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우리는 대체로 행복한 시민이다. 결혼해 자식도 있고 또한 주위 친지들과 어울려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이다. 오늘은 가정의 달, 푸르른 5월을 닫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넋을 기리는 보훈의 달, 6월을 여는 날이다. 내 가정과 내 나라는 우리네 삶에 소중한 둥지다. 6월 3일은 한반도 기운을 가를 운명의 날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의 힘찬 도약을 위해 시대를 통찰한 지도자의 출현을 손 모아 기도한다. 지난 70여년, 허리 잘린 채 아물지 않은 상처 탓인가?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늘어간다. 며칠 후 탄생할 영도자에겐 5천만 백성과 허리 잘린 휴전선 북쪽의 우리 핏줄인 2천만 백성의 행복도 책임져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미개발도상국에서 반세기내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민의 저력을 바탕으로 국가안보를 비롯 G7에 이를 국격, 시급한 출산대책, 청년일자리 마련, …. 등 난제들을 풀어내 다시금 역동적 코리아가 되길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정의롭고 ‘자유민주대한’에 이르도록 몸바친 호국영령들에게 해마다 유명인사들이 현충원을 찾아 헌화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네 맘도 숙연해진다. 너와 나의 맘 또한 다
두 손잡고 울려보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새삼 눈물과 울림타령이다. 감정의 정제물, 눈물은 원활한 신진대사요 울림은 그에 따른 소리인게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용필이 형 겨울 찻집의 눈물도 생각난다. 애틋한 난영 선생의 설운 <목포의 눈물>도, <두 줄기 눈물>속에 밤길 걷는 나훈아 선생과 <맨발의 청춘> 최희준 선생의 씹어 삼킨 눈물도 제멋이겠다. 누군들 사는 동안 그런 날들이 없으리요만 돌아보니 행복한 눈물이다. ”사나이 우는 맘을 그 누가 알랴”,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울어”, 깊게 울어 본 날들이 있어 마치 청춘시절에 스민 아득한 기적소리 처럼 내 맘의 정화제다. 두 마당 건너에 지난 역사 돌아보니 두드러진 울림 사례다. 행주치마에 돌 나르던 행주 여인, 울울 돌돌 수월래하던 전쟁터의 호남 여인, 국채보상을 위해 허리 졸라맨 달구벌 여인 등, 나라위한 진정한 합심이 있었기에 어깨 으쓱할 요즘의 자유대한 코리아에 이른 게다. 종반에 든 이어달리기 대회가 온 백성의 간절한 구국기도 같다. 정의로운 자손들을 지키야 하는 외침인게다. ‘암행어사 출두야’ 작은 애국자들의 합창이겠다. 파도치는 삼학도에 <
화성(우주)에서 화성(지구)을 보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만물의 영장, 인간에게 어울릴 능력은 상상력인게다. 23.5도 기울인 지구다. 그곳의 동북아시아 허리 잘린 코리아의 이어달리기 대회 관전이다. 닭과 달걀의 선후처럼 세상사에 대한 상상이다. ‘정중동’, 고요속에 움직임이요 ‘동중정’은 움직임속에 고요일지니 관점의 차이인게다. 두 걸음하는 가운데 들러멘 세상사 보퉁이를 헤아리며, 어느날엔 노을진 찻잔과 어울려 순간 대양을 건너기도 한다. 그 주인공이 바로 ‘너와 나’다. 두 발 들여 정국을 살피면 자유대한의 민주체제가 큰 시험중이다. 대회 후반에 이르니 여.야 모두 위기를 판가를 ‘단일화 산수풀이’에 ‘정중동’이다. 그 대상의 런너는 년전 지구촌 코리아내 화성시 동탄지역에서 발을 들인 ‘화성인’이다. 공당의 대표이며 지모도 출중하여 날개가 달렸나도 싶다 ‘동중정’ 하시라! 그대는 진즉 바다 건너 너른 세상을 보지 않았는가? 태평양으로 뻗어날 여권의 런너가 황해를 바라보는 야권의 상대와 영혼도 바꿔야 할 만큼 흐트러진 세상이다.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도 알 수 있고 타오르는 가슴으로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에 별칭, ‘작은 애국자’인 우리네 고개도 절로
‘백의 종군’ 노꾼이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그래, ‘가자 가자 노를 저으러’. 격랑으로 자유민주체제가 위기에 처했다. 꼿꼿한 선장이 나타나 ‘자유대한호’를 구하려 험한 파도를 헤쳐가잔다. 자갈치 시장 할매도 가락시장 할배도 정성을 보탰다. 유학을 떠난 청년도 대학촌 청년들도 나섰다. 전국의 수 많은 단체들이 줄지어 노를 젓는 그 모습이 비장하다. 경기도 전임 시장.군수 단체장들도 노를 젓는다. 관절수술과 항암치료 중인 분들조차도 힘을 보탰다. 경기지사 재임시 살림을 풍성하게 변화시킨 그의 품성과 능력을 잘알기 때문이다. 정통민주당 옛 지구당위원장들도 ‘정의’의 표상인 그에게 힘을 보태려 제주, 부산, 진주, 대구, 광주, 대전, 군산, 전주, 원주, 당진, 화성,..., 등에서 모여들어 젊은 날의 열정으로 힘차게 저었다. 두 분의 전)경기지사들도 그를 돕기위해 발벗고 나섰다. 경기도의 큰 살림과 국정을 경험했기에 포퓰리즘으로 거덜난 나라살림 회복과 청년의 미래를 위해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진즉, 허리띠 졸라매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세상을 놀라게 한 국민의 저력이 있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 위험 마저도 극복하고 IMF 금융사태도 돌파했다. 어찌 지도
뭐 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한달여전쯤 한통의 전화벨이 울린다. 모처럼 찻잔과 마주하는데 따르릉이다. “뭐해?”, 친구의 목소리다. 어수선한 세상사에 쟁쟁하니 참견이다. 이리저리 2차 TV방송토론회도 끝나, 이어달리기 경기가 중반을 넘어섰다. 콧노래를 부르는지 느긋한(?) 야권은 잠잠하다. 채 복잡한 내부정리를 하는지 여권은 런너의 독주다. 어정쩡한 관군의 행태가 답답하여 ‘나도 000다’ 도처에 퍼져가는 의병단(?)의 출현이다. 꼿꼿한 런너에 대한 연민과 감동인게다. 나름 정치권에 한가닥 하던 덩치 큰 분들의 발길도 속속 이어져 대회의 귀추가 기대된다. 자연의 이치도 순환이요 순환은 생명력이다. 배고픔을 면한 산업화와 정의사회 실현의 민주화 과정을 헤쳐온 ‘자유대한호’는 어디로 가야하나? 일제식민과 6.25전쟁의 통증이 채 가시지 않아 성숙한 소통과 융화가 필요하다. 한편, 21세기 G7에로 비상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신’한 진실된 런너가 ‘자유대한호’를 이끌어 가야한다. 그를 동행할 너와 나, 우리의 자각과 실천도 요구된다. 우선은 자각과 실천의 주체로서 청년층이다. 창의성과 도전의 용기로 20-30대 청년층이야말로 위기에 처한 ‘내나라를 변화시
영희와 철수 이야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느 수필가의 수필집 출간에 보탬 글이다. 어릴적 귀에 익은 소꿉 동무 아이들 이름이다. 작가의 이름 탓일까? 정감이 어울려 주방을 시작으로 한 발 두 발이 장롱, 창가, 뜰, 장터로 뻗어나며 어린시절부터 중.장.노년에 이르도록 둥그런 나이테에 담긴 즐거움이 몽글몽글하다. 멈칫한 여린 글발이 어느 새 수년간 쌓여 사방이 탁트인 고개 마루에 올랐다. 그 환한 얼굴을 세상에 내민다니 축하받을 일이다. 작가의 다정한 오감이 자연에 닿아 제빛깔 제멋이 생생하다. 작가의 섬세한 필력 덕택에 유년 시절, 마을 앞 도랑에 고무신 뱃놀이도 서너번이요, 윤초시네 증손녀에 건네려 대추나무에도 몇번을 올랐다. 시골집 봉당에 햇살이 또아리 틀어 동짓날 입맛 돋울 무청도 바삭하다. 히스테리려나?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에 이따금 세상의 틈새를 비집어대 무디어진 감각이 깨어나 필자의 흐릿한 눈길도 바로 하게 되는 자경문을 만나기도 한다. 작가 내면의 말타래가 때론 겉저리로 때론 묵은지로 입맛을 돋우니 어찌 평하랴! 수수한 차림새의 우리네 맘인게다. 그래, 그렇지 무릅을 어루기도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니 말이다. 분주한 일상에 작가의 언론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있다지만 시끌한 대선 정국을 들여다보면 위 글제는 승패에 영향을 끼칠만한 경구다. 어찌 대선 후보들에게만 해당하랴! 범부도 제집 울을 넘어서 사회활동을 하려면 가족들도 인정할 평소의 바른 몸가짐이 우선이다. 평소의 폭음, 허언, 위선, … 등 그릇된 품행으로 모습이 얼룩하다면 가족들 조차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감증인가? 무관심인가? 지금껏 바삐 살아오느라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어떤가?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된 국운을 가를 대전중이다. 두 눈 부릅뜨고 두 귀를 활짝 열어야 할게다. 활을 잘 쏘는 방편으로 익혀야 할 ‘비정비팔’ 자세다. 출사에 앞서 연단해야 할 ‘수신’에 비유될테다. 나름 체화했을까? 모로가도 한양에만 입성하면 되는가? 활시위 떠난 화살은 과녁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으니 누가 ‘관중’이요 환한 소리를 들으려나? 과연 이번 대전에서 어느 런너를 선택할까? 귀를 기울이자. G7에 이를 분야별 훌륭한 공약도 넘쳐난다. 평소의 정치인의 언행이 신뢰의 척도다. ‘수신제가’에 흠결이 있으면 배에 힘주어 말 할 수 없을테요, 그저 소음이
날 보러 와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외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울적할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서러움을 잊고 웃어보아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방긋한 웃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율동이 생각난다. 한편,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꽃”을 비유한 ‘나’의 성찰을 낳는 시 구절이다. ‘너’가 ‘나”요 ‘내’가 ‘너’인거다. 늘이면 ‘나’는 ‘우리’로 깊어가니 자연이며 우주인게다. 살피면 키워드는 믿음과 소망을 품은 이 세상에 제일인 ‘너와 나’의 ‘사랑’이다. 요즘 돌아가는 대선정국에 세간의 전언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진즉 길 떠난 야권은 포장된 상품이 ‘가시는 걸음마다’ 순행(?)인가? 여권은 와글와글 할 장터에 채 보부상들을 틀어 쥔 기존 거상들이 존재감(?) 탓에 긴 채비를 한다 싶다. 이어달리기 바톤을 넘긴 러너들이다. “날 보러 와요” 손짓하니 가야 할게다. “~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애타게 부르니 응답할게다.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달려라 냇물아, 괴로움 다 잊으시고, 우러러 볼수록”, 누군들 부르지 않았으리! 그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