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와 철수 이야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느 수필가의 수필집 출간에 보탬 글이다. 어릴적 귀에 익은 소꿉 동무 아이들 이름이다. 작가의 이름 탓일까? 정감이 어울려 주방을 시작으로 한 발 두 발이 장롱, 창가, 뜰, 장터로 뻗어나며 어린시절부터 중.장.노년에 이르도록 둥그런 나이테에 담긴 즐거움이 몽글몽글하다. 멈칫한 여린 글발이 어느 새 수년간 쌓여 사방이 탁트인 고개 마루에 올랐다. 그 환한 얼굴을 세상에 내민다니 축하받을 일이다. 작가의 다정한 오감이 자연에 닿아 제빛깔 제멋이 생생하다. 작가의 섬세한 필력 덕택에 유년 시절, 마을 앞 도랑에 고무신 뱃놀이도 서너번이요, 윤초시네 증손녀에 건네려 대추나무에도 몇번을 올랐다. 시골집 봉당에 햇살이 또아리 틀어 동짓날 입맛 돋울 무청도 바삭하다. 히스테리려나?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에 이따금 세상의 틈새를 비집어대 무디어진 감각이 깨어나 필자의 흐릿한 눈길도 바로 하게 되는 자경문을 만나기도 한다. 작가 내면의 말타래가 때론 겉저리로 때론 묵은지로 입맛을 돋우니 어찌 평하랴! 수수한 차림새의 우리네 맘인게다. 그래, 그렇지 무릅을 어루기도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니 말이다. 분주한 일상에 작가의 언론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있다지만 시끌한 대선 정국을 들여다보면 위 글제는 승패에 영향을 끼칠만한 경구다. 어찌 대선 후보들에게만 해당하랴! 범부도 제집 울을 넘어서 사회활동을 하려면 가족들도 인정할 평소의 바른 몸가짐이 우선이다. 평소의 폭음, 허언, 위선, … 등 그릇된 품행으로 모습이 얼룩하다면 가족들 조차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감증인가? 무관심인가? 지금껏 바삐 살아오느라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어떤가?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된 국운을 가를 대전중이다. 두 눈 부릅뜨고 두 귀를 활짝 열어야 할게다. 활을 잘 쏘는 방편으로 익혀야 할 ‘비정비팔’ 자세다. 출사에 앞서 연단해야 할 ‘수신’에 비유될테다. 나름 체화했을까? 모로가도 한양에만 입성하면 되는가? 활시위 떠난 화살은 과녁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으니 누가 ‘관중’이요 환한 소리를 들으려나? 과연 이번 대전에서 어느 런너를 선택할까? 귀를 기울이자. G7에 이를 분야별 훌륭한 공약도 넘쳐난다. 평소의 정치인의 언행이 신뢰의 척도다. ‘수신제가’에 흠결이 있으면 배에 힘주어 말 할 수 없을테요, 그저 소음이
날 보러 와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외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울적할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서러움을 잊고 웃어보아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방긋한 웃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율동이 생각난다. 한편,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꽃”을 비유한 ‘나’의 성찰을 낳는 시 구절이다. ‘너’가 ‘나”요 ‘내’가 ‘너’인거다. 늘이면 ‘나’는 ‘우리’로 깊어가니 자연이며 우주인게다. 살피면 키워드는 믿음과 소망을 품은 이 세상에 제일인 ‘너와 나’의 ‘사랑’이다. 요즘 돌아가는 대선정국에 세간의 전언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진즉 길 떠난 야권은 포장된 상품이 ‘가시는 걸음마다’ 순행(?)인가? 여권은 와글와글 할 장터에 채 보부상들을 틀어 쥔 기존 거상들이 존재감(?) 탓에 긴 채비를 한다 싶다. 이어달리기 바톤을 넘긴 러너들이다. “날 보러 와요” 손짓하니 가야 할게다. “~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애타게 부르니 응답할게다.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달려라 냇물아, 괴로움 다 잊으시고, 우러러 볼수록”, 누군들 부르지 않았으리! 그 기본
뉘 부르는 소리있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발을 멈춘다~”. 멈추니 탁트인 사방이 환하다. 매번 걷는 황구지천 둑방길이나 저마다 차오르는 생명력에 감응하는 눈길이 시원한 탓에 자연이 연출하는 신비에 감탄 또 감탄이다. 엊그제, 봄처녀 제오시더니 그새 그 여린 잎새들이 품을 넓혀 온 세상이 푸르릇 하다. 어제와 다른 자연의 ‘일일신(日日新)’하는 환한 모습에 내 맘 또한 새롭나니 ‘우일신(又日新)’하라며 다그치시던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든다. 연일 분주한 두 발길이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난파음악제 관람을 위해서다. 매년 하는 발길이나 여느 때와 다르게 조용한 진행이다. ‘나요’ ‘저요’ 시끌한 거리를 걸어가다 저만치 뉘 부르는 소리가 있어 한생각이 내 안에 들어서 발을 멈춰 선 게다. 사회자의 맛깔스런 진행과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성악가, 국악인들의 제몸짓과 천정에 닿은 고운 제소리에 음악회 1.2부의 골물이 깊어간다. <봄처녀>,<꽃구름 속에> …,<예전에 미쳐 몰랐어요>, <고향의 봄>, …<얼굴>, <장안사>, <금강에 살어리랏다>로 분위기를 돋워내니 절로 장중한 박수소리
일송정 푸른 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두 팔 뻗은 통쾌함이여! 여야의 이어달리기 러너의 최종 선발이 끝났다. 진즉, 야권은 선발이 끝나 저만치로 나아갔다. 그를 의식한 탓일까? 여권은 우당탕 우당탕 하다가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더니 긴 세월 눈비 맞아온 꼿꼿한 러너로 ‘실수’를 최종 선발했다. 최근 며칠동안 대선 정국에 일어난 초유의 사태에 대해 여.야의 러너들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예 통째로 정치권이 날아가나 싶어 정치평론이 제멋대로 홍수를 이루었다. 단기간내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켜 심모원려한 여권 수뇌부의 전략인가? 아니 두 손모은 ‘허수’의 장렬한 옥쇄려나? 국민적 양심과 사랑이 두 눈 부릅뜨고 두 귀 활짝 열어 ‘정’과 ‘당’이 들불처럼 번져나가 자유대한이 ‘정정당당’했다. 모두가 그리 배웠고 가르치며 살아온 노.장년층도, 꿋꿋하게 살아갈 청춘들도 뜨겁게 박수 칠 일이다.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그 언제 인가? 3류 정치수준이 퀀텀도약할 청신호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양자정부’ 등 시대변화에 따른 지구촌의 각축이 가파르다. ‘한강의 기적’에 이은 다시 한번 지구촌에로 비상을 위해 너도 나도 ‘정직’으로 공
어버이날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버이날에 고요한 맘으로 새겨본다. 오래전 교실에서 카네이션 꽃 달은 어머니 앞에서 참새떼처럼 목청 돋우던 <어머니 마음>(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이다. [어려선 안고 업고 올려주시고 자라선 문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 없어라] 그 아이 자라나 강호에 발 들이니 <백로가>처럼 세상의 어머니 마음이여.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그리 세상이 만만한가? 아,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긴 한숨에 소주병 꽤나 쌓았으니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 낳을라거든 잘 났거나 못 낳으려면 못났거나 살자 하니 고생이요 죽자하니 청춘이라] 타향살이 십여년에 철들어 <어머니> 생각이려.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백날을 하루같이 이 못난 자식 위해 손발이 금이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 몸만은 떠나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 울엄마 생각나는 <홍시>인가? 시린
실수((實數)와 허수(虛數)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실수는 실제 존재하는 수(Real number)이고, 허수는 상상 속의 수(Imaginary number)이다. 수 체계는 자연수로부터 차곡차곡 쌓아 정수, 유리수, ‘실수’, 그리고 다른 한편의 ‘허수’와 어울려 복소수를 구성한다. 학창시절 배운 바 있으나 가물가물하다. 새삼스레 더듬대며 글제를 언급하는 것은 정치권에 때 아닌 셈법이 등장한 까닭이다. 그간 정치권은 온 국민을 환경운동가, 의사, 법률가, 전위예술가로 변신케 하더니, 요즘엔 머리 아픈 수학공부를 시키나도 싶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가상 대결의 여론조사의 수치 발표가 그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주체, 기간, 방법, 내용에 따라 천양지차이기에 작위적인 조사는 세간에 정서적 공감을 이루기가 실로 어렵다. 더우기 검증된 실상과 가상한 허상과를 비교하는 조사라면 그릇된 여론을 생산할 여지가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모름지기 통치자에겐 백성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젊은 날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경험과 집념어린 사회화 과정이 필수 자격 요건이다. 이를 바탕해야만 어린 백성을 위한 경륜, 철학, 비젼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하여 ‘나’의 존재감
오늘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어린이날이자 부처님의 탄생을 맞아 그분의 가르침을 새김하는 날로 즐거운(?) 공휴일이다. 의미를 새김질하기에 앞서 꽉 짜인 계획표에 묶인 아이들과 분주한 직장인들이 둘러맨 가방을 내려 놓은 날이니 저마다 울불긋한 맘이 하늘에 붕붕 날거나 아예 온종일 초막(?)에 누워 뒹굴뒹굴한 허리운동이 그만인 날이겠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주름살 펴져라”,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지키랴….”,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 다정한 노래들이 한 둘이 아니건만 키가 한뼘 두뼘 훌쩍 자라며 세월의 긴 도랑을 건너 여섯마디 이르는 동안 익힌 그시절의 노래들을 읊조리며 글제를 수상하는 오후 나절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가 참 좋은 노래란 생각이 든다. 한편,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을 지나 종심(從心)에 이르면 걸림이 없다지만 채 세상사에 맘이 끓는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강릉, 옥계에 가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화성에서 출발해 오산, 용인, 광주, 양평, 횡성, 평창, 강릉에 이르는 여정이다. 밖에 비가 내리는 을씨년스런 날씨 탓에 차안에서 군것질이 그만이다.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을 이유로 가족나들이다. 십여년전 한여름, 화성에서 강릉까지(한반도횡단) 280킬로미터 거리를 8일간 도보로 홀로 여행한 적이 있다. 장맛비를 피하려 발길을 재촉하던 그때의 여정과는 달리 맘이 여유롭다. 정체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건만 운무가 더불은 ‘산야제색’의 운치마저 산뜻하다. 짧은 생각인가? 예전과 달리 강원도는 수도권으로 뻗는 물줄기에다 싱싱한 채소공급, 수려한 풍광, 너른 목초지, 해변가 힐링터로 년중 발길이 모여드는 등 복받은 생활터전이다 싶다. 화성지역내 동탄뜰과 안녕뜰에도 ‘청계’, ‘은계’, ‘황계’가 흐르는 까닭인가? ‘옥계’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마음이 다정하다. <제1회세계커피축제>가 열리는 옥계다. 전국 ‘사투리대회’를 여는 등 애향심이 유별난 동기가 정성껏 마련한 해변축제다. ‘정동진’에 비견하는 별호를 지닌 품이 넉넉한 ‘서동진’, 그 동기의 ‘강원도래요’ 구수한 사투리가 대굴대굴 사방으로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여.야의 러너들이 출발선에 속속 다가선다. 야권은 진즉 러너가 결정되었다 싶고. 여권은 선발 3차전에 들었다. 예비러너 중 한 분에 대한 데생이다. 뜨거운 ‘사나이 눈물’을 그 누가 알랴? 수십여년전 ‘모래시계 검사로 세간에 명성을 드높여 정치권에 발길을 들인 분이다. 빨간 능금알 같은 시골아이 얼굴로 촌철살인의 어휘 구사로 한여름의 청량제, ‘홍콜라’의 별호를 지닌 그가 이어달리기 바톤을 힘차게 다음 러너들에게 넘겼다. 주먹계에 비유컨대, 계파에 휩쓸리지 않은 시라소니 같다고나 할까? 허공을 가르는 그의 날랜 행동과 당찬 목소리를 세인들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오늘에 이른 ‘자유대한호’를 이끈 용장이 아닌가? 바톤을 넘기고 시골장터에서 백성들과 어울릴 생활인으로 돌아간다고 하나 세상은 ‘그 어느 날 오후’에 지기와 천기가 젖어들쯤 그가 그리워 다시 불러 낼지 모르겠다. ‘죽어도 아니 눈물흘리오리다’던 그 진달래 핀 영변 약산에로 달음박질이다. ‘애이불비’, 그런 속울음인들 자유대한을 향한 사나이 뜨거운 눈물에 어찌 비견하랴! 그가 쌓은 정치적 자산이 21세기 격동의 정치사에 보태지길 간절히 희망한다. 여.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