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홀릭큐브8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현대 과학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어 놓았다. 특히 양자역학은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가능성과 관계의 상태로 설명한다. 입자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여러 가능성 속에 존재하다가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결과로 드러난다. 또한 물리학 전반에서도 힘과 에너지는 관계를 통해 전달된다. 세계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관계의 네트워크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바로 인공지능 시대다 AI는 이미 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식의 생산과 처리라는 영역에서 인간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AI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그 결과를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지는 않는다. AI는 패턴을 학습하지만, 그 패턴을 넘어서는 방향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관계를 정의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우리는 더 이상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
모든 움직임에는 구조가 있다-홀릭큐브7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구조는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권도의 동작을 떠올려 보자. 태권도의 품새는 단순한 동작의 나열이 아니다. 방향, 균형, 중심, 흐름이 정교하게 연결된 구조다. 한 동작이 다음 동작과 이어지며 전체 흐름을 만들어낸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개별 선수의 능력보다 패스와 위치,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 관계가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음악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 하나의 음은 의미를 가지기 어렵지만, 리듬으로 연결되고 화성으로 쌓일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수학 또한 예외가 아니다. 숫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패턴과 관계의 표현이며, 공식은 구조를 압축한 언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들은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원리를 가진다. 움직임 → 연결 → 구조 이 흐름은 몸, 예술, 학문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잘한다’고 말하는 순간은 대개 구조를 이해하고 있을 때다. 반대로 어려움을 느낄 때는 구조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이 구조를 어떻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영역
보이지 않는 것을 구조로 만든다는 것-홀릭큐브6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인류의 역사 속에는 보이지 않는 원리를 눈에 보이게 만든 결정적 순간이 있다. 바로 우리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소리라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구조로 풀어낸 체계다. 자음은 발성기관의 형태를 본떴고, 모음은 천지인의 원리를 담았다. 이 둘이 결합하면서 소리는 질서를 얻고, 의미를 전달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보이지 않던 것이 구조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관계, 과정, 구조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시도가 등장한다. 공간과 관계를 구조로 드러내는 방법 홀릭큐브는 바로 그 시도 가운데 하나다. 한글이 소리를 구조화했다면, 홀릭큐브는 공간과 관계를 구조화한다. 이는 단순한 도구의 차이가 아니다. 표현의 도구에서 구성의 도구로의 전환이다 우리는 이제 생각을 말하는 단계를 넘어 생각을 만들어가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구조적 사고는 특정 분야에만 머무는 것일까? 다음 글에서는 이 원리가 몸과 예술, 수학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다시 배울 것인가? -홀릭큐브5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몸으로 느끼고, 놀이를 통해 연결하며, 과정 속에서 구조를 이해하는 방식.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감각은 사라졌다. 놀이를 멈추고 정답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결과 우리는 형태는 이해하지만 구조는 보지 못하고, 결과는 기억하지만 과정은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분명해진다. 보이지 않는 구조를 우리는 어떻게 다시 배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고, 관계는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고, 이해만으로는 깊어지지 않는다. 경험이 필요하다. 보고, 만지고, 연결하면서 스스로 구조를 만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전환이 요구된다.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 그 필요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홀릭큐브’다. 홀릭큐브는 단순한 조립 도구가 아니다. 정해진 형태를 완성하는 장난감도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만들고 구조를 드러내는 사고 도구다. 비어 있는 자리에서 가능성이 열리고, 연결이 이루어지며, 그 관계가 쌓여 하나의 구조가 된다. 이 과
놀이 속에 숨겨진 구조의 비밀 –홀릭큐브4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전통놀이에는 구조의 원리가 담겨있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아이는 이유 없이 웃고, 이유 없이 몸을 움직인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도리도리), 손을 마주치며 소리를 낸다(짝짜꿍). 단순해 보이는 이 움직임 속에는 이미 질서가 숨어 있다. 좌우의 반복은 균형과 방향을 만들고, 손의 접촉은 리듬을 낳는다. 리듬은 흐름이 되고, 흐름은 구조로 이어진다. 잼잼, 곤지곤지 또한 같다. 움직임이 연결되고, 연결이 쌓여 구조가 된다. 이제 시선을 넓혀 보자. 윷놀이는 우연과 선택이 만나는 구조다. 던짐은 확률이고, 말의 이동은 필연이다. 그 선택은 관계를 만들고, 판 전체의 흐름을 바꾼다. 369놀이는 시간 속 구조다. 숫자는 흐름을 만들고, 규칙은 긴장을 만든다. 그리고 특정 순간, 우리는 반응한다. 중요한 것은 계산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규칙을 읽는 감각이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아이의 몸짓, 손놀이, 윷놀이, 369놀이까지— 모두 다른 듯하지만 하나의 원리로 이어진다. 움직임 → 연결 → 구조. 그 구조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작동한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저 놀았을
세상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로 이루어졌다-홀릭큐브3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지난 글(435)에서 우리는 물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물질이라고 답한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 우리는 그것을 세계의 실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무가 된다. 길 또한 마찬가지다. 걷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길이 된다. 말 역시 듣는 이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세계는 고정된 물체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위해 세 가지 단순한 개념을 떠올려 보자. 첫째, 비어 있음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다. 둘째, 연결이다. 흩어져 있던 것들이 서로 이어질 때 비로소 관계가 생겨난다. 셋째, 구조이다. 연결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눈에 보이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다. 즉, 가능성은 연결을 통해 관계가 되고, 관계는 구조로 드러난다. 이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다. 흥
우리는 왜 생각을 잘 못할까 -홀릭큐브2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지난 글(434)에서 필자는 창의적 사고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손으로 흙을 일구듯, 생각 역시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짚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생각을 잘하지 못할까.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문제를 푸는 법, 정답을 고르는 법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일에는 서툴다.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그동안 ‘결과’를 배우는 데 익숙해져 왔기 때문이다. 공식의 결과, 역사의 결론, 정답이라는 이름의 도착점. 그러나 그 이전,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과정과 관계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식을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연결을 발견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즉, 생각은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수학, 과학, 예술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는 언제나 연결 속에서 의미를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과 지식 사이를 잇는 ‘관계의 눈’이다. 세상은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변화하는 관계의 흐름이다. 우
창의적 사고-홀릭큐브1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이틀 연이어 드나들기 어려운 산자락 밭에 감자를 심었다. 씨감자 값에 기름값, 식대와 자재비, 세탁비까지 더하면 차라리 사 먹는 편이 경제적일 터이다. 그럼에도 손수 흙을 일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푸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순간, 그 생명의 기쁨이 비용을 넘어서는 까닭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농사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둑한 산길을 돌아 나오며 한 발명가를 떠올린다. 한평생 발명에 몰두해 온 그의 사유는 이미 익히 알려진 물리학의 경계에 닿아 있다. 그가 고안한 홀릭큐브. 이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공간의 언어’라 할 만하다. 지식을 쌓는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차오르는 깨달음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일깨우는 교육 도구로서 의미가 크다. “새처럼 날 수는 없을까?” “저 행성으로 갈 수는 없을까?” 이러한 질문이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띄웠다. 결국 창의성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글을 쓰며 생명과학과 에너지, 그리고 우주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기존 질서를 넘어서는 호기심과, 그것을 끝
건달산, 정상 앞에서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발안천의 물줄기를 따라 남양호로 이어지는 길목, 건달산을 찾았다. 동서남북 문화기행의 한 장면을 담기 위해 약속된 산행이었다. 산에 들어서자 말이 먼저 사라졌다. 고요가 길을 대신했다. ‘건달산.’ 이름만으로는 통달이나 풍운의 기세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바위 많은 산이라는 소박한 유래를 지녔다. 이름과 실체 사이, 그 간극만큼이나 사람의 기대 또한 쉽게 방향을 바꾼다. 반 시간 남짓 올랐을 무렵, 길이 느슨해졌다. 정상이 가까우리라 여긴 순간, 발걸음은 다른 곳으로 기울었다. 문 닫힌 암자 주변으로 접어들며 우리는 이내 길을 잃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길에는 방향이 없었다. 안개 한 점 없는 날이었으나, 길은 분명 사라져 있었다. 눈앞에는 정상이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다. 오르지 못한 채 멈춰 선 자리에서, 비로소 숨이 들렸다. 거칠던 호흡이 가라앉고, 몸의 결마다 느리게 생기가 돌아왔다. 그때, 봄이 먼저 다가왔다. 진달래의 꽃망울과 개나리의 빛이 길 아닌 곳에서 조용히 피어 있었다. 산은 오르는 곳이면서 동시에 내려오는 곳이다. 푸른 소나무는 제 빛을 지키고, 낙엽은 발밑에서 제 소리
봄맞이 – 천변기행 23 우호태 청둥오리 머무는 물결 위에 말없이 흐르는 황구지천 어제와 오늘의 경계 없이 시간은 스미듯 지나간다 어디서 불어와 머무는 바람인가 봄빛에 실린 마음 하나 조용히 나를 향해 돌아와 내 안의 나를 깨운다 멀리 산자락 푸른 솔빛은 세월을 건너도 흔들림 없고 흐르고 견디며 살아온 시간 그 속의 내가 나를 안아준다 아, 고요한 나의 삶이여 때를 따라 스스로 피어나 밤하늘 가장 늦게 켜지는 빛이 되고 들판에 이름 없이 번지는 꽃이 된다 말없이 깊어지는 이 순간 나를 바라보는 나와 함께 봄은 그렇게 내 안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