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노랫말처럼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 아니다.
벽에 걸린 액자 속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선사의 말씀이 떠오른다.
“태어나기 전 80년의 얼굴이요,
죽은 뒤 80년의 얼굴이로다.”
얼이 담긴 굴,
그래서 얼굴이다.
얼굴은 한 인간의 시간과 삶이 스민 자리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그 말이 향하는 곳 또한 얼굴이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 역시
생명을 품은 존재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씻는다.
단지 위생이 아니라
스스로를 대하는 최소한의 태도다.
이제 그 얼굴들이
공적인 선택의 장에 섰다.
곧 다가올 지방자치선거,
출마한 이들의 얼굴이 세상에 걸렸다.
유권자는 묻는다.
저 얼굴이 우리의 삶을 담아낼 수 있는가.
한때 우리는
거리 위에 놓인 얼굴을 밟았다.
의견의 표현이라 했지만,
그 방식은 결국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일회적 장면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상대의 얼굴을 지우고,
짓밟고,
낮추는 방식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얼굴은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삶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얼굴에는
가족이 있고,
시간이 있고,
책임이 있다.
정치 또한 다르지 않다.
얼굴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 삶 전체를 공적 영역에 내놓는 일이다.
그렇다면 선택의 기준 또한 분명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얼굴,
약속이 아니라 삶을 보아야 한다.
존중받아야 할 얼굴을
쉽게 소비하고 훼손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선택은 어렵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누군가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마른 세안을 하듯
생각을 가다듬는다.
성실한 발걸음으로
오늘을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
그 얼굴이
공적인 자리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눈 감아도
부끄럽지 않은 얼굴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