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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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띄우는 편지394 (2025년 7월 27일)

책장 정리와 마음의 무게

 

책장 정리와 마음의 무게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세상 소식이 들려올수록, 내 마음도 함께 흐트러진다.

고지서, 우편물, 팜플렛, 오래된 신문, 빼곡한 노트와 도서들… 어느새 방 안은 시간의 퇴적층처럼 쌓여 있다. 뒤엉킨 것들 속에서 문득 마음도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책장을 정리하려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읽어야지’ 하고 꽂아둔 책들이 어느새 두어 칸을 채웠다. 각종 시사잡지, 이름 모를 작은 모임에서, 먼 바다 건너 문인의 손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보내온 이야기들이 내 책장을 채웠다.

문경새재를 닮은 노년의 평온함, 전선에서 청춘을 다 바친 흔적, 아침 창가에 들리던 새소리,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 삶의 기록들…

책등을 훑으며 펼쳐본 그 순간, 정리는 뒷전이 되고 나는 다시 독서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내 현실을 깨운다.

“정리한다더니, 그대로네.”

방 안을 휘이 둘러본 아내는 말을 보탠다.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옮기지만 말고, 과감히 버려요.”

몇 번이고 반복된 상황,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버리지 못하는 건, 단순한 미련이 아니라 어쩌면 지난 삶을 놓기 어려운 마음의 끈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의 시간은 책장 앞과 들판에서 자라났다. 동녘에 해가 떠오를 무렵부터, 저녁에 달이 걸릴 때까지. 책상머리에서 배우고, 놀고, 일하며 세상과 만났다. 이제는 그 긴 시간을 함께한 것들과 작별해야 할 때다.

 

무게를 더는 일은 때로 삶을 가볍게 한다. 등이 휘지 않게 살기 위해서라도, 버릴 건 버려야겠다. 생자끼리도 손쉽게 생이별하는 세상인데, 그깟 책 한 권, 종이 한 장 정리한다고 무엇이 그리 대수(?)인가.

남겨두어야 할 것은 마음속 기억이지, 눈앞의 물건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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