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한낮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40도에 이르는 폭염이다. 집안의 열기도 34도를 웃돈다. 시쳇말로 열불이 날 지경이다.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영상 제작을 홍보하려 컴퓨터 앞에 앉으니, 그야말로 땀줄기가 내를 이룬다. 대충 챙겨 들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1층에 들어서니 지팡이를 짚은 동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따금 책을 펼쳐 들고 한담을 나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피서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노트북 사용실에는 방학인데도 학생들이 이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열공 중이다. 행운처럼 가운데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역사 공부, 수학 문제 풀이, 영어 학습…. 저마다 자기 몫의 시간을 성실히 채우고 있다. 문득 반세기 전으로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 동네 잿마당.큰 느티나무 한 그루 아래 풀지게 두어 개, 장기판 하나. 옥수숫대 동강을 손에 쥔 채 런닝셔츠 차림의 꼬맹이들이 뛰놀던 풍경이다. 세월이 무려 50년 흘렀다. 느티나무 그늘은 도서관으로,들바람은 에어컨으로,옥수숫대 동강은 아이스크림으로,라디오는 휴대폰으로,장기판은 게임기로 바뀌었다.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대핫민국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날이 얼마나 뜨거우면 ‘대핫민국’이라 비유했을까 생각했는데, 줄줄 흐르는 땀줄기에 그 생각마저 멎는다. 높은 곳에 사는 덕에 별 어려움 없이 올여름을 지나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열기가 여간 아니다. 마치 사막의 열기를 한반도 상공에 통째로 덮어씌운 듯하다. 아내 성화에 전기세를 아끼느라 웬만한 후덥지근함은 선풍기와 창문을 열어 견뎠다.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찜통 같은 더위다. 사흘 후면 입추건만 절기를 잊은 것일까? 이상기후 탓일까? 한서린 매미 소리만 여름을 증명하듯 요란하다. ‘핫(hot)’은 영어로 뜨겁다는 뜻. 그러니 ‘대핫민국’이라 부른 뉴스 앵커의 비유가 절묘하다. 그렇다면 ‘한(寒)’은 어떨까. ‘핫’의 상대가 ‘쿨(잘난척)’이라면 올겨울은 혹시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大寒)민국’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삼한사온이 무색해진 한반도의 날씨다. 아니, 이제는 지구촌 곳곳이 이상기후와 천재지변으로 몸살을 앓는다. 섬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과실에도 문제가 크단다. 몇 번이고 냉수마찰을 하고 집 안에서는 웃통까지 벗어보지만 더위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꿈의 하루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둠에 잠긴 창가에서 창밖 저 멀리 비비적거리며 산자락을 밝히는 한 점 꿈꾸는 불빛을 바라본다. 꿈, 잠잘 때 꾸는 정신적 현상이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을 뜻하기도 한다. 한겨울, 어린 시절 꿈을 꾸다 이불에 오줌을 싸 부모님께 야단맞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게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예전만큼 흔한 일이 아니다. 꿈과 무의식, 그리고 성장의 관계가 새삼 궁금해진다. 성인이 되면 꿈은 또 다른 얼굴을 갖는다. 태몽이 그렇고, 때로는 신변의 징조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설화 속에서도 꿈은 빠지지 않는다. 건국설화나 영웅의 탄생에는 태몽이 등장하고, 우리의 일상에는 돼지꿈, 용꿈 같은 이야기가 익숙하다. 꿈은 노래가 되고, 소설이 되고, 건축물과 공간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꿈의 대화, 상사몽, 구운몽. 꿈의 궁전, 꿈의 다리, 드림랜드….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문득 묻는다. 무엇을 꿈꾸는가? 외로움도, 서러움도 없는 꿈속에서 나누는 마음의 대화처럼, 꿈은 어쩌면 현실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반시간쯤 앉아 내 안의 나를 가만히 안아 든다.
동네 한 바퀴―천변기행50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새길수록 의미로운 동요다. 저녁 어스름, 서늘한 기운을 맞으려 단지를 나선다. 둑방길을 타고 논둑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단지로 돌아드니, 동네 한 바퀴를 돈 셈이다. 어느새 벼포기도 든실해졌다. 몸통이 제법 불었으니 곧 이삭이 팰 모양새다. 때가 되면 제 모습으로 피어나고 결실하는 것, 생명에 깃든 본연의 이치일 게다. 아파트단지로 가까워질수록 불 밝힌 창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쉼터의 환한 불빛을 따라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진다. 둑방길, 논둑길, 개울길을 지나 다시 단지 안 뜰로 돌아오는 길. 입가에는 동요의 가락이 흐르고 발걸음에는 그 정감이 이슬처럼 맺힌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어느 한 낱말도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로 이어지는 말들도 창가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처럼 감성을 적신다. “너도 나도 일어나.” “일어나라 아이야.” 모두가 희망의 노래다. 함께 일어나고, 함께 걷고, 함께 살아가자는 공동체의 하모니인 게다. 오전에는 지인의 혼사를 축하하고, 시골 동네에서는 복달임의 정을 나
숫자의 마력―천변기행49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랜만에 둑방길을 달린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건만 어느새 예전의 기록과 견주며 헐떡이는 순간까지 내달린다. 아마도 숫자가 지닌 마력 때문일 게다. 몇 분에 얼마를 달렸는지, 지난번보다 빨라졌는지 느려졌는지, 숫자가 어느새 건강을 위한 달리기를 기록과의 싸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문득 피타고라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떠오른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마저 숫자로 설명하려 했던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숫자만큼 오래 붙들고 사는 인연도 드물다.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생년월일에서부터 하루의 시간을 나누는 시·분·초까지. 배움터에 들어서면 시험점수와 등수라는 숫자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 숫자가 목표가 되어 앞을 향해 달리기도 한다. 경기에 나서면 기록이 숫자로 남는다. 월드컵축구 처럼 한 골, 한 점의 숫자가 선수와 관중을 넘어 온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도, 때로는 가라앉게도 한다. 요즘은 주식시장의 숫자가 매스컴을 달군다. 오르내리는 수치에 마음을 졸이는 개미들의 모습이 요즘 산책길에서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와도 닮았다. 숫자의 마력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수백만
그리운 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그리운 산 산에 간다 오늘도 봄 여름 가을 제 빛을 마중하는 산 말없는 넉넉한 산자락 비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더욱 그리운 마음뜰 어머니
자원봉사센터에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인도, 공평, 중립, 독립, 자발적 봉사, 단일, 보편. 대한적십자사는 이 일곱 가지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재난구호, 생명나눔(헌혈), 취약계층 돌봄 등을 실천하는 세계적인 인도주의 기관이다. 흰 바탕에 붉은 십자를 새긴 레드크로스는 국경을 넘어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의 재난과 분쟁 현장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구호 활동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이번에 대한적십자사 화성지부가 화성특례시의 위상에 걸맞게 새롭게 출범했다. 참으로 뜻깊고 반가운 일이다. 오랜 공직생활과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신망을 쌓아온 분이 초대 지부장으로 취임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 봉사는 자신의 울타리를 넓혀 가는 일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해 이웃과 사회, 국가를 넘어 인류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삶의 실천이다. 조선시대 향촌 자치규범인 향약의 덕목 가운데 하나인 환난상휼(患難相恤), 곧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서로 돕는 정신은 오늘날 적십자의 인도주의와도 맥을 같이한다. 또한 '자발적 봉사'는 적십자 7대 원칙 가운데 하나인 만큼, 자원봉사센터에서 화성지부 창립 및 취임식이 열린 것은 더욱
둑방길의 자화상-천변기행48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중복(中伏) 복달임으로 지역 친구들과 허리를 느긋이 푼 점심이다. 내년부터 개 식용이 금지된다고 하니,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복달임일지도 모른다. 삼계탕 편과 멍멍이탕 편으로 나뉘어 한바탕 입담이 오간다. 밀린 숙제를 풀어내듯 식탁 위에는 사람 사는 정겨운 이야기가 꽃핀다. 저녁, 선선한 바람을 따라 둑방길을 달린다. 둑방길을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저마다 한 폭의 자화상이다. 두 팔을 힘차게 휘저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마다 삶의 이야기가 배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달려왔다. 가을 운동회 만국기 아래를 달렸고, 체력장과 입시의 문턱을 향해 달렸으며, 푸른 제복을 입고 산과 들을 누볐다. 돌아보니 지구 반 바퀴쯤은 달려온 세월이다. 이어 살기 위해 달렸다. 통근열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세상에 뒤쳐지지 않으려, 평생의 벗을 만나고 아이들을 키우며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쉼 없이 달렸다. 희망과 좌절,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삶의 길을 달리며 어느새 나도 철이 들었다. 문득 사방을 둘러보니 삼라만상은 저마다 제때를 알고 제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나아감도 멈춤도 모두 자연의 이치요, 삶의 한 과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