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홀릭큐브 –홀릭큐브28 -서사로 완성되는 구조의 확장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우리는 영화를 통해 또 한 번 성장한다. 노래가 감정을 흔든다면, 영화는 시간 속에서 삶의 구조를 드러낸다. 한 장면, 한 인물, 한 선택이 모여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홀릭큐브가 말하듯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되며, 마침내 입체로 확장된다. 영화는 이 구조가 살아 움직이는 서사다. 존재의 시작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The Matrix>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점을 찍는다. 이어 <Forrest Gump>는 선택과 흐름 속에서 선을 만든다. <Titanic>의 만남은 관계의 면을 펼치고, <Parasite>는 개인을 사회라는 입체 속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구조는 완전하지 않다. <Joker>는 입체의 균열을 드러내며 인간의 내면을 흔든다. 이 균열 속에서 우리는 다시 자신을 세운다. <The Pursuit of Happyness>이 보여주듯 무너지지 않은 구조는 진짜 구조가 아니다. 이후 시선은 확장된다. <Interstellar>는 인간의 선택을 우주적 의미로 끌어올리고, &
팝송과 홀릭큐브-홀릭큐브27 -세계 감각의 확장 구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우리는 이미 노래를 통해 성장해왔다. 동요에서 세상을 배우고, 대중가요에서 감정을 익히며, 민요에서 삶의 뿌리를 만났다. 이제 시선을 조금 더 넓혀 세계의 언어, 팝송 속에서 우리 의식의 확장 구조를 들여다본다. 홀릭큐브는 말한다.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되며, 마침내 세계와 연결된다고. 팝송은 연결 이후, 구조가 울리는 지점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존재의 시작 (점)으로, “나는 누구인가” John Lennon의 <Imagine>, 경계 없는 상상으로 하나의 점으로 우주에 놓인다. 이은 감정의 흐름(선)으로, “나는 느낀다” The Beatles의 <Let It Be>엔 감정은 흐르고 나를 시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이 선의 흐름이다” 관계의 형성(면)으로 “너와 내가 만난다” Ed Sheeran의 <Shape of You>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면이 펼쳐지고 관계가 생겨난다. “이 지점에서 면이 형성된다” 이젠 사회적 연결(입체)로 이어져 “우리는 함께한다”. USA for Africa-<We Are the World>, 연결은
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467 불리는 동요로 읽는 삶의 구조 – 홀릭큐브 26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우리가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불렀던 동요들에는, 의외로 삶의 본질을 비추는 단서가 담겨 있다. 단순한 가락과 반복되는 가사 속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관계를 맺는 태도, 그리고 성장과 순환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보면, 동요 역시 하나의 ‘사유의 지도’로 읽힌다. 출발은 ‘깨어남’이다. <반짝반짝 작은별>은 아이의 시선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노래다. 별을 향한 호기심과 시선은 곧 세계를 인식하는 첫걸음이다. 보는 순간, 세계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어지는 <섬집아기>는 고요한 바다와 기다림의 정서를 담고 있다. 비어 있는 듯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텅 빈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그리움과 생명의 숨결이 차 있다. <곰 세 마리>에 이르면 관계가 형성된다. 가족이라는 구조 속에서 ‘함께 있음’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연결의 장면이다. 그 다음은 흐름이다. <학교종>은 하루의 시작과 끝, 시간의 흐름
전통민요·전통가락–홀릭큐브25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우리는 종종 삶을 직선으로 이해한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하나의 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 전통의 소리, 특히 민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삶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이며, 고정이 아니라 생성의 연속임을 깨닫게 된다. 한(恨)과 흥(興), 그리고 정(情)이 교차하는 소리의 결 속에서, 인간과 세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되돌아간다. 출발점은 <아리랑>이다. 긴 호흡의 시김새로 풀어내는 이 노래는 ‘보는 자’의 깨어남을 상징한다. 존재는 인식되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이어지는 <강원도아리랑>은 비어 있음의 깊이를 노래한다. 텅 빈 듯한 여백 속에 오히려 가장 깊은 울림이 스며 있음을 전한다. <밀양아리랑>에 이르면 소리는 흥으로 전환된다. 만남과 연결, 관계의 시작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며 세계는 비로소 ‘함께’라는 구조를 갖는다. <진도 아리랑>은 그 연결 위에 흐름을 얹는다. 물결처럼 이어지는 장단 속에서 생명은 정지된 구조를 넘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후 삶은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배워간다. <한오백년>은 굴곡진 인생의 결을 담아내며, 중심을 잃
대중가요, 그 안에 숨은 우주의 질서 – 홀릭큐브 24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대중가요를 듣는다.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움직이고, 기억이 따라온다. 그저 감정의 파편일까.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세계를 인식하는 구조가 담겨 있다. 나는 이를 ‘홀릭큐브’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점에서 시작해 선으로 이어지고, 면을 이루어 입체와 순환으로 확장되는 삶의 구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질서가 이미 우리의 노래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는 사실이다. 나훈아의 「테스형!]에서 “세상이 왜 이래”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질문은 모든 시작이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비어 있음 속의 충만을 노래한다. 그리움과 한은 결핍이 아니라, 내면을 채우는 힘이다. 장윤정의 「어머나]에 이르면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관계가 생성되고, 세계는 비로소 확장된다. 진성의 「안동역에서]는 흐름을 말한다. 기다림과 시간은 삶을 흘러가게 하고, 그 속에서 감정은 깊어진다.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는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박상철의 「무조건」은 반복의 힘을 보여준다. 되풀이되는 리듬 속에서 삶은 질서
내가 걷는 길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봄비 내린 황구지천 길, 나는 조용히 걷는다. 노란 민들레 위로 흰나비 한 마리 나풀대며 날아든다. 그 작은 날개짓에 내 마음도 잠시 머물고, 스쳐가던 생각들이 고요 속에 잠긴다. 양산봉 푸른 솔빛에 기대어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문득, 네가 가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이 닮아 있음을 느낀다. 흘러가는 물처럼 쉼없이 이어지는 시간, 그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본다. 여전한 독산성, 그 자리에 머문 시간의 숨결. 흰구름을 벗 삼아 내 마음도 흐른다. 백리 길이 외롭지 않은 이유 그 길 위에 선 내가 이미 나를 알고 있기 때문. 잠시 귀 기울이면 내 안의 내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나를 만난다
지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홀릭큐브23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모든 피어남은 결국 지는 순간을 향한다. 찬란했던 꽃도 언젠가는 빛을 잃고, 꽃잎은 하나둘 바람에 흩어진다. 우리는 흔히 이 순간을 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연은 그 끝을 다르게 말한다. 꽃이 지는 자리는 비어 보인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이미 다음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 씨앗은 그 안에서 조용히 여물고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닮아 있다. 지나간 시간들, 끝났다고 여겼던 순간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으로, 경험으로, 또 다른 선택의 힘으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피어난다. 끝은 단절이 아니라 전환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닫히는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처음’은 더 이상 같지 않다. 모든 경험을 품은 채 새롭게 시작되는 또 하나의 출발이다. 그래서 삶은 직선이 아니라 원에 가깝다. 끝없이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매번 다른 높이에서 이어지
피어날 때, 나는 나를 넘어선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랜 시간 응축된 에너지는 마침내 한순간에 터져 나온다. 봉오리가 열리는 그 찰나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전환이다. 안에 머물러 있던 가능성이 바깥으로 드러나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꽃은 피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그 피어남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색을 내고, 향을 퍼뜨리며, 바람과 빛을 받아들인다. 그 순간 꽃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머물지 않는다. 주변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더 큰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이해하고, 내면을 충분히 채운 사람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향한다. 그것은 과시가 아니라, 나눔에 가깝다. 자신 안에 쌓인 것을 세상과 나누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연결을 만들어간다. 피어남은 완성이 아니라 확장이다. 나라는 존재가 하나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세계와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진정한 성장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인과 세계를 향해 열릴 때,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진다. 꽃은 피면서 자신을 소모한다. 그러나 그 소모는 사라짐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나눔이다. 향기는 흩어지고, 꽃잎은 바람에 실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