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지나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충주로 가는 길이다. 한낮의 열기를 피해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구순 중반에 이른 장인을 찾아뵙기 위함이다. 한반도의 중원을 향해 달린다. 천오백여 년 전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역사의 중심지다. 말발굽 소리가 바람을 가르던 옛길을 떠올리며 화성과 안성을 지나 충청도에 들어선다. 간밤을 설친 탓에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조수석에 몸을 기댄 채 이내 잠이 들었다. 몇 번이고 오갔던 길이라 마음도 한결 느긋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눈을 떴다. 어디쯤인지 분간도 되지 않은 채 의식은 몽롱하다. 사방은 회색빛에 잠겨 있고, 두 줄기 빛이 하나의 문처럼 다가온다. 마치 어둠 저편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한 풍경이다. 간밤에 접했던 양자역학과 의식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탓일까?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잠시 뒤섞인다. 이윽고 눈앞이 환하게 열렸다. 푸른 하늘과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제야 터널을 빠져나왔음을 깨닫는다.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일도, 터널을 지나 다시 빛을 만나는 일도 어쩌면 의식이 또 하나의 세계를 거쳐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인지 모른다. 삶은 그렇게 크고 작은 터널을 지나며
분꽃 ㅡ천변기행41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온종일 화성 동서남북 문화기행 상영 장소를 살피고 영화제 행사 준비를 위해 동서를 오간 끝에 무거운 발걸음을 저녁 둑방길에 내려놓는다. 낮의 열기를 식혀 주는 시원한 바람이 하루의 피로를 어루만진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개미들이 줄지어 오간다. 눈여겨보니 블록 틈새 작은 구멍으로 쉼 없이 드나든다. 제 몸집 길이에 비하면 수십 배는 될 사각 블록을 눈 깜짝할 사이에 건너는 모습이 경이롭다. 둑방길을 천천히 달리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시간의 속도다. 저 개미가 수개미 327호인지 암개미 56호인지 알 길은 없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개미』가 떠오른다. 잠시 그 상상의 세계에 동승해 본다. 산책길 초입에는 분꽃이 피었다. 해가 지면 꽃잎을 열어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아침이면 스스로 꽃을 거두는 분꽃(Mirabilis jalapa). 서양에서는 '밤의 미인(Marvel of Peru)'이라 불리는 꽃이다. 달빛 아래 더욱 빛나는 그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녀석을 만나러 다시 이 길을 걸어야겠다. 황금빛 술잔을 닮은 금잔화도 저녁 바람에 몸을 맡긴다. 금계국의 계절을 이어받으려는 듯 길게
헉헉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헉헉." 마라톤 결승선을 눈앞에 두었을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숨소리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도, 온 힘을 다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도 같은 소리가 난다. 무더운 날씨까지 겹치면 이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진다. 그만큼 힘겨운 여정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헉헉'거림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숨소리는 완주의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는 전주곡이다. 수십 차례 마라톤을 완주하며 나는 거친 들숨과 날숨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깊이 느끼곤 했다. 요즘 세상을 돌아보면 사회 역시 '헉헉'거리고 있는 듯하다. 말없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7월 1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출발에는 새로운 다짐이 따라야 한다. 미흡한 관리와 공정성에 대한 의문은 시민들의 신뢰를 흔들고,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국민과 시민의 행복은 상식과 공정이 살아 있는 사회에서 비롯된다. 오랜 세월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온
싸리꽃 – 천변기행 40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화성 동서남북 문화기행의 일환으로 물길 화성 중남부 발안천을 답사했다. 지역 원로 사학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오후, 천변 뚝방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예로부터 물길은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생명의 통로였다. 물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교육과 종교, 장터가 자리 잡으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꽃피었다. 그래서 물길을 걷는 일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역사를 읽는 여정이며, 고향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뚝방길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싸리꽃이었다. 예년보다 이르게 피었고 꽃 모양도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개천 둑이나 집 울타리에 싸리나무를 흔히 심었다. 질기면서도 유연한 성질 덕분에 지게 바수거리와 빗자루를 만드는 데 쓰였고, 어린 시절 잘못을 하면 종아리에 자국이 남도록 맞던 회초리이기도 했다. 싸리꽃 한 송이가 잊고 지냈던 삶의 풍경을 불러낸다. 조금 더 걷자 보랏빛 도라지꽃이 밭 한가운데 피어 있었다. 깊은 산이 아니라 들녘에서 만난 도라지라 더욱 반가웠다. 며칠 뒤면 온통 보랏빛 꽃으로 물들 것만 같았다. 한두 뿌리만 캐도 바구니가 가득 찼
아, 좋구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헤 디여라." 문득 매화타령 한 소절이 입가에 맴돈다. 고교 후배들과 함께 안면도와 덕숭산 수덕사, 예산시장을 잇는 하루 여정에 나섰다. 여러 사정으로 한동안 지방 나들이가 뜸했던 터라, 서해의 바닷바람과 산사의 고요, 장터의 활기를 한꺼번에 만나는 시간이 더욱 반가웠다. 해변에는 모래조각상이 아름답게 서 있고, 갈매기들은 바람을 타며 유유히 날았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은 넉넉한 풍경을 선물했고, 해변의 조약돌들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사람들의 얼굴처럼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고 있었다. 동심으로 돌아가 물수제비를 뜨고 짱돌을 힘껏 던져 본다. "저 멀리 날아가라." 돌멩이와 함께 답답했던 마음도 멀리 날아가는 듯했다. 덕숭산 수덕사에서는 어린 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문득 선가의 화두가 떠오른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어 또 하나의 선문답이 마음을 스친다. "봄을 찾아 헤매다 돌아오니 담장 위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더라." 깨달음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문화는 삶이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수십 켤레의 구두가 함께 걸어온 문화자치 모임이 하나의 매듭을 지었다.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지역의 문화자치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걸어온 시간이었다. '문화자치'라는 말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낯설다. 참고할 선행 사례나 축적된 자료도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살아온 삶의 경험과 문화적 식견, 생활예술의 현장을 바탕으로 하나씩 길을 만들어 왔다. 문화란 무엇일까? 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 낸 삶의 흔적이다. 지식과 신앙, 가치관과 생활양식, 예술과 풍속까지 한 사회가 공유하는 삶의 방식이자,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공동체의 자산이다. 따라서 문화는 높고 낮음을 가리는 대상이 아니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시대정신을 담아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을 세우고,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 내며, 한 나라의 품격을 드러내는 힘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평가받는 것도 이러한 문화의 저력 덕분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창조성과 공동체 정신이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발안천 물길을 따라 걸으며 선조들의
두 사람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특별한 날, 서울에서 열린 대학교동문회에 다녀왔다. 동문회는 학교의 발전과 장단기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동문들의 활동을 나누며 함께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다. 원탁에 둘러앉으면 자연스레 시대의 변화와 사회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이날의 화두는 거센 물결처럼 다가온 AI였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곁에 앉은 두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통성명을 하는 순간 한 세대가 훌쩍 지나간다. 나는 60대, 두 분은 각각 40대와 50대였다. 문득 톨스토이의 단편〈두 노인>과 여러 작품의 제목으로 쓰인〈두 사람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서 한때의 내 모습을 만났다. 한 분은 제약회사에서, 다른 한 분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길을 걸으며 뜨겁게 달구었던 열정과 닳아버린 수많은 구두가 오늘의 얼굴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얼굴에는 세월이라는 강이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보름 전 문화기행 영상을 촬영하며 만난 20대 청년이 떠올랐다. 그의 꿈은 "재벌 백수"라며 웃었지만, 그 말 속에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젊은 세대의 고민도 함께 담겨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시간을 지나며 길을 찾는 법이다. 돌아보면 나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76주년 6·25전쟁 기념일을 맞았다. 올해는 예년과 다른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했다. 최근 국내외 안보 환경이 어수선하게 전해지는 탓인지, 나라의 의미와 평화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이 자리하고 있다. 7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한반도의 역사와 기억 속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기에 당시를 더욱 상상하게 된다. 총성과 포성이 뒤덮은 전장에는 군인과 학도병, 군속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소총과 수류탄, 탱크와 전투기가 오가던 참혹한 전쟁 속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던 상이용사들의 삶 또한 전쟁의 연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이라는 노랫말을 통해 그날의 희생과 교훈을 되새긴다. 집 앞 현충공원에 세워진 참전용사비 앞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이어 참석한 한미동맹 수원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