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삼총사와 양산동 친구, 중학교 동창 4인의 해맞이다. 일출 시간에 맞춰 06:20분경 만나 오산시 소재 세마대로 출발이다. 서울에 발생한 사태의 가르침이려나? 정상에 이르는 언덕길에는 사전에 염화칼슘이 살포되어 있다. 여기저기 위험장소에도 안전라인 설치와 안내인 등 방호조치가 조밀하다. 한발 두발 독산성에 '올랐어라'. 해 맞으러 '올랐어라'. 입구에서 1.4km 거리 정상에 도착하니 봉사단이 준비한 별미의 '생강차와 작두콩차'가 해맞이 시민들의 가쁜 호흡을 후후 어른다. 더딘 걸음 탓일까? 뿌연 구름 탓일까? 눈.귀에 '야아' 탄성 자아낼 햇님의 자태가 보이지 않아 돌아내려오는 발길이 늘어선다. 중천에 햇살인들 어떠랴! 하산길에 맞은 햇발아래 덩치 큰 나무옆 나란히 서 찰칵이다. 전문가 말을 빌면 "사진은 빛을 찍는 것"이라니 '치즈'한 얼굴에도 새해의 밝은 기가 듬뿍이겠다. 벗님네들 소원한 탓일까? 산허리 둘레길에 토독, 타닥, 터덕,... 발걸음들이 환하다. 엄마.아빠 손잡고 어둠속에 집을 나선 꼬마 왕자님.공주님에서 세월의 비탈길에 선 분들에 이르도록 두 손 모은 소망들이 저멀리 죽미령에 닿고 양산뜰에도 나를테다. 까톡까톡, 친지들로부터도 해맞
내고향 홍난파 합창단의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사공의 노래>(함효영 작사, 홍난파 적곡, 장동인 편곡)가 2부를 열었다. 그대는 뭐하시려오? 배 떠나가는데… 흰<눈>(김효근 작곡, 강문철 편곡)이 쌓인 "조그만 산길에 내 작은 발자국 남길" 길 떠나련다.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그 몸부림에 <새날이 오네>(이호준 작사 작곡), 그런 날이 있을까만, <애수의 조선>(홍난파 작곡, 김한기 편곡) 그 세월의 강을 바이올린에 실어 건너가니 "사는게 무언지 하무뭇해 그대 그리워지는 날에~ 꽃으로 서 있을게" 고운 님<마중>(허림작사, 윤학준 작곡, 장동인 편곡)이겠다. 드디어 귀에 익은 <고향의 봄>(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장동인 편곡)! 내 고향의 봄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화성'이다. 꽃고을 '화성'이니 바람결에 하르르 '꽃동네'에 절로 얼쑤다. 어깨춤에 어찌 제멋의 <새타령>(박희경 작사, 조두남 작곡)이 없으리오. "대붕새에다 봉황새로다. 상사병에 기러기요~ 배띄우는 갈매기니" 온갖 새 날아드니 신명이로세. <
<사랑>에 이은 <동무생각>(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이 지난 세월의 언덕에 오른다. 어릴적 폴짝대던 또래들이 어깨동무다. "어깨동무 내 동무 봄보리 밭에 앉았다". "어디까지 왔나 대문앞까지 왔다"며 동네 돌우물에 허리굽어 얼굴들여 까르르 웃음꽃 피우던 동무들이다. 백합같이 순결하던 내고향 '청라' 뜰에 애상이려. 양복저고리 어깨에 걸쳐메고 나이들어 폼나게 '청라언덕'에 올라보니… <금강에 살으리랏다>(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그 품새 당당하다. 한 해 두 해 지나가니 "모두 다 어디갔나?" "운무 데리고" 두 다리로 꿋꿋하게 버텨서서 "홍진에 썩은 명리"에는 '탁신세이' 했을테다. 2022년 동짓달 스무이레. 아하, 내마음 속에 <달밤>(김태오 작사, 나운영 작곡)이여! 종소리 울리는 고향뜰의 선녀탕이니 고운 선녀님이 오실까나? 흰눈이라도 펄펄 뿌려 주시겠지…. <꽃구름 속에>(박두진 작사, 이흥렬 작곡) 이내 몸에 꽃바람 불어와 "꽃향에 취해~ 나비처럼 쓰러지게 하려무나". 행여나 꿈일망정 그님은 자로 오시려나? 휘이 늘어진 버들가지에다 송사리 노니는 실개천, 포르릉 종달새 나는 보리밭에 남풍이여
깊어가는 겨울 밤에 홀로선 맘이 창가 바람결에 스치운다. 기러기 울어 예는 그 곳을 향한 맘이려나? "고운 님 여의고 울어 밤길 예놓는 저 물"처럼 비통한 맘이려나? 찬바람 속 고요겠다. 글제의 주인공이 누구신가? 가곡제 준비위원장 정희준님의 말씀을 빌자면 난파 홍영후 선생은 "서양음악의 단군 할아버지요, 우리가곡의 조상이다" 하니 한국 음악사에 불멸의 자취를 남긴 분이겠다. 내고향 화성시 남양읍 활초리에 몸 나신 분이라 화성이 고향인 시민에게는 자긍심을 돋울 말이다. 더구나 필자는 스무두 해 전에 화성시 살림을 맡은 책무를 수행한 탓에 선생이 남긴 업적을 기리고자 '난파 기념사업'의 첫 삽을 뜬 인연을 맺은 까닭일까? 공직을 떠나서도 수년간 발품을 팔아 쓴 졸저 "화성소나타"와 "한반도소나타"에도 선생에 대한 사족을 그려대 가곡제에 설레이는 발길이다. '한국 가곡 100년의 노래'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몸실은 자동차보다 진즉 꽃대궐 차린 맘이 연주회 장소로 앞서 달려간다. 식전 연세대 학생회관 식당에서 우연한 만남이다. 가곡제 준비위원장 친구덕에 80대 중반 나이에도 음악연주회에 나들이시라는 어른신과의 짧은 대화다. 60대 중반인 필자에게 들려준 말씀이 의미
겨울 산책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뜨락에 노니는 햇살도 그려내고 구름이 드리운 달님도 그려대니 떠가는 세월에 눈감은 신선이네 붓끝에 고향뜰 풍월을 달아매니 남쪽 창가에 기대선 도연명인가 환한 달과 마주 앉은 이백이려나 차오른 맘울림에 거니는 호숫가 제멋낸 울음소리 바람에 실리어 앞서간 발자국에 켜켜이 쌓이네
아침 일찍 구순에 이른 친정 부모님께 산타-딸과 산타-외손녀의 차림새로 아내와 딸은 집을 나섰다. 어제의 '영화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신 이목사님과 한장로님이 토요일 오후에 수원역에서 노숙자를 위한 나눔봉사의 말씀에 수원에로의 발길이다. 오전 11시 30분경 수원역에 꾸깃한 몸을 내리니, 줄지은 분들이 "정' 나눔터에서 수녀님을 비롯한 나눔협의체가 제공한 점심을 들고나와 썰매(자동차)에 싣고온 점퍼와 사과.백설기가 든 봉지를 받아들고 양지녁에 또 긴 대열을 짓는다. 오후 1시가 되자 교회 자원봉사자 젊은이들이 부르는 캐롤송이 울리고 다니엘 나눔센터에서 제공하는 다른 먹거리와 목도리가 나눔터의 찬바람에 훈기를 보탠다. 수년간 나눔봉사를 해오신 탓에 이목사님의 말씀이 잔잔하다. "제도권 생활의 이런저런 속박에서 벗어나 나름 자유를 즐기는 분들"이라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신앙만이 그런 분들의 영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추운 겨울을 버텨내라며 봉사활동을 하신단다. 도로 양지녁에 줄지은 분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명언,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알렉산더에게, "햇빛가리니 비키라"던 일갈이 참 의미롭다. 서너시경 가제
내년은 계묘년으로 영특한 '흑토끼'의 해란다. 깡총 뛰어오를 뒷다리에 힘실어 한 해 소망을 이룰테다. 더구나 시원하게 '두 귀'마저 열었으니 말이다. 군주가 갖출 몸가짐의 핵심 노트인 성학(십도, 집요)에 으뜸은 '귀' 일게다. 또한 누구나 몸가짐 바로 해 이를 '경(공경할 경)'자에 몸을 구부린 '귀'요, 어느 재벌가에서 후계자 선택시에 '듣는 귀'를 우선했다는 이야기는 귀감일게다. 허니 '두 귀' 사방에 쫑긋할 계묘년은 참 대복일테다. 흑토선생이 어찌 세상사를 모르랴? 정처 없는 우리네 인생길이건만 하얀 쪽배에 몸 실어 은하수 건너 계수나무 그늘 아래로 여름피서 떠난 토선생이지 않은가! 쟁반같이 둥근 달이 동산에 두둥실 떠오르면 한가위엔 '옥토선생'이 떡방아 찧어 달떡을 한 해 동안 땀방울을 흘린 우리네의 가슴에다 '퀵서비스'를 하니 말이다. 학생들이 주연한 "내꿈을 찾아서"가 올해 가을날 화성 서신 바다뜰에 울렸다. 경기영화제에서의 우수작품 수상으로 청소년폰영화제의 개막작이다. 내년에도 고개너머 토실토실한 알밤인 작품수상과 제1회를 이은 풍성한 제2회 화성, 청소년 국제폰영화제가 청소년의 호기심을 돋워내 꿈이 한뼘 키워지길 기대한다. 저 달에 흑토선생께
볼때기 에이는 찬바람에 겨울 들판길도 좋겠다. 오감의 치열한 다툼은 내가 살아 있음이다. 사내라면 '나라 지킨다'는 신념으로 눈보라 치는 들판을 무박으로 행군한 청춘시절이 있을테니 벽장속에 넣어둔 그맘이 이따금 겨울뜨락에 나설테다. 웬 팥죽? 운수 좋은 날이다. 오후나절에 겨울뜨락의 정경을 담으려 산사에 들렀다가 우연한 자리에의 동지팥죽을 몸속으로 밀어 넣으니 날씨에 어울린 제멋에 제맛이란 생각이다. 덥힌 몸을 추슬러 천천히 발길하니 군데군데 쌓인 눈발에다 경내 뒤켠 소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흰눈에로 무심한 눈길이다. 곁에 부축을 받으며 한발한발 뽀드득 발아래 부서지는 눈발이 청각을 깨운다. "돈키호태, 너는 좋으냐? 눈 밟는 소리가!" 늘씬한 자태로 하늘향해 높게 솟은 미루나무(?)의 까치둥지에는 짙은 노을이 비켜 들었다. 이내 떠날 온기의 햇살이 아쉬운가? 우듬지에 날아 앉은 까치의 까아~악 시원스레 손님맞이 인사다. "그님이 들으려나? 그래 내가 왔다. 네 얼굴 그리다가 한세월 묻어놓고 내가왔다" 하시는 곁에서 걷는 선배 문우님의 젊은날 겨울연가가 노루꼬리만한 햇살속에 산사뜨락에 애잔하다. 손바닥정원단"이 마중하는 산자락 성철스님 한말씀(해우소)에 들어
글제는 며칠전 일곱마디 중반을 훌쩍하신 선배 문우와의 이러저러 한담 가운데 번쩍한 어휘이다. 긴세월 동안 고운 체로 걸러낸 삶의 지혜려. 뭐라해도 석가, 공자, 예수, 마호멧, …, 이분들은 인류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 분들일게다. 여섯마디에 이른 나에게 선한 영향력은 누가 미쳤을까? 독서를 통한 성현을 비롯해 위인, 의인분들이나 가까이서 가르친 스승님들과 부모, 형제, 친구에 이르도록 석달 열흘을 손가락을 꼽아 세어도 모두 헤아리자면 어려울게다. 그럼, 나는 누구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을까? 자식을 두었으니 가족은 그 범주에 들려나? 울너머 이웃에는 미쳤을까? 조직 생활을 했으니 윗분과 부하에게는 끼쳤을려나? 마이크 앞에서나 글말로 수없이 시민.국민을 외쳤으니 그건 어떠려나? 불현듯 찬바람에 쐰 생각이다. 오후나절 후배의 소개로 음악인을 만났다. 드럼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청소년 장애인과 생활보호자를 대상으로 드럼연주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에 작은 도움을 주고자 그 멋진 생각(?)을 한발한발 실천하고 있단다. 구름을 비집은 햇살처럼, 창가에 환한 달빛처럼, 여름 웅자를 벗기운 휑한 가을 바람처럼 아니 이제껏 삐뚤한 발자국에 포근한 흰눈처럼 제울림을 가르치려나
마도면 문화센터에 140여석의 작은 영화관이 개관했다. 영화지부장 자격으로 초청된 자리라 남다른 감회의 발길이다. 100만을 눈앞에 둔 청년 화성시이니 정주시민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끼칠 복지문화의 상징이겠다. 인근주변에 바닷물이 들어 질척이는 땅이었단다. 행정관서와 영화관이 들어섰으니 상전벽해라 할만하다. 덤프트럭도 쉴새없이 오가니 힘찬 변화 모습이나, 채 시골이니 버거울 수지 측면은 복지차원의 헤아림으로 행정관서를 비롯해 지역소재 기업들의 공명이 있어야겠다. 인근 도시 수원, 안산이나 서울에서 관람하던 개봉작을 저렴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퍽 다행이다. 유튜브나 TV에서의 관람과는 다른 차원의 감상이니 진정 문화시민이 되려나? 어찌 지역분들만 관람하리요. 프로축구, 배구, 농구, 야구, 씨름,...등 전국을 순회하는 스포츠단 못지않은 주목을 받을 수는 없을까? 백곡리의 여러 역사적 설화를 들려준 마도면 친구들과 점심을 든 후, 돌아서 나오는 길에 융건능에 들러 '단양팔경'이나 '관동팔경'에 비견할 옛적 '남양팔경'에서 진화된 '화성팔경' 중 하나인 '융건백설'의 멋진 설경을 중학교 동창과 산책하며 폰에 담았다. 학창시절 소풍 이후 반세기가 흘렀다. 제멋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