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달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초복을 나흘 앞두고 고교 동창들과 복달임 자리를 함께했다. 예부터 복달임 음식으로는 보신탕, 삼계탕, 매운탕 등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그 가운데 보신탕은 내년 2월까지만 판매가 허용된다고 한다. 마지막 시절을 앞둔 음식인 만큼 식탁에는 저마다의 추억과 이야기가 피어오른다. 세간의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한 시대의 음식문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니 아쉬움 또한 적지 않다. 사람 곁에는 언제나 개가 있었다. 달밤 산책길을 함께하던 검둥이도 있었고, 집에 들어서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던 복실이도 있었다. 밤손님을 막아 주던 풍산개와 진도개처럼 용맹과 충성으로 이름난 개들도 떠오른다. 무엇보다 삶 속에 스며든 이야기들이 더 정겹다. '답싸리 밑에 개팔자', '개만도 못한 놈' 같은 속담과 표현에는 우리네 생활문화와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날 반려견은 목줄과 이름표는 물론 미용, 간식, 전용 침대, 요양과 간병까지 받으며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시대가 변하면서 개를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 한편 누렁이, 검둥이, 복실이처럼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이름의 개들은 복달임의 계절이면 사람들의 보양을 위해
열두 켤레 구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댓돌 위의 신발은 방 안에 사람이 들었음을 알리는 표식이다. 봉당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가족의 신발은 물론 손님이 오시면 신발 머리를 바깥으로 돌려놓아 다시 신기 편하도록 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다. 신발은 주인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신발 위에 다른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거나 가지런하지 않으면 아버님께 꾸중을 듣곤 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집들이나 손님을 맞을 때면 먼저 신발부터 살피게 된다. 오늘 초저녁, 열두 켤레의 구두가 마포종점에 모였다. 3년 후면 입학 50주년을 맞는 큰 배움터 동창들의 모임이다. 한때 생기 넘치던 푸르름은 어느새 원숙한 품격으로 익어 있었다. 기업과 금융, 조선, 의류, 예술, 언론, 정치 등 저마다 다른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국내는 물론 바다 건너까지 삶의 무대를 넓혀온 벗들도 있다. 열두 켤레 구두가 지나온 길을 점묘법으로 한 폭의 그림에 담는다면 얼마나 깊은 풍경이 될까. 몸짓도, 말투도, 생각도, 체중도, 나이도 모두 변했다. 외모뿐 아니라 정신도 세월을 품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이고, 가정의 어른이며, 사회의
망향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눈물 어린 인생 고개 몇 고개이더냐.” 현인 선생이 부른「비 내리는 고모령」3절의 첫 소절이다. 어릴 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라 귀에 익었다. 뜻은 몰랐어도 가슴 저릿한 멜로디에 젖곤 했다. 인생길 예순 후반을 넘어선 분들이라면 대개 꾀죄죄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비 오는 날이면 으레 허리띠를 졸라맨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고, 빈대떡이 놓인 소반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정을 나누곤 했다. 연신 지하차도 통행이 금지되고 열차 운행이 지연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카톡방에는 물난리로 서울 모임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동기들의 전언이 이어진다. 수원과 서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빗줄기는 더욱 거세다. 우주의 소리여서일까, 빗소리 때문일까. 마음골에 빗물이 물길을 이루어 잡동사니 같은 생각들을 휩쓸고 지나간 뒤, 환히 맑아진 물가처럼 세사에 시달리던 두 귀가 문을 닫고 고요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한다. 인생길 구비구비 돌아 나올 때 부엉이만 울었으랴. 빗소리는 대자연의 섭리이자 우주의 소리인 게다. 그 소리에 생명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니 이 또한 환희가 아니겠는가. 망향가는 저마다의 인생길을 노
도인(道人)-천변기행43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도인은 진리를 깨우치거나 도(道)를 닦는 사람을 이른다. 불교와 유교, 도교를 비롯한 동양사상에서 두루 쓰이는 말이다. 세속의 욕심을 덜어 내고 스스로를 갈고닦아 바른 길을 걷는 사람. 말은 쉽지만 실천은 가장 어려운 삶의 이름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이 너무도 가볍게 쓰인다. 누군가를 치켜세우는 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비꼼의 표현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전통의 품바타령마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SNS를 타고 세상을 풍자한다. 도는 평생의 수행인데도, 인스턴트 감정의 욕탕 속에서 말 몇 마디로 하루아침에 도인을 만들어 내는 세상인 듯하다. 뚝방 산책길, 뜨거운 햇살을 묵묵히 견디는 들풀과 벼를 바라본다. 누구에게 보이려 애쓰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계절을 이겨 낸다. 요란한 저잣거리보다 산과 들이 먼저 스승이 되는 이유다. 사람 또한 타고난 환경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의지 속에서 도를 닦는다. 인생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을 이겨 내는 수행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철들면 죽는다'는 옛말도 어쩌면 끝없는 배움과 성찰을 일깨우는 역설일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스스로 도인이라 하지 않아도 남들이 쉽게 도인의 이름
무궁화 – 천변기행 42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모처럼 한 시간 남짓 몸을 울렸다. 여느 날의 느린 산책 대신 물병과 간식을 허리춤에 챙기고 천변 둑길을 달렸다. 보폭을 가다듬고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며 천천히 나아가자 활짝 핀 무궁화가 길게 이어진다. 무궁화. 삼천리 강산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꽃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묵묵히 피어난 모습이 새삼 반갑다. 얼마쯤 달렸을까. 도로를 가로지르는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헉헉거리며 달리는 내 발걸음과 달리, 달팽이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다. 문득 김제현 시인의 「달팽이」가 떠오른다. '조금도 서두름 없이 전속으로 달리고 있다' 그 한 구절이 시간을 잠시 멈춰 세운다. 그늘진 다리 아래를 지나며 달아오른 몸을 식힌 뒤 다시 햇볕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맞은편에서는 젊은 청춘이 바람을 가르며 달려온다. 냇가에는 부쩍 늘어난 백로들이 흰 날개를 펼치고, 가마우지와 왜가리 사이에서 순백의 자태를 뽐낸다. 며칠 전 내린 비 덕분에 녹조는 한결 잦아들었고, 천둥오리의 모습도 줄어들었다. 비 개인 천변은 유난히 맑고 청초하다. 가시박과 칡덩굴은 길가까지 뻗어 나오고, 생태계 교란종인 도깨비별꽃도 환하게 피어 있다.
터널을 지나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충주로 가는 길이다. 한낮의 열기를 피해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구순 중반에 이른 장인을 찾아뵙기 위함이다. 한반도의 중원을 향해 달린다. 천오백여 년 전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역사의 중심지다. 말발굽 소리가 바람을 가르던 옛길을 떠올리며 화성과 안성을 지나 충청도에 들어선다. 간밤을 설친 탓에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조수석에 몸을 기댄 채 이내 잠이 들었다. 몇 번이고 오갔던 길이라 마음도 한결 느긋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눈을 떴다. 어디쯤인지 분간도 되지 않은 채 의식은 몽롱하다. 사방은 회색빛에 잠겨 있고, 두 줄기 빛이 하나의 문처럼 다가온다. 마치 어둠 저편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한 풍경이다. 간밤에 접했던 양자역학과 의식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탓일까?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잠시 뒤섞인다. 이윽고 눈앞이 환하게 열렸다. 푸른 하늘과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제야 터널을 빠져나왔음을 깨닫는다.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일도, 터널을 지나 다시 빛을 만나는 일도 어쩌면 의식이 또 하나의 세계를 거쳐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인지 모른다. 삶은 그렇게 크고 작은 터널을 지나며
분꽃 ㅡ천변기행41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온종일 화성 동서남북 문화기행 상영 장소를 살피고 영화제 행사 준비를 위해 동서를 오간 끝에 무거운 발걸음을 저녁 둑방길에 내려놓는다. 낮의 열기를 식혀 주는 시원한 바람이 하루의 피로를 어루만진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개미들이 줄지어 오간다. 눈여겨보니 블록 틈새 작은 구멍으로 쉼 없이 드나든다. 제 몸집 길이에 비하면 수십 배는 될 사각 블록을 눈 깜짝할 사이에 건너는 모습이 경이롭다. 둑방길을 천천히 달리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시간의 속도다. 저 개미가 수개미 327호인지 암개미 56호인지 알 길은 없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개미』가 떠오른다. 잠시 그 상상의 세계에 동승해 본다. 산책길 초입에는 분꽃이 피었다. 해가 지면 꽃잎을 열어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아침이면 스스로 꽃을 거두는 분꽃(Mirabilis jalapa). 서양에서는 '밤의 미인(Marvel of Peru)'이라 불리는 꽃이다. 달빛 아래 더욱 빛나는 그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녀석을 만나러 다시 이 길을 걸어야겠다. 황금빛 술잔을 닮은 금잔화도 저녁 바람에 몸을 맡긴다. 금계국의 계절을 이어받으려는 듯 길게
헉헉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헉헉." 마라톤 결승선을 눈앞에 두었을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숨소리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도, 온 힘을 다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도 같은 소리가 난다. 무더운 날씨까지 겹치면 이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진다. 그만큼 힘겨운 여정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헉헉'거림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숨소리는 완주의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는 전주곡이다. 수십 차례 마라톤을 완주하며 나는 거친 들숨과 날숨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깊이 느끼곤 했다.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사회 역시 '헉헉'거리고 있는 듯하다. 말없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7월 1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출발에는 새로운 다짐이 따라야 한다. 미흡한 관리와 공정성에 대한 의문은 시민들의 신뢰를 흔들고,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국민과 시민의 행복은 상식과 공정이 살아 있는 사회에서 비롯된다. 오랜 세월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온
싸리꽃 – 천변기행 40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화성 동서남북 문화기행의 일환으로 물길 화성 중남부 발안천을 답사했다. 지역 원로 사학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오후, 천변 뚝방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예로부터 물길은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생명의 통로였다. 물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교육과 종교, 장터가 자리 잡으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꽃피었다. 그래서 물길을 걷는 일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역사를 읽는 여정이며, 고향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뚝방길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싸리꽃이었다. 예년보다 이르게 피었고 꽃 모양도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개천 둑이나 집 울타리에 싸리나무를 흔히 심었다. 질기면서도 유연한 성질 덕분에 지게 바수거리와 빗자루를 만드는 데 쓰였고, 어린 시절 잘못을 하면 종아리에 자국이 남도록 맞던 회초리이기도 했다. 싸리꽃 한 송이가 잊고 지냈던 삶의 풍경을 불러낸다. 조금 더 걷자 보랏빛 도라지꽃이 밭 한가운데 피어 있었다. 깊은 산이 아니라 들녘에서 만난 도라지라 더욱 반가웠다. 며칠 뒤면 온통 보랏빛 꽃으로 물들 것만 같았다. 한두 뿌리만 캐도 바구니가 가득 찼
아, 좋구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헤 디여라." 문득 매화타령 한 소절이 입가에 맴돈다. 고교 후배들과 함께 안면도와 덕숭산 수덕사, 예산시장을 잇는 하루 여정에 나섰다. 여러 사정으로 한동안 지방 나들이가 뜸했던 터라, 서해의 바닷바람과 산사의 고요, 장터의 활기를 한꺼번에 만나는 시간이 더욱 반가웠다. 해변에는 모래조각상이 아름답게 서 있고, 갈매기들은 바람을 타며 유유히 날았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은 넉넉한 풍경을 선물했고, 해변의 조약돌들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사람들의 얼굴처럼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고 있었다. 동심으로 돌아가 물수제비를 뜨고 짱돌을 힘껏 던져 본다. "저 멀리 날아가라." 돌멩이와 함께 답답했던 마음도 멀리 날아가는 듯했다. 덕숭산 수덕사에서는 어린 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문득 선가의 화두가 떠오른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어 또 하나의 선문답이 마음을 스친다. "봄을 찾아 헤매다 돌아오니 담장 위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더라."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