대핫민국’이라 부른 뉴스 앵커의 비유가 절묘하다. 그렇다면 ‘한(寒)’은 어떨까. ‘핫’의 상대가 ‘쿨(잘난척)’이라면 올겨울은 혹시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大寒)민국’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삼한사온이 무색해진 한반도의 날씨다. 아니, 이제는 지구촌 곳곳이 이상기후와 천재지변으로 몸살을 앓는다. 섬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과실에도 문제가 크단다. 몇 번이고 냉수마찰을 하고 집 안에서는 웃통까지 벗어보지만 더위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꿈의 하루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둠에 잠긴 창가에서 창밖 저 멀리 비비적거리며 산자락을 밝히는 한 점 꿈꾸는 불빛을 바라본다. 꿈, 잠잘 때 꾸는 정신적 현상이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을 뜻하기도 한다. 한겨울, 어린 시절 꿈을 꾸다 이불에 오줌을 싸 부모님께 야단맞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게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예전만큼 흔한 일이 아니다. 꿈과 무의식, 그리고 성장의 관계가 새삼 궁금해진다. 성인이 되면 꿈은 또 다른 얼굴을 갖는다. 태몽이 그렇고, 때로는 신변의 징조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설화 속에서도 꿈은 빠지지 않는다. 건국설화나 영웅의 탄생에는 태몽이 등장하고, 우리의 일상에는 돼지꿈, 용꿈 같은 이야기가 익숙하다. 꿈은 노래가 되고, 소설이 되고, 건축물과 공간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꿈의 대화, 상사몽, 구운몽. 꿈의 궁전, 꿈의 다리, 드림랜드….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문득 묻는다. 무엇을 꿈꾸는가? 외로움도, 서러움도 없는 꿈속에서 나누는 마음의 대화처럼, 꿈은 어쩌면 현실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반시간쯤 앉아 내 안의 나를 가만히 안아 든다.
동네 한 바퀴―천변기행50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새길수록 의미로운 동요다. 저녁 어스름, 서늘한 기운을 맞으려 단지를 나선다. 둑방길을 타고 논둑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단지로 돌아드니, 동네 한 바퀴를 돈 셈이다. 어느새 벼포기도 든실해졌다. 몸통이 제법 불었으니 곧 이삭이 팰 모양새다. 때가 되면 제 모습으로 피어나고 결실하는 것, 생명에 깃든 본연의 이치일 게다. 아파트단지로 가까워질수록 불 밝힌 창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쉼터의 환한 불빛을 따라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진다. 둑방길, 논둑길, 개울길을 지나 다시 단지 안 뜰로 돌아오는 길. 입가에는 동요의 가락이 흐르고 발걸음에는 그 정감이 이슬처럼 맺힌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어느 한 낱말도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로 이어지는 말들도 창가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처럼 감성을 적신다. “너도 나도 일어나.” “일어나라 아이야.” 모두가 희망의 노래다. 함께 일어나고, 함께 걷고, 함께 살아가자는 공동체의 하모니인 게다. 오전에는 지인의 혼사를 축하하고, 시골 동네에서는 복달임의 정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