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바꿔 놓을 미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글제는 모교 총동문회가 대학교내에 마련한 <서강사랑 지식포럼> 강연 주제다. 4차산업혁명에 관한 수위 주제인 ‘인공지능’이 향후 세상을 덮을까 싶다. 수년간 이곳저곳에서 눈.귀로 접해도 주머니 안에 넣고서 만지작거리기나 했는데 때 맞춘 강연이다. 4차산업혁명의 주요 핵심기술이 매체에 기사화 된지 오래요 도서관 서가에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으니 인공지능 (AI)을 비롯해 사물 인터넷 (IoT), 블록체인 활용 영역, 가상현실 (VR), 증강현실 (AR), 고성능 로보틱스, 양자 컴퓨터, 뉴로모픽 컴퓨팅 등은 현대인의 교양과목이라 할만하다.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신기술을 배우랴 적응하랴 꽤 분주한 일상이다. 몸에 편리성과 일의 효과, 효율을 가져오니 이는 개인에겐 능력이요 집단과 국가에겐 비교우위를 가늠할 경쟁력이겠다. 귀에 익은 기업들이 시대적 흐름을 통찰하지 못해 사라진 경우가 허다해 선택의 문제가 아닌 배우고 익혀야할 과제란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처할 국제적 규약도 거론하는 형국에 기술 습득은 서두를 일인게다. 어딘가로 고속으로 돌진하는 세상의 변모다. 숲에서 활쏘던 ‘부시맨
노벨문학상과 한국문학의 세계성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글제는 경기언론인클럽에서 마련한 강연회 주제다. 발표는 문학평론가이신 000 원로께서 맡으셨다. 2011년 노벨상 시상식에 초청받은 강연자의 참관기를 읽고 자리에 앉았다. 당시의 감동을 회고하는 서너장 사진에 대해 설명이 있은 후, 평론가로서 수상작가와 작품에 대해 응축된 평설을 이어갔다. 수상작의 연원과 문학성을 살펴감에 멜빌의 <백경>, 카프카의 <변신>이 작품뼈대로 등장한다. 돋움하여 저명한 서양철학자 니체, 하이데거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동양의 붓다사상과 노자의 무위사상,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 킹목사의 사회운동까지도 엮어 작품세계를 꿰었다. 그외에도 아득한 고대 그리스 호메로의 서서시 <일리아드//오딧세이>와 단테의 <신곡>, 최근의 BTS의 K-Pop까지 호출한다. 창작을 위한 수상자의 치열한 연단과 작품세계를 시간여 평론으로 어찌 알랴만,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노벨문학상이기에 채 국내에 머문다는 한국문학이 지향할 세계성이 관심사다. 이에 대한 청중의 물음에 평론가는 수상작품에 담은 원형을 짭게 축약하며 우리만의 평가와 주장으로는 노벨문학상에 접근
이렇게 좋은 날에 시인/영화감독 이렇게 좋은 날이 있으랴! 신혼부부 탄생에 “축하한다”며 신랑과 어울려 지낸 세월을 곁들인 친구의 덕담에다 감미로운 맞춤형 축가 <청혼>이 발길한 하객들에게 기쁨을 더한다. 천재 화가인 000선배의 자제 결혼식이다. 두어달 전부터 다짐했기에 다른 일정을 비켜둔 채 오랫만에 서울로 나들이다. 뭐든 시작은 설레는 일이라 화혼은 만인으로부터 축복이 마땅한게다. 해맑은 미소로 식장을 환히 밝힌 신랑과 신부에게 거듭 박수를 보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있으랴! 식후, 호텔을 나서니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 덕수궁, 고층건물, 소공동 지하상가, 호텔이 빙둘러 서 오후 햇살을 맞고 있다. 광장에 설치된 지방특산물 전시코너를 힐끗하며 지나치니 도로가에는 대규모 집회가 진행중이고 건너편 건물 지하에는 제36회 <2024년 대한민국실내건축대전> 행사중이다. 이사한 아파트에 가구들의 제자리가 어설프다 싶어 행사장에 들어섰다. 주거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하니 출품작의 공간구성에 눈을 넓게 열었다. 건축 또한 예술인 까닭에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창작물로 지난한 정진이 따르기에 쾌적한 생활공간은 물론이요 멋진 도시공간을 창출할 예비
사)한국사진작가협회 사진공모전을 다녀오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제15회 화성지부 정기회원전과 제6회 화성전국사진공모전이 열렸다. 작가의 발길이 닿은 곳에 빛을 촬영한 귀한 창작물인 사진전시회다.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 이란다. 작가들의 예술혼이 담긴 2층 전시실을 둘러보니 대자연의 사계절 뜰과 어울린 인간의 제멋을 노래한다 싶다. 하늘, 달, 안개, 바다, 노을, 갯고랑, 꽃밭, 나무, 바위,..., 등 생활터전에 여러 군상들의 빛과의 어울림이다. 어찌 작가의 심오한 정신에 닿으랴! 자연의 조화를 오랜 기다림과 찰나의 손동작으로 한컷에 담아냈다. 글발을 서너 작품에 들이면 섭다리에 내려 앉은 일출에다 티끌없는 순백의 아가 모습, 바다건너 풍경도 출연했다. 살던 시골에서 흔히 보던 풍경 가운데 홍시를 보니 울엄마 생각나고 음메 소를 위해 새벽녘 쇠죽을 쓰던 울아버지도 생각난다. 참 선한 모습들이다. 다정한 춘심이랴! 수상한 추심이랴! 오롯한 제모습들이 이제야 님을 만나 꽃을 피운게다. 바람불고 비 내려도 그자리에 제모습 피우나니 내 살아온 날을 비추이는 명경이로세. 두 손 모으니 하늘이 열려 태고적 하얀 설산도, 드넓은 바다도 내 품이려니 놀랍고 놀라워
황구지천변 기행11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여보, 점심먹고 산책가자” 마트를 다녀온 아내의 목소리다. 경기펜문학회, 안동시제, 지인 결혼식 나들이를 접고 거실에 들은 갈햇볕도 모른 채 자판을 두드리는 나를 부추기며 한 망태기 그득히 담아온 햇살기운을 건넨다. 아파트 인근 천변을 벗어나 정남면 괘랑리 초입에서 용수교까지 2키로 내외 거리의 산보다. 탁트인 전망에 눈길 발길이 산뜻하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모래톱이 널찍하니 물길도 순하다. 웃통을 벗은 채 땀을 흘리며 한 청년이 둑방길을 달려나간다. 뒤를 이어 자녀 둘이 좌우로 엉덩이를 씰룩이며 열심히 페달을 밟아 앞선 아버지 자전거를 쫓아가는 녀석들 뒷모습이 귀여워 꽃송이 다섯개를 그려줘야겠다. 오산시 지단의 삼미천과 보통리 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황구지천에 들어 하폭을 넓히며 흐른다. 화물차, 버스, 승용차, 오토바이들이 수원-오산, 봉담-동탄, 정남-오산간의 도로위를 제모습에 어울린 제소리 내며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시간쯤 걸었을까? 천변에 조성한 제법 넓은 체육공원에 다다랐다. 비스킷, 커피, 귤이 꿀맛이다.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고, 원시적 감각을 깨우느라 맨발로 흙살이 단단한 운동장을 걷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뒤이을 구절은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의 노랫말로 가을을 품은 서정성이 뛰어나 오늘밤에 누군가는 눈 감은 채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지난 세월을 사릴게다. 소실점의 꾸깃한 기억이 살아나 창가로 다가오더니 이내 저멀리 들판을 가르며 흐르는 천변둑방길에 하나 둘 눕는다. 어찌 청춘시절의 추억뿐이랴! <잊혀진 계절>의 ‘10월의 마지막 밤’ 구절이 살아온 세월을 점젆게 대신해주니 그대와 나에게 참 좋은 노래인거다. <잊혀진 계절>의 키워드는 꿈이다.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단다. “늦은 밤 창가에 앉아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던” 콧수염 가수도,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던” 파마머리 가수도 한껏 목청을 돋웠으니 꿈을 꾸었던거다. 그 젊음의 울림으로 내 안에 나를 만나게 되어 오늘밤이 참 고운 시간이다. 돌려 앉아 벽에 걸린 사진액자 속에 젊은 내게로 눈길이다. 곁에 초롱한 눈망울의 네살박이 딸, 아내, 일곱살 아들녀석이 참 다정하다. 긴 시간 나를 태우던 환한 꿈인 게다. 그래, 열심히 살았네 자찬하려니까 눈이 시리다. 가슴이 먹먹하다. 늘 ‘시’공부를 깨우시던
62회 영화인의 날에 부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충무로 나들이다. 영화계 발전에 한 획을 그었거나 긋게 될 신예들, 이들을 응원한 분들, 특히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어울린 105주년 영화인의 날이다. 영화인으로서 이렇게 큰 날에 수상을 한다니… 시상식에 앞서 <AI시대 한국영화의 혁신과 성장전략>기념 세미나가 있었다. 영화분야에 AI가 미칠 영향을 이곳저곳에서 들었던터라 저장된 기억들에 맞춰 되새김질이다. AI를 활용해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기조발표와 패널설명은 그리도 높은 헐리웃과도 맞짱 뜰 수 있음이니 영화계로선 매우 반길 일이다. 허나 세미나와 달리 그리 환하지 않은 영화인의 날이다. 영화발전을 위한 자정의 신호탄인가? 오랜 동안 투명하지 않은 일처리 결과인가? 법원의 ‘탕탕탕’이 그간 장정을 마무리 하는 것인가? 너무나도 한심한 일인게다. 수년간 우당우당하더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세미나가 끝나고 시상식에 앞서 법원선고에 대해 영총회장의 설명이 장내를 누그리나 안타까운 일이다. 기억할게다. 어느 가수는 ‘너와 나’ 사이에 바다가 있어 이별을 가정하고 어느 가수는 ‘너와 나’를 동반자로 간주하
예산저수지 순행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달포전에 약속된 만남이다. 여러 모임중에서 지위, 재산, 지식의 높낮이도 그저 털털하니 편안한 고향 동네 장년들의 모임 일칭 다람산친목회 나들이다. 예산에 저수지, 추사 김정희 생가, 삽교천을 순행하는 일정이라 부풀어 오른 기대감에 출발장소에 일찍 나갔다. 언제 만나도 그저 구수한 누룽지 맛나는 만남이라 저마다 옛 시골집 헛간에다 나뭇짐 부리는 환한 발길들이다. 차창가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어울려 지난 세월도 휙휙이다. 시간여 걸려 저수지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벌써 만차다. 어린 맘으로 모노레일에 승차하니 꽤나 흥미롭다. 소나무, 참나무, 측백나무, …, 등이 늘어선 산허리를 돌고 산등성이를 오르락 내리락하니 마치 세상살이 모양새 같다. 저수지 둘레가 백여리요 동서길이가 오십여리에 이른단다. 온화한 수면에 어울린 건너편 산세도 제멋으로 누웠다. 산허리를 돌다 바라본 저수지 출렁다리다. 몸이 좌우로 흔들려 출렁다리란 느낌이 들어 <꽃마차> 타는 세상살이 대신 출렁다리의 놀이란 생각이다.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의 힐링길, 중간 쉼터에 도착해 사람들을 바라보니 얘기를 하며 제 중심을 유지한 채 건너오간다. 조명등이 설
햇살이 아까워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주말의 수변드라이브는 장년에겐 나름 제멋을 지닌 모양새다. 무엇보다 그리 흔히 만나는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없기에 FM 음악방송에로 귀끌림이다. 오감 중 청각이 깨이자 차안에 들은 따스한 햇살로 전신이 아늑하다. 햇살이 계절따라 변하는가보다. 앞쪽 저멀리에 우뚝 솟아있는 <양산봉>의 총총한 나무들은 겨울채비하느라 제몸을 달구고, 지맥사이 골엔 가을 햇살을 바삐 담고 있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 자연인이 되어봄도 꽤 운치있을게다. 햇살과 어울려 제 멋을 드러낸 말없는 군상들과의 대화도 의미로운 시간인게다. 엊그제 일이다. 외출했다 돌아온 평생지기가 햇살이 아까우니 천변에 산책을 가잔다. 끄적댐을 멈추고 밖에 나서자 곧 몸이 환해졌다. 저수지둑에 서서 ‘해’를 바라보니 눈이 부시다. 휘릭하면 마치 오랜동안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빠삐용’이 나와 보았던 그 자유의 ‘해’이며. 휘리릭하면 검정 안경 쓴 늘날씬한 해변가 여인의 구릿빛 몸매를 강렬히 애태우던 ‘해’요, 그리스판 대자연인(?) 디오게네스가 인생에 대해 알렉산더를 깨운 현장학습장에서의 그 햇볕인게다. 해와 달은 대자연을 노래하는데 으뜸이
문고리와 문턱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두 달여만에 경기도청, 의회, 교육청을 방문했다. 매번 주차하느라 주차장을 서너바퀴 돌아야하는 번거로움에 걸어들었다. 현관과 지하층을 두어번을 왔다갔다 게걸음 후에 마침내 엘리베이터에 승차해 10층 방문장소에 도착했다. 빌딩만큼이나 권위가 하늘 높이 솟았나보다. 천리길(?)을 달려왔건만 문턱이 이리 높아서야 원. 눈을 감아야만 문고리 찾을 수 있으니 원. 문안에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힘들게 하나? 원래 문턱은 집의 문기둥의 좌우를 붙잡아 주는 것이거늘 발길을 맴맴하게 붙드나? 문을 여닫거나 잠글 때 쓰는 문고리이건만 어찌 장님 술래잡기놀이를 하게하나? 문턱과 문고리에 관련한 속담이 의미롭다 싶다. “문턱 높은 집에 무종아리 긴 며느리 생긴다”. “문턱이 낮은 글이 좋은 글이고 문턱이 낮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장님 문고리 잡았다” 등 곱씹지 않아도 알아채는 말로서 어린시절 문턱을 밟으며 드나들 때 꽤나 집안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누가 설계했을까? 누가 감리 했을까? 어린시절 미로 탐험놀이를 즐겼나보다. 백성을 섬기는 분들이 근무하는 건물들이다. 섬기는 것은 두 손으로 받치는 것이며, 지배하는 모습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