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리에 매단 몸을 불쑥 일으켜 찬바람 채비로 '검정 바바리코트'를 입고 집밖을 나서니 '흰눈'이 내린다. 대설이 지난 엿새요 아흐레 후에는 팥죽을 먹는다는 동지다. 어제 밤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차다. 여섯마디에 네 매듭을 짓다보니 계절의 순환과 만물의 조화가 참으로 신비롭다는 생각이다. [봄에는 살랑살랑대는 봄바람에 벌나비 찾아들고 스멀대는 기운 탓에 절로 밖으로 나돌지 않는가? "님이 가시나보다" 비 긋는 소리에 꺼멓게 타는 맘 사위려 "주룩주룩 내려라~ 한없이 적셔다오" 저편 하늘 향해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여름밤이겠다. 아, 그새 가을! 갈색 낙엽따라 멀리 가버린 사랑이여. 멍든 가슴안은 채 높푸른 하늘아래 텅빈 들녘 갈대밭에 서성이며 "숨어우는 바람소리"는 들으려나? 흰눈이 내리는 날 찬바람 불어 코트깃 올린 채 두 손 넣은 홀로 걷던 그맘에 싸늘히 식어간 아련한 추억만은 남아있겠네] 이런저런 생각에 돌고돌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휘릭휘릭 볼 일을 마치고 작은 뜨락에 나오니 그새 내린 눈발에 차이고 눌려 좀체 빈틈 없이 세상을 둘러친 송인(소나무)들이 꼿꼿한 몸매를 누그렸다. 왼편으로 '에코스쿨'건물 뒷편 반석산에는
달포전에 아시아 WBA 타이틀매치 권투경기장에서 온몸이 후끈 달았었다. 또 지난 보름간은 월드컵축구경기를 보며 두 손 쥐어가며 아, 소리친게 몇날이려? 주말 복사골 지인 자녀 혼사에 다녀오다 동행한 친구따라 우연하게 프로배구경기 IBK 알토스 배구단과 GK-칼텍스 배구단의 화성시 발안뜰에 일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경기장에 들어서니 의례적인 선수들의 몸풀기가 코트내 한창이다. 건너편 관중석에선 '한데 뭉치어 발휘하자'며 응원단이 분위기를 한층 돋워내 와글와글하다. 정각 4시, 심판진의 허리굽힌 인사는 공정의 상징이요, 소개될 때마다 손바닥 마주치는 선수들의 회전인사는 불퇴전의 투지겠다. 젊음이 튀어난다. 디지털 전광판에의 청순하고 탁트인 선수단의 모습이 마치 높푸른 가을하늘에 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기러기들처럼 시원시원하다. 도드람한돈, IBK, ... 코트에 누운 회사명들이다. 코트밖 바닥에는 MG새마을금고, 제주삼다수, …, 코트경계 허리엔 진라면, 삼성화재, …층 구분 난간에 린나이, 대한항공, ABL생명… 등 후원.협찬사들이려. 지붕아래에 걸은 걸괘에는 "높이, 푸르게, 빨리"에 접두어 '더'자를 붙였으니 경기에 돋워낼 열정(?)의 젊은 표현인가 싶은데
삼국연의에 등장한 상산 조자룡의 말이다. 맘에 든 결기가 '철석'같아야 세상사에 중심이 선다는 말이겠다. 사내들 세계에선 굳은 맹세의 상징이랄까? 바닷가 바위벽에 부딪는 파도의 의성어도 '철석'(철썩)이건만… 선배 문우와의 약속으로 오랜동안 발길않은 '수원박물관'에의 관람이다. 현관에 "내삶의 길이 역사다"란 어귀에 호기심이다. 박물관 카페에서 대추차를 마신 후 휘익 돌아본 전시실에는 한호, 허목 등 유생들의 명문장을 비롯해 교지, 금석문, … 등 수원지방과 관련한 서예작품들이 벽에 걸림과 판 누임으로 나름 옛수원의 형세가 어름어름하다. 어찌 그리도 상세히 포경 모습을 그려냈을까? 1층 전시실 입구에 놓인 반구대 탁본을 보며 타임머신을 달아 한반도내 꽤나 먼 울산으로 7천년을 거스린 구석기시대로 순간의 시.공간 이동이다. 1층을 휘이 돌아 2층으로 올라가니 추사선생의 "무량수각" 편액에 한생각이다. 하수상한 시절에 '세한고절'도 무량수려. 서너칸 옆면에는 부채에 그려낸 주선인 이백의 "산중대작"이다. 멋에 겨워 곁에 눌러선다. '드새그려 또 한잔 드새그려' 무진장 꽃피우니 무량수 자리에 이를까만, 밝은 달을 어찌 '이태백'만 벗하리요! '이백'이 놀던 그 달
무릎 고장은 누워 쉬는게 상책이란 말에 동해산 오징어, 제주귤, 충주사과, 형아 땀방울 머금은 고구마, …등을 벗삼아 몇날을 이리저리 뒹굴뒹굴 하던차에 젊은 날 신세진 군대동기 자당의 부음 소식이다. 차일에 선배 문우님과의 수원역사박물관 안내를 약속한 터라 애마에 꾸깃한 몸을 싣고 화성을 어여 출발해 수원, 용인, 이천, 여주, …남제천, 영주, 안동에 이르는 왕복 1000여리 장도에 올랐다. 혹여 덜 깬 몸에 울림을 주고자 팝송을 켜놓고 네비게이션의 길눈을 열었다. 영동고속도로변 SK하이닉스를 지나고 여주를 거쳐 중부내륙고속, 평택-제천고속,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도심지가 멀어지니 덩치 큰 산들이 주욱 웅크린 채 만추의 햇살을 포근히 안아 동면을 준비한다. 천둥산 휴게소를 지나치려니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던 "박달재 금봉이"가 생각나 한잔 걸치면 좋으련만 어림해 7시간 왕복길이라 한사코 우는 갈증을 누른 채 산척터널, 제천터널, 적성터널, ...하늘 닿은 도로에 이르도록 꿋꿋히 달려나간다. 듬성듬성 산자락에 나타나는 단양팔경, 풍기인삼, 영주부석사, … 큼직한 홍보판에로도 눈길이다. 오후 3시경, 밖의 온도는 영상10도다. 저홀로 돌아가는 팝
국제도시, 서울을 향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도중 의례껏 듣던 FM방송을 접고 혀말아가며 영어공부다. 1863년도 행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여섯마디 들어선 탓일까? 몇번을 되돌려 들어도 여간하지 않다. 제때 제공부 하지않은 탓인가보다.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는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맺는 말은 귀에 순하건만… 할로윈 사태, 월드컵축구열기 못지않게 거리가 각종 집회로 야단스럽다. 상식과는 점점 멀어지는 일련의 사태 흐름이 매우 걱정이다. 참으로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내나라 현실을… 저만큼에 이웃나라에선 폭탄이 투하되고 조만치선 미사일이 날아가는데도 선인들이 그토록 피흘려가며 지킨 '자유'는 왠일로 이땅에선 헐떡거리고 있으니 고개가 갸웃갸웃하다. 동네 한바퀴 쌩하듯 '용서고속도로'를 왕복하며 수원에 들려서 선.후배와 이러저러 이야기를 나눈 오후나절이다. 저녁나절에 동창과 함께 들어선 '누드 만두집'이다. 낙지와 쭈꾸미를 다져넣은 속살이 훤히 비쳐 '누드만두'란다. 플로베르의 소설속 "보봐리부인"의 투실한 속살일까? 혜원 신윤복의 그림속
매듭달 초하루다. 경기예총에서 주관한 "AI윤리와 이슈"와 "인공지능시대 예술" 강연을 들으려 중식 후 분주한 몸놀림이다. 강연후, 2022년 영화부문 경기예총 특별공로상도 수상한다기에 두어번 거울에 앞태 뒤태를 살핀 후에 집을 나섰다. 찰칵찰칵, 환한 얼굴들로 매듭달의 오후를 여니 수상자나 시상자 모두 여간한 복이 아닐테다.1년여를 영화제작과 영화제에 시간을 보낸터라 영화인으로서 발길들인 필자에겐 수상은 곱배기 복일테다. 상패, 부상품, 향내 폴폴나는 꽃다발을 챙겨서 환한 걸음이 '본수원갈비'로 향한다. '수관회'의 송년회 자리다. 고교동문으로 50대에서 80대 중반에 이르는 선후배들 모임이다. 행정관료, 정치인, 기업인, 교원, 법조인, 언론인, 사회단체...다양한 이력이니 세상이 모이는 셈이다. 70대 초반의 '김'선배님이 앞자리에 앉아 겨울나기(동면) 잘하라며 구운 양념갈비를 후배들 앞에 연실 밀어 놓는다. 선배님이 마련한 음악회에도 참가했었기에 유태인의 항쟁을 그린 스펙터클한 "영광의 탈출(EXODUS)" OST를 음악회에서 지휘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탓일까? 양념갈비를 불판에서 휘적이며 봉사(?)하는 모습이 여간한 솜씨다. 자원봉사센터 회장직을
모임의 년말 총회, 애.경사를 비롯해 11월이 부산하다. "어이 시간 좀 내". 군산 고군산도로 나들이란다. 60대에서 80대로 구성된 동네 다람산회 총무님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꾸뻑꾸뻑 인사하며 버스에 오르니 프랑스와 덴마크, 호주와 튀니지전의 월드컵 축구경기 주요장면이 재방영중이다. 오라잇! 시간여 달렸을까? 차창가에 스치는 들판에로 눈길이다. 한여름 무성하던 들판이 텅 비운 가을멋의 갈색뜰이다. 베품의 계절이랄까! 널부러진 김장 밭에 나훈아 선생이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 한바탕 소리내어 흔들어대나보다. 휘릭 휘리릭~ 그놈의 "정이 웬수야". 정말 "가야해 나는 가야해" 흐느적이던 가락이 생'밤' 고장의 정안휴게소를 지나 백제휴게소에 멈췄다. 듬성듬성한 관광버스의 '상추객' 차림새를 보니 가을이 저편 멀리로 떠나갔나싶다. 잠시 휘두른 눈길이 차내로 들자 "루루루…" 서너개 단추 풀은 채 두손 모은 가락이 흐른다. 만고의 진리이려나? "인생이란 사랑빼면 뭐 있드냐" "한번 딱 한번 인생인데 '쏜 화살' 같은 세월에 무엇을 그리 주저하였든가!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오늘도 사랑 갈무리" "나 당신 사랑해도 될까요~하늘이여 저 사람 사랑하게 해줘요" 젊은
구순을 넘겨 100세에 도전하시려 온갖 것에 '큰 말씀(?)' '작은 말씀(?)'을 하시는 시골동네 어머님께로 발길이다. 사람이 그리운 탓일까? 밥상을 당겨 '밥 먹어요', '베개 있어요' 쉴새없는 입말이시다. '한국인의 밥상' 재방영인가보다. 방 한켠에 놓인 TV 화면에는 연예인 최불암 선생을 비롯해 산골마을 농부, 사찰음식 선재스님, '수박무' 농사주부, '무'연구가, 요리지망생까지 등장해 "무에서 유를 낳다"의 '무'에 대한 이야기다. 가을 햇살아래 바람을 쐬다 두어번 서릿발에 거두어야 제맛이 든다는 강원양구에 농부의 소박한 말에 어둑한 저녁 방안이 따스하다. 짝꿍 배추도 곁들여야 김장철 제멋이나 '무(무우, 무수) 소리를 들어도 '왠지 기분이 좋다'. ㅜㅜ 부드러운 양성 받침이 연이은 탓이려나? 밭에 '수박무' 뽑으러 가자면 '왠지 기분이 좋다'며 평택 주부농부의 환한 얼굴에 시골정경이 눈에 선하다. 텃밭으로 발길이다. '무'를 뽑아들고 잎사귀 비틀어 몸통에 흙을 털고 '무머리' 한입 덥석 물어낸 후, 껍질을 돌려 벗겨내 우적거리던 어린시절 내모습이다. 김장철이 되면 그 아이는 어머니가 다듬질한 '무'를 우물가로 나르고 아버지는 집처마 아래 가지런히
"겨울은 아직 남아 있는데…" 짙푸른 깊은 음색의 패티김 선생의 노래에 젖어 가을햇살이 살포시 내리는 창가에서 흥얼거리는데 아내의 목소리다. "여보, 장호원장에 들러서 갈까?" "그러지 뭐" 충주호반 옆동네인 친정 나들이에 도중의 재래 장(5일.9일)이다. 지역 인근에 오산, 발안, 남양, 조암, 사강에도 재래장(5일장)이 서는 까닭에 사람사는 맛의 시골스런 멋이 환히 다가선다. 아침나절, 가을햇살이 도로에 한가롭다. 채 거무티티 가을옷 입은 우둥퉁한 산들이 도로 양편으로 늘어섰다. 시간여만에 장터에 다다르니 초입에 늘어선 차량들에서 장터냄새가 물씬난다. 도로가 방앗간에 두툼한 점퍼차림 주인 아저씨 내외분이 토시 낀 팔로 방앗거리를 연실 안으로 들이고, 두어 걸음 옆에 꽤나 손품을 팔은 알곡들이 입벌은 자루에 수북하니 쌓여 손님 맞을 채비다. 도리깨질에 붉게 멍들었나? 붉스레 팥에다가, 푸른 멍이 채 가시지 않은 녹두, 골방에서 두들겨 맞았나 싶은 검정콩(쥐눈이콩, 서리태, 약콩…), 샐쭉한 강낭콩, 배미콩, 동그르르 그루콩(백태), … 갈무리한 알몸의 제모습들이려. 눈길따라 장터내로 발길을 옮기니 전대를 허리에 찬 아줌마의 "단감이요 단감" 손님맞이둥글둥글
공자는 학문에 뜻을 둔 지학(15세)을 비롯해 이립(30세), 불혹(40세), 지천명(50세), 이순(60세) 그리고 종심(70세)으로 나이별로 별칭했단다. 칠십에 이르면 마음을 쫒으면 걸릴 것이 없으니 세상살이가 여법할테다. 제 삶에 가늠대로 세상길 나선 분들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겠다. 후배사랑이 극진한 칠순을 훌쩍하신 고교선배님 부부(서예가 박옥남 선생과 수필가 박태수 선생)의 서예전시와 북콘서트장 수원문화센터를 찾았다. 수원에서 문경으로 거소를 옮기신 까닭에 생각을 낳은 발길이다. 도잠의 "귀거래사"편의 "책부로이류게"를 읊으시려나? 또 다른 시편의 "유연견남산" 모양새를 선보일까? 입구에 마중하는 '오당' 서예가 선생의 서체와 인사하며 '무애' 수필가 선생의 글제인 '느림의 모놀로그와 새벽의 고요'에로 눈길이다. 15년전 쯤이겠다. 공군사관학교와 대학교에 합격한 두 녀석들과 함께 팔순에 이르신 지역에 어른을 찾아 뵈었다. 고교 수험생활의 빡빡함을 벗어나 나름 세상의 한길을 선택한 젊은이들에게 어른의 새해 덕담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내가 살아보니…" 그분은 말문을 열었다. 조부께서 들려준 말씀과 당신 체험의 말씀이라 시.공간의 길이와 넓이는 무량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