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도 연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아버지, 여긴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린다면서요? 신기해요. 돈키: 그래, 제부도야. 이름난 섬이란다. 저기 매바위며 고운 백사장은 명사오리라 부를만 하잖니? 산 위에서 맞는 밤바다의 적막은 세사에 찌든 영혼이 정화되는 심연에 이르게 하지. 마치 밤하늘 빛나는 별이 등대처럼 태고적 부터 걸어온 내게 가야 할 삶의 좌표를 일러준단다. 호새: 와… 시상이 절로 떠오르겠어요. 돈키: (미소 지으며) 맞아. 내 청춘 시절, 바로 이곳에서 노래를 만들었거든. 들어볼래? :돈키: (바다를 바라보며 노랫말을 읊조린다) <제부도연가> 나 홀로 찾아 왔어요 님이 그리워 하루에 두번 가슴을 연다는 제부도 길을 잃었소 바람 불었소 정녕 돌아올순 없나요 그대와 사랑을 속삭이던 매바위엔 눈물만 흐른다오 아아~ 보이나요 작은섬에 저 외로운 등대 들리나요 밤바다 울리는 파도소리가 내 영혼의 눈물인 것을 이젠 알것 같아요 사랑도 미움도 아픔이란걸 둘이 만나 산다는 의미를 둘이 만나 하나되어 살아가는 의미를….. ……졸저 <한번도소나타>국학자료원 2021년 11월 호새: (숨죽이며 듣다가) …가슴이 찡하네요. 돈키: 임마, 장
지도자의 정체성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다. 안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동일성이며, 밖으로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빛, 존재의 등불이겠다. 지도자에게 정체성이란 말과 행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힘, 신념과 통찰이 삶으로 구현되는 무게다. 정체성이 없는 정치 지도자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지금 정치의 광장은 소란하다. 여권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요, 야권은 전당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그 목소리 속에서 국민이 듣고자 하는 방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외양간을 단단히 고쳐 수레의 한축을 담당해주길 고대하건만, 한 지붕 아래 다른 빛깔들이 모인 탓에 흐려지고 있는 비전을 강조하면 울림이 있을게다. 세계 경제는 폭풍우 속에 있다. 기업은 살기 위해 껍질을 벗기고, 서민은 치솟는 물가와 불안한 일상에 가슴을 조인다. 어느 기업 총수가 강조한 말이 떠오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 그만큼 절박한 시대이건만. 정치권의 언어는 여전히 가벼운 공방이다. 민생의 절규와 정치권의 언어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다. 정치가는 원래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을 깨우며,
알라딘 요술램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와, 바닷길 따라 달리다 보니 여기 화성호 안길이네요. 그런데 저기 보이는 게 현대자동차 연구소 맞죠? 돈키: 그렇단다. 원래는 바닷가였는데,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뭍으로 변했지. 그런데 그 땅 위에 세계 자동차 문화를 이끄는 두뇌들의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으니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구나. 호새: 화성에 자동차 관련 시설이 꽤 많네요? 돈키: 마도에는 성능시험장이 있고, 우정에는 기아자동차 공장, 그리고 남양에는 현대·기아자동차차 연구소가 있지. 마치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반도체·IT 기업으로 가득하듯, 화성의 남서부 지역은 자동차 산업으로 가득하단다. 그래서 나는 인근을 **모터밸리(Motor Valley)**라고 부르고 싶어. 호새: 모터밸리라… 멋지네요! 그런데 왜 하필 글제가 알라딘 요술램프예요? 돈키: 요술램프처럼 연구소에서 새로운 모델이 ‘펑! 펑! 펑!’ 하고 터져 나오잖니. 알라딘 램프에는 자동차가 없었지만, 이곳 화성에서는 세련된 자동차가 튀어나와 지구촌에 인기짱이잖아. 창조의 즐거움이란 정말 대단하지 않니? 호새: 그런데 방조제 공사로 사라진 포구들도 있죠? 돈키: 맞아. 호곡선창, 왕모대 같은 옛
웰빙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울렁울렁해요. 저 수평선… 끝이 보이지 않네요. 돈키: 수평선은 늘 그리움을 낳는 법이지. 호새야, 시 한 편 읊어보겠니? 호새: 네, 화성시 서편 끝자락에 있는 작은 섬…<국화도>란 시에요. <국화도> 어서와 사는 게 무겁지… 그래도, 웃어야지 노을처럼 마음을 뉘어봐 몸 부수는 파도소리 들릴 거야 갈매기도 속울음 울고 있잖아 아득히 긴 세월이나 들고나는 저 검푸른 멍마저 바람에 씻긴 작은 몸뚱이마저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불러도 손짓해도 뱃길 떠나는 섬색시 마냥 점점이 멀어 가는데 해당화 필 무렵 돌아오려나 눈꽃송이 날리면 오시려나 네 생각에 가끔은… 눈물 날 거야 온 세상이 깜깜해도 네 안에 등대가 되어 나, 여기서… 널 기다릴 거야 돌아봐주련… 딱, 한 번 한 번만 불러 볼게 내 사랑… 그대… 국화도여! ………….. 졸저 <화성소나타3>, 2015년 9월 호새: (숨을 고르며) …어때요? 돈키: 호새야, 네 목소리에 바람이 묻어 있네. 아마 그 섬이, 네 마음을 다 들었을 거다. 노을 속에 섬 그림자가 길어지고, 그 길 위로 물결이 네 그리움의 그 자리까지 데려
연인의 불타는 가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지명이란 게 참 묘하지 않냐? 미래를 여는 힘이기도 하고 말이지. 호새: 그러게요. 그런데 예전엔 ‘화옹호’라고 불렀다면서요? 돈키: 맞다. 화성의 ‘화’와 옹진의 ‘옹’을 합쳐서 화옹호라 했었지. 화성 땅인데 옹진 이름이 붙은 게 좀 이상했어. 지금은 ‘화성호’로 불리니 다행이지. 호새: 여기 꽤 크네요. 돈키: 우정읍 매향리에서 서신면 궁평리까지 물막이 공사로 만든 호수야. 17.3㎢, 드넓지? 시화호처럼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을까… 모두의 숙제였지. 호새: 여기도 ‘바다농장’이 있네요? 돈키: 그래. 호수 상단에 대형 토마토 생산시설이 있지. 지역 농협들이 힘을 합쳐 운영한다고 하더군. 요즘 농업이 6차 산업으로 바뀌고 있잖아? 생산부터 유통, 마케팅까지 전문성을 갖추면 화성 원예농업에 큰 전기가 될 거야. 호새: 저기 태양광 집광판도 있네요? 돈키: 응. 신재생에너지 교육장 같아.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던 어린 시절 놀이 기억나냐? 그 초점의 원리를 여기서 쓰는 거지. 옷을 태워서 할머니께 혼난 기억도 난다, 하하. 호새: 방조제가 참 길어요. 돈키: 직선으로 9.7km. 해류의
남양황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남양황라”라는 말 들어본 적 있니? 호새: 황라… 황금빛 무언가를 뜻하나요? 좀 시적인데요. 돈키: 맞아. 옛 남양군, 남양만에서 이름을 빌려 장안 들판의 가을 황금물결을 표현한 거지.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참 장관이라 <화성팔경>에 선정되었는데 요즘들어 환경오염 탓에 빛이 바래 안타까워. 호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곡식이 익어가는 냄새가 섞인… 그런 풍경이겠어요. 돈키: 그렇지. 발안천과 금곡천이 만난 물길이 남양호로 흘러들고, 주변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지. 가지런히 정리된 들판길을 걷다보면 마치 삶의 주인공이 된 듯 자신을 돌아보게 돼. 호새: 듣기만 해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요. 돈키: 얼마 전 큰아버지랑 다녀왔는데, 한적한 길을 로드바이크 동호인들이 달리더라. 마라톤 훈련 코스로도 참 좋을 것 같더구나. 우리도 다시 가기로 했지. 호새: 그 들판이 마치 사람의 인생 같군요. 돈키: 맞아.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판은 장년기의 풍요로움과 닮았지. 벼를 벤 텅빈 들판은 노년의 아름다운 비움과 같아 그 비움 속엔 채움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단다. 호새: 결국 젊은 날의
준마는 달리고 싶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프라이드’라는 자동차 알아? 호새: 음… 예전에 기아에서 나온 소형차 아닌가요? 돈키: 맞아. 자동차 산업합리화 정책으로 꽉 막혔던 승용차 시장에 기아가 첫 모델로 내놓은 게 바로 ‘프라이드’야. 호새: 이름부터 자부심이 느껴지네요. 돈키: 그게 단순한 차 이름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 ‘정신 에너지’ 같은 거였어. 내 인생에서 버팀목이었고, 누구나 그걸 품고 살아가는 거야. 호새: 그래서 기아자동차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시는 거군요. 돈키: 그렇지. 현대자동차와 합병 전 창업주 김철호 회장의 열정을 담은 ‘수레바퀴 한평생’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져. 화성공장 정문 앞, 거대한 두 바퀴 조형물을 봤니? 호새: 본 적 있어요. 무슨 의미인가 했는데… 돈키: 마치 구도자의 길 같아. 쉼 없이 나아가는 인간의 집념 말이야. “어디로 가는 것인가?” 스스로 묻게 돼. 호새: 기아자동차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어요? 돈키: 군 제대한 뒤, 80년대 중반에 입사했지. 당시 취업이 쉽지 않았거든. 해외지사관리·국내마케팅, 복지, 지역관리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어. 그게 지금껏 살아오며 다 큰 자산이 됐지. 호새: 그래서
아침마당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굿모닝! 호새: 굿모닝, 돈키님! 오늘은 뭐 하실 거예요? 돈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으니, 오히려 생각이 굴러가네. 오늘은 좋은 ‘아침’이야. 차 한잔 하고 강의자료 준비하려고—휘릭. 호새: ‘아침’이라… 오늘따라 특별하게 말씀하시네요? 돈키: 영어로 ‘모닝’이란 말, 자동차에도 이름표처럼 붙이잖아. 하지만 진짜 의미 있는 건 ‘좋은 아침’이지. 하루를 여는 서곡이야. 어둠이 밝음으로 넘어가는 경계, 닫힘이 열림으로 변하는 순간, 모름에서 앎으로 나아가는 때… 난 이걸 모두 ‘아침’이라고 생각해. 호새: 아침… 듣고 보니 깊네요. 돈키: 커피향처럼 피어나는 순간이지. 옛날엔 “아침은 먹었니?” 하는 인사가 진짜 정이었어. 제때, 제모습, 제멋… 이런 말들처럼 말이야. 기운이 오르고, 흘러가고, 울리고, 결을 만들며 인생이 돌아가는 법이지. 호새: 결국 제길을 걷는 게 중요하단 말씀이군요. 돈키: 그렇지. ‘어쩔 수 없어서’ 걷는 길이라면 슬픈 일이지. 깨어나 제길을 걸어야 행운을 맞는 법이야.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처럼 말이야. 성현들, 위인들, 부모님까지… 모두 ‘아침
애니콜–노르망디 상륙 컨덕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오늘은 입 좀 닫고 조용히 생각 좀 정리해야겠다. 특별한 날이거든. 호새: 무슨 날인데요? 돈키: 화성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다는 소식이야.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화성이야. 고향은 사람한테 기(氣) 충전소 같은 곳이지. 사계절 변함없는 뒷동산처럼 말이야. 나이 먹으니 고향에 높은 산과 흐르는 물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되더라. 게다가 문화유적지나 위인이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 영국인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자부심을 갖듯, 삼성은 화성의 자랑이니 말이야. 호새: 고향 자랑이군요. 돈키: 맞아. 요즘은 먹고사는 게 전쟁 같지만, 해외 공항에서 국내 대기업 입간판을 보면 태극기 만난 것처럼 뿌듯해. 삼성, 현대차, 기아, LG, SK, 롯데, 포스코, 한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잖니. 더구나 그런 일류기업이 내 고향에 있으니 자랑이지. 특히 화성에 소재한 삼성반도체 화성캠퍼스는 보물이야. 호새: 화성식의 재정규모 큰 이유가 다 그런 기업들 덕분이군요. 돈키: 그렇지. 근세사에 우리나라가 겪은 가장 큰 아픔이 식민의 설움이고, 가장 쓰라린
관점과 관심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창이고, 관심은 그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바람이다. 어떤 풍경을 보느냐, 무엇을 담아내느냐는 그 사람의 시각과 마음의 방향에 달려 있다. 며칠 전, 자녀 교육 특강을 맡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핵심 내용은 “부모가 아이를 알지 못하면 소통은 어렵다”는 강의란다. 왜 어려운가 묻자, 그분은 잠시 웃으며 말했다. “부모가 전하려는 말에 아이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래를 물으면, 꿈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 아이들. 이 낯설지 않은 풍경은 오래전부터 주변에 흘러 다녔다. 네 살에 둘러멘 작은 가방이, 여든이 되어도 내려놓지 못하는 인생의 무게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그 책임은 제도일까, 아니면 타오르는 교육열일까. 수없이 논쟁하지만, 선뜻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진국의 제도를 연구하고, 사회적 병폐를 살피며, 더 나은 길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삶이란, 제때 제모습을 피워내는 일이다. 어린 시절, 오감으로 세상을 맞이하며 피어오른 호기심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말과 글이 되어 행동을 낳는다. 부모와 스승의 몫은 그 호기심에 불씨를 지펴 아이가 꿈길로 걸어가도록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