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폭을 날리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 날리며~” 호새: 뭔 치마폭이래요? 요즘은 핑크색 머플러가 날려야죠. 옛날 낙동강이 아니잖아요. 돈키: 그래도 바람에 절로 마음이 동하잖아. 노래로만 스쳐갈 강이 아니지. 뭐부터 얘기할까? 호새: 길이가 531킬로라면서요? 대한민국 1위, 한반도 전체에선 3위라던데요? 돈키: 그렇지. 길이도 길이지만, 강원도 함백산에서 발원해 경북·대구·경남·부산까지, 무려 22개 지자체를 지나가. 영남의 젖줄이자 삶의 물길이지. 호새: 근데 왜 이름이 ‘낙동강’이에요? 돈키: 여러 설이 있지만, 가락국의 동편에 흐른다 해서 ‘낙동’이라 불렀다는 게 유력해. 서편엔 가야가, 동편엔 신라가 있었거든. 옛 가야 여섯 나라가 모두 이 강 유역에 자리했지. 호새: 낙동강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뭐예요? 돈키: 강바람, 낙동강 오리알, 낙동강 전선, 을숙도, 페놀사건, 4대강사업… 많지. 호새: 그 긴 강줄기 따라 천리 수변길이 장관이겠네요. 돈키: 예전엔 안동까지 배가 오갔대. 역사의 강이지.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을 품었겠어. 호새: 요즘 을숙도엔 철새들이 모여든다던데요? 돈키: 철새들만이 아니
고래박물관 / 반구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내 이름 경상도 울산아가씨~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아가씨~” 울산 온 호새가 소식 전하더라. 울산엔 멋스런 자동차도 많지만, 그래도 울산이라면 큰 애기들이 제일이라나. 호새: 주인님도 자동차 회사 다녔잖아요? 자동차 하면 뭐가 떠올라요? 돈키: 차 이름 말해볼까? 프라이드, 르망, 엑셀… 호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네요. 요즘은 수소차, 자율주행차 시대라구요. 돈키: 그렇지. 코티나에서 포니, 그리고 넥쏘까지… 현대·기아·대우 삼사가 자동차 시장의 트로이카였지. 자동차는 500여 종류의 2만여 부품으로 이뤄져 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 호새: 철판, 나무, 고무, 유리, 섬유, 전자, 화학, 음향… 정말 모든 산업이 다 들어가네요.---휘릭 호새: 해변 백사장에서 애마부인보다 자동차 매니아 울산 아가씨랑 한 컷, 그게 더 멋지지 않아요? 돈키: 고집하면 안 되지. 백사장에선 애마와 걷고, 울산 아가씨랑은 드라이브도 해야지. 호새: 이젠 삼돌이도, 마도로스도 드물어요. 대신 과기대 청년들과 글로벌 두뇌들이 넘쳐나죠. 눈빛이 하늘까지 닿을 만큼! 돈키: 스포츠카 타고 올 걸 그랬나? 호새: 태화강변
타임캡슐센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박물관에 또 가요? 돈키: 그래. 경북과 경주 일대의 유물이 한데 모인 곳이지. 역사를 품어 미래를 통찰하는 ‘타임캡슐센터’라 부를 만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백견이 불여일행(百見而不如一行)이라 했잖아. 직접 보고, 느끼고, 걷는 것만큼 확실한 공부가 없지. 호새: 기록과 유물로 그 시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겠네요. 돈키: 그렇지. 역사는 승자가 쓰지만, 깨진 파편을 맞추면 또 다른 진실이 드러나. 이곳은 한반도의 천년을 복원하고,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야. 호새: 저기 저건 성덕대왕신종 아닌가요? 돈키: 맞아. 흔히 ‘에밀레종’이라 부르지.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이 전설로 얽힌 종이지. 그 이야기를 모성의 노래로 다시 쓴다면, 지금 세상도 울릴 수 있겠지. 호새: 박물관에서 서너 시간을 머무셨던 이유가 있나요? 돈키: 천년을 지탱한 힘이 무엇이었고, 왜 신라의 문이 닫혔는지가 궁금했어. 예전엔 전쟁과 영웅 중심의 역사를 보았다면, 오늘은 다양성과 창의성,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을 살피고 싶었지. 박물관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여는 문이니까. 호새: 결국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
천년의 세월 담겼어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천년의 풍파, 세월 담겼어라.” 송창식이 부르던 그 경주불국사의 그림 말이야. 구름을 품고 안개를 토하던 토함산의 풍경이 딱 저 노래 한 자락이지. 호새: 저기 저 멀리 감포 앞바다… 문무왕 해저릉인가요? 돈키: 그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비문으로 남긴 왕이지. 학자들 말로는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 마한과는 계통이 다르다고도 해. 흉노계 북방 유목민이 바다 건너 남하하여 이곳에서 꽃 핀 나라로 기마도, 금장식, 화폐, 부장품들. 그 이동의 흔적들이 말해주는 이야기야. 호새: 역사는 대충 훑고 지나가면 안 되죠. 원효대사,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처용가도 빼놓으면 섭하지요. 호새: 경주거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원효대사의 “수허몰가부, 아소지천주”, 그 도끼 말이에요. 돈키: 7세기 중반, 원효대사의 ‘도끼송’ 이야기네. 그로 인해 ‘과부재가금지’법이 생겼다는 설도 있어. 두뇌회전이 빠르고 귀가 컸다는 태종무열왕이 과부였던 요석공주와 원효를 맺게 해서 이두문자를 다듬은 설총을 낳게 했다지. 호새: 신라는 935년에 사라졌으니 원효 이
영일만 친구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오늘은 영일만 친구 만나러 간다. 호새: 바닷가 오두막 짓고 살던 그 어릴 적 친구요? 호미곶에서 일출 맞으면서요? 돈키: 아침해가 세상을 깨우는 법이지. 하지만 이번엔 그보다, 지구촌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지기’의 숨결이 모인 곳. 등대박물관부터 들러볼 참이다. 호새: 그럼 먼저 과메기 한사라 하고 둘러보죠? 돈키: 먹는 게 먼저냐? 배부르면 눕게 돼. 둘러보는 게 먼저지. 예의 차릴 때나 "Lady First" 하고, 싸움판에서는 먼저 선제공격이 흐름을 바꾸는 거야. 예전 6일 전쟁도 그랬어. 선방으로 승부가 갈렸거든. 호새: ‘먼저’가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네요. 선제 조건이 나머지 자원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전략인가요. 돈키: 그래. 하이테크가 시장에 진입하면 기존 기술은 바로 밀려난다.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한 이유야. 국가안보도 그 흐름 위에 서게 돼. 호새: 결국 미래전략적 사고와 기술력이 국력이겠네요. 돈키: 맞아. 미래를 내다보는 두뇌, 그리고 그걸 뒷받침할 경제력이지. 호새: 그럼 포스코나 포항공대가 바로 그 축이겠어요? 돈키: 그렇지. 이곳이 바로 그런 인재들을 길러내는 자리야. 호새: 포항제철 용
곶감 마라톤대회에 다녀오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오늘은 어디로 가요? 또 달리나요? 돈키: 그래. 마라톤 삼총사와 상주로 간다네. 상주는 옛 통일신라 9주 5소경 중 하나였고,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활동하던 곳이지. 호새: 역사 깊은 도시였군요. 상주는 또 뭐가 유명하죠? 돈키: 곶감이지. “울던 아이도 달랜다”는 그 달고 말랑한 곶감. 설사와 감기에도 좋고, 피로회복에도 일품이야. 이왕 온 김에 곶감 한 박스는 챙겨야지. 호새: 운동장은 어땠어요? 돈키: 늦게 도착했더니 전마협 사람들이 무대 세우고 텐트 치느라 분주했다네. 그리고 말이야… 조명탑 뒤로 뜬 달이 참 크더군. 고향 뒷동산에서 달맞이하던 느낌이었어. 호새: 그 밤, 좋았겠다… 돈키: 다음날 아침, 출발 지점은 벌써 북적대고 7천 명이 모였으니 주차가 더 힘들더라. 몸풀기는 황영조 선수 따라 하고, 사회자 신호에 따라 풀·하프·10km·5km 4족 로봇까지 함께 출발하니 장관이었지. 호새: 로봇도 뛰었어요? 세상이 참 빨라졌네요. 돈키: 점심 후 자전거박물관도 들렀지. 그곳에 송선생의 해설이 아주 인상적이었어. “문명은 문자와 바퀴가 바꾼 것이다.” 250년 자전거의 발달사와 그 속에
들국화 여인– 황구지천변 기행17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주말 아침, 천변 산책에 나섰다. 며칠 전 평생지기가 거실에 들여놓은 들국화 향기가 아직 코끝에 남아있다. 눈을 돌리니, 천변 비탈에도 노란 들국화가 올망졸망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들판에 나가 데이지 꽃을 더 많이 꺾어보리라.” 시인 나딘 스테어가 85세에 남겼다는 그 구절이 떠올라, 손끝으로 한 가지를 조심스레 꺾는다. 노란 꽃잎에서 진한 가을 향기가 피어난다. 이승을 떠난 가수 현철이 상사병의 처방전처럼 부르던 노래, <들국화 여인>의 그 고운 빛깔이 이렇지 싶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가을을 남기고 서늘한 바람 속으로 사라질 꽃, 들국화다. 천변 오른편 안녕뜰은 이미 추수를 끝내 텅 비었다. 한때 푸르게 물결치던 이곳도 누렇게 익은 끝에 마음을 비워내니, 자연의 섭리요 생명의 순환이다. 어제, <화성 동서남북 문화기행> 영상과 웹툰 마무리를 위해 원로 문인을 찾아 들렀던 충남 당진의 풍경과는 사뭇 달라, 잠시 고개가 갸웃해진다. 왼편 물길 한가운데 모래톱 위에는 가마우지와 청둥오리들이 앉아 제 몸단장에 열심이다. 제 자리에 제 있음에 눈인
봄의 교향악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대구에 가면 누가 안내를 해주나요? 돈키: 옛말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했지. 대구는 큰 언덕, 달구벌이라 비빌 자리도 많아. 어제 전화했더니 군 동기가 흔쾌히 도와준다더군. – 휘릭 이박사: 합천에 다녀왔으니 이번엔 천천히 가보세. 계산성당, 청라언덕, 제일교회, 근대로, 김광석 거리, 그리고 팔공산까지. – 휘릭 이박사: 가야산에서 조금 지체했지. 날 어두워지기 전에 다 갈 수 있을까 모르겠네. 여기가 135년 역사의 계산성당일세. 저 건너편이 청라언덕. 계산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볼 수 있는 귀한 건물이지.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네. 탑이 쌍탑인데, 저기 보이는 경북 최초 개신교 교회인 제일교회도 쌍탑이야. 돈키: 큰 언덕 위에 쌍탑이라… 섬김의 짝이 되는 모습 같네. 한 손으로는 교만이 되기 쉽지. 두 손이 모여야 섬김이 되고, 섬김이 만남을 이루고, 만남이 곧 사랑이 아닌가. 사랑이 깊어지면 두 팔 벌려 서로를 포옹하잖아. “편편황조 자웅상의”라, 세상도 서로 어울려야 아름답지. 호새: 여기가 청라언덕이군요. 라인강을 내려다보는 로렐라이 언덕이나, 예술혼이 불타는 몽마르트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