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동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충청도로 넘어 가유~. 이곳에 오니 볼 것도 많네. 추풍령, 충주호, 탄금대, 중앙탑, 낙화암, 백마강, 현충사, 계룡산, 천리포, 속리산… 헐떡헐떡~” 돈키: “임마, 서수남 하청일 노래 ‘팔도유람’ 부르냐?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얼룩백이 황소’가 우는 냇가도 건너보고, ‘이리가면 경상도길 저리가면 전라도길’ 그 한밭(대전)에도 가보자구.” 호새: “언제는 서두르시더니 왠일이래요?” 돈키: “그때 그때 다른 겨. 요즘은 말씨도 멀티로 구사해야 되는 겨.” 호새: “워매, 인자 말씨도 사투리를 섞어 불었소. 정신줄 놓아 능교?” 돈키: “이즘엔 그래야 산다잔여.” 호새: “충청도 오니 양반걸음 하시는 갑소?” 돈키: “양반? 하기사 충청양반이 유세를 하지. 근데 이즘엔 그런 양반 격이 많이 떨어진 듯 해. 그래도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체면과 절개가 선비정신의 뿌리인거야.” 돈키(계속): “조선의 선비들은 ‘이(理)’로 ‘기(氣)’를 다스리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를 따랐어. 그게 바로 유교적 선비정신이야 호새: “이즘에도 그런 공자, 석가, 예수님 말씀처럼 인덕과 자비, 사랑이 실천이 필
친구 징구에게 징구야, 이제 우리도 어느덧 ‘공식 노인’의 문턱 앞에 선 것 같구나. 단순히 나이 든다는 뜻만은 아닐 거야. 삶의 흔적과 무게가 마음 한구석에 내려앉는 그런 변화 말이다. 법으로 노인이라 인정받는 나이는 만 65세라지. 돌아보면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께서 농사짓던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나이에 다다른 내가, 문득 그분들의 자리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며 “아… 나도 그렇게 늙었구나” 싶어지는구나. 청춘의 한 복판이 바로 어제 같고, 캠퍼스에서 뛰놀던 우리 모습이 생생한데 이제 남은 시간이 10년, 20년이라는 생각이 들면 시간이란 녀석 참 야속하고 빠르다. 징구야, 세상은 많이 변했지. 우리는 부모 모시고, 자식 키우며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대다. 그런데 요즘엔 노인이 병마와 친구가 되고, 아직도 자식이 돌봐야 존중받는 시대라니. 이제는 삶의 뒷날마저 국가와 사회에 기대어야 할 세상이 되었다. 스스로 버티고 책임져야 할 숙제가 하나 늘었지. 연탄불에 삼겹살 구워 놓고 소주 한 잔 기울이던 그 선배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건, 나이 들어 힘들고 버거울 때 효도받기 위해서다.” 유교적 정(情)이 살아 있던 사회에
오죽화(烏竹花)를 그리며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강원도 소풍이 끝나 충청도로 넘어가네요. 내일이 한가위라니, 보름달이 뜨면 좋겠어요. 바닷가 모래밭에도, 오죽헌 대숲에도 은빛 달빛이 고요히 번질 테죠. 돈키: 그래, 보름달이 떠서 마음이라도 환히 밝아지면 좋겠어. 검은 대에 피는 하얀 꽃, 오죽화처럼 세상일도 순한 마음으로 서로를 비추면 얼마나 좋을까. 호새: 멀리 떨어진 벗들도, 오늘 밤 달빛 아래선 다 함께겠죠? 돈키: 그렇지. 오늘은 말보다 마음으로 인사를 전하는 날이야. 지난 날 강릉의 밤, 벗들과 송이주 한잔 나누던 그 정을 달빛에 띄워 보내볼까. 〈오죽화(烏竹花)를 그리며〉 여섯마디 발길들 오고감에 분별 있으리 팔도 벗님네들 아침 햇살에 선연하다 철수와 영희도 반기네 갈매기 날으는 백사장 한잔 송이주 마셔보세 대관령 옛길에 들어서니 낙엽처럼 순결한 마음 달빛에 오죽화가 피겠네 호새: 송이주 맛이 어때요? 동기들과 달을 바라보며 이태백이 처럼 한시름 달래랬나요? (與爾同銷萬古愁-장진주사) 돈키: 맞아. 달이 차면 마음도 가득 차는 법이지. 우리의 갈길이 달라도, 한가위 달빛 아래선 한 마음인거야. 호새: 다음 다시 올 땐 꼭 송이주 한잔 해
죽장에 삿갓 쓰고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맹맹하니 두어 곡 뽑아봐요. 돈키: 좋지.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미스김도 잘 있어요, 미스리도 안녕히~…” 호새: 지난번 <전원일기>에도 인용된 노래 말 같아요. “붓펜에 배낭 메고 유람 삼천리…” “…경포대도 잘 있어요, 정동진도 안녕히~” 이렇게 개사하면 괜찮겠네요? 돈키: 허허, 김삿갓 아니더냐. 그 삿갓은 단순한 차림이 아니라, 사람이 지닌 본성-양심의 상징이야. 술 한잔에 시 한 수 읊으며 세상을 유랑하던 시인, 오늘 그 자취를 따라 영월에 온거야. 이곳은 단종의 애사(哀史)가 깃든 청령포와 장릉이 있는 고장이야. 그 비감 속에서도 난고 선생의 해학은 바람처럼 웃음을 남기지. 호새: 듣자니, 몇 마디로 사람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려 웃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면서요? 돈키: 그건 재주라기보다 성품에 공부를 얹은 거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힘들면 헛웃음이 나오는 법이지. 참된 웃음은 진심의 여백에서 피어난단다. 그분의 해학은 서민의 눈물 위에 핀 웃음꽃이었어. 호새: 그럼, 김형곤이도 그런 계보인가요? 돈키: 갑자기 웬 김형곤이야? 허허. 그렇구만. 그도 ‘공포의 삼겹살’
한가위,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다 글 송용호 “자식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의 무게가 깊게 느껴진다. 우리 집은 대대로 제사를 중시해온 유교 전통의 가풍을 지켜왔다. 그 중심에는 엄격하셨던 아버지가 계셨다. 나는 한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신앙의 길에 들어서려 했지만, 명절날 아버지는 단호히 말씀하셨다. “집안의 장자인 너만큼은 종교의 자유가 없다. 제사를 모셔야 한다.” 그 말에 나는 신앙의 자유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지금은 집사람이 홀로 차례상을 준비한다. 장을 보고, 김치를 담그고, 음식을 장만하는 그 고단함을 곁에서 지켜보면 미안하고 고맙다. 요즘은 많은 집에서 명절을 간소화하거나 가족여행으로 대체하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전통을 지킨다. 팔월 한가위는 가을 한가운데,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기다. 그 풍성함 속에서 조상님께 감사드리고, 가족이 함께 웃는 시간이야말로 삶의 큰 축복이다. 나는 한때 줄기세포 기반 이종장기이식 기업을 운영하며 생명의 연장 가능성을 좇았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가는
아리랑 고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고갯길 오르니 산내음이 좋네요. 노래 한 곡조 뽑으시죠. 돈키: 좋지. 노래란 게 별거냐. 힘들어도 부르고, 슬퍼도 부르는 게 노래지. 산길에선 산노래가 제격이지. (조용히 흥얼거리며)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들에 들에 꽃이 피네…” 호새: 그거 ‘산유화’잖아요? 돈키: 그래, 여러 이들이 작사하고 노래했지. 동산에 올라 휘파람 불며 부르면 참 좋아. 호새: 여긴 정선의 산고개잖아요. 뭐가 어울릴까요? 돈키: 글쎄, 뭘 부를까? 호새: 인생의 단맛 쓴맛 다 보고, 장터에서 곤드레밥도 먹었으니 ‘정선아리랑’이 딱이지요. 돈키: 아리랑! 좋지. 고개 오르기 전, 흥 좀 돋워볼까나. 호새: 그런데요, 밀양·진도 등 수많은 버전이 있다던데, 왜 그렇게 많을까요? 돈키: 부르는 사람과 시대마다 삶이 달랐으니 자연히 곡조와 말맛이 달라진 거지. 사랑과 애환, 노동과 정서가 배어 있는 게 아리랑이야. 그래서 세월을 건너도 통하지. 정선아리랑은 고려 때부터 전해왔다 하잖아. 작자 미상의 노래가 천년 세월을 버텼으니, 그게 바로 민족의 숨결이지. 호새: 부르면 좋고, 울면 위로되고, 춤추면 흥이 나는 노래네요. 돈키: 그렇지. 아리
한가위 추석에 비가오면 달님도 숨바꼭질 고향 길 질척이는 아스팔트 낮빛처럼 그리움 적시우는 수수닢 너풀거림도 산마루 넘어 오는 땅거미 드리워지면 손주들 보고픔만 도랑지어 흘러가듯 들녘에 세워져 있는 허수아비 옷자락 너풀거리는 춤사위도 멈추어진 비 내리는명절~
방패연을 날리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태백산 정상에서 팔월 한가위 소원맞이 방패연을 날리다”라는 제목, 기사로 내면 어때? 호새: 새벽 다섯 시부터 무슨 기사 타령이에요? 연이라면 동네 뒷동산이나 수원 연무대에서도 날릴 수 있잖아요. 돈키: 그래도 새벽에 신문 읽는 사람들이 있거든. 아침엔 생각이 깨어나는 법이지. 오늘은 원칙맨과 젠틀맨도 함께 산행할거야. 어, 저기 오네. 원칙맨: 새벽 공기가 참 상쾌합니다. 오늘 오름길이 기대되네요. 돈키: 천등산 휴게소에서 아침 먹고, ‘유일사’ 주차장에서 천제단까지 3.5km. 오후 여섯 시쯤이면 돌아올 수 있겠지? 젠틀맨: 아마 아홉 시쯤 도착할 듯합니다. 해발 1,567m라 날씨는 여기와 사뭇 다를 거예요. 자, 출발하죠! –휘리릭– (비 내리는 산길) 원칙맨: 비옷을 챙겨야겠군요. 대학시절 여러 산을 오르며 배운 건, 결국 마음을 다잡는 일이었지요. 오랜만에 오르니 가슴이 가뿐합니다. 돈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척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든든하지 않아? 태고의 품에서 한강과 낙동강이 흘러나왔으니 민족의 젖줄이 된 산이지. 젠틀맨: 그 품에 안긴다니 발걸음이 설레네요. 돈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환웅이
거울아 거울아!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돈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옛날 동화 백설공주의 한 대목이야.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예전 해병대 출신 미남 가수 남진이 불렀던 노래 말도 떠올라. 요체는 겉모습보다도 결국 마음(心)이 아니겠니. 호새: 사람이 나이 들면 눈이 뜨인다는 게 바로 철이 든다는 거겠지요? 돈키: 저 경포호를 보아라. 오대산과 대관령에서 굴러내린 물방울이 모여든 천년 세월을 품은 호수란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까지 비추는 거울 같은 곳이야. 네가 처음 약속한 대로 끝까지 주인을 받들 건지, 딴짓할 건지 다 드러나지. 호새: 아이고, 이 세상에 나 같은 충직한 놈이 또 있을까요! 주인님이 홍당무 몇 개만 줘도 집사 노릇 똑소리 나게 하잖아요. 내 허리 좀 보이소. 백두대간처럼 꼿꼿하지 않습니까. 주인님에게 뒷발차기 한 적이 있나요? 그나저나 요즘은 코로나가 눈으로도 옮는다던데, 까만 안경 쓴 이들이 왜 이리 많은지… 돈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오죽헌(烏竹軒)부터 들르자꾸나. 호새: 영화박물관에도 가봐요. “경포대에서 갈매기와 댄싱” 멋지지 않습니까! 돈키: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의
자유,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 송용호 ‘자유’는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가치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기엔 너무나 복합적이다. 영어로는 Freedom과 Liberty, 두 단어로 표현되지만, 그 본질은 분명히 다르다. Freedom은 개인이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상태다. 반면 Liberty는 사회적 질서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때때로 자율성의 일부를 제약하는 ‘공동체적 자유’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유주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Liberty의 개념이다. 역사의 분기점, 1987년 6월 대한민국 현대사는 1987년을 기점으로 커다란 전환을 맞이했다. 6·29 선언은 군사정부와 민주화 세력이 이뤄낸 절묘한 타협이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주의 세력이 평화적으로 권력을 공유한 사례는 흔치 않다. 이 타협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토양을 바꾸어 놓았다. 이 시기를 전후로, ‘운동권’ 역시 분화하기 시작했다. 1987년 이전의 운동권은 반미·통일주의·민중해방을 내세운 이념 중심의 학생 운동 세력이었다. 이들은 ‘삼민주의투쟁위원회(삼민투)’를 주축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