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김재관 공덕비 제막식에 부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그는 누구인가?’ 그의 호, 우정(宇靜)이 상징하듯 그의 발자취를 예감한다. 울불긋 꽃 대궐 차린 그 고을, 화성이다. 화성시청사가 위치한 남양읍내 남양도서관 뜰에 마련한 공덕비 제막식에로 발길이다. 전쟁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으로 지구촌을 놀라게 한 오늘날 코리아 위상에 이르름은 걸출한 지도자와 그에 어울린 과학자들, 행정가들을 비롯한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들의 합심이겠다. 그 중심엔 자신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하고 자녀를 위한 정신이 깃든 애국심과 애향심, 교육열이 바탕인게다. 그곳에 우정, 김재관 선생의 활약이 오롯하다. 가난한 나라를 위해 애국심과 열정적 헌신이 하늘에 닿았던 과학자인지라, 동네울이나 서성거린 필자가 그 자취를 끄적거림에 서투르나, 내.외빈들의 인사말씀과 축하말씀, 가족, 문중, 제자, 지인, 꽃고을(화성) 유지의 정담을 버무려 손.발 말길을 공그리기로 말타래를 잇는다. 선생의 모습을 크로키해보면 자주방위산업과 중공업산업화정책(자동차.조선)의 기틀, 나아가 국가표준체계를 마련했으니 이는 민족중흥과 국격에 퀀텀을 가져올 시대통찰이었으며 국가의 백년대계의 담대한 포석인 까닭에 철없는
노계에 거닐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문학과 비평] 병아리들의 뿅뿅뿅 봄나들이로 우리에게 조홍시가(早紅枾歌)로 친숙한 [노계문학관]으로 문화탐방이다. 태백산맥 줄기의 보현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분지내 영천시에 소재하니, 수원에서 3시간 반여 걸리는 원행이나 호기심을 배낭에 담아 나섰다. 송강(정철), 고산(윤선도)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인이라 불리는 박인로(朴仁老, 1561-1642)는 조선시대 무신으로 ‘호’는 노계(蘆溪)다. “반중 조홍시가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기리 없으니 그를 설워 하노라”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한 시인의 ‘호’와도 어울리는 조홍시가다. 두어번 글맛을 보니 나훈아 선생이 부른 울 엄마가 생각나는 <홍시>로 진화했을까 싶다. <조홍시가>도 <홍시>도 모두 ‘효’를 주제로 한 연작시가니 말이다. 대표와 회장의 인사말과 회원들의 소개에 이은 노계의 작품세계 소개와 시낭송, 건강강좌로 인해 원행시에 의례적 두 눈 감던 명상을 접고 두 귀를 열었다. 밤을 지새운 피곤이 비켜선다. 더우기 회원들이 협찬한 생수, 가래떡, 케이크
당성에서 독산성까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From here(여기) to there(거기)’를 까까머리 시절 영어 공부하느라 입으로 반복해 굴리던 어귀였다. 이를 마음에 벗삼은 서신면 일곱분의 산책(逍遙遊)을 예찬(禮讚)한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기인가~”, 어린시절 또래들과 즐겨부르던 동요<고향땅>(작사 윤석중 작곡 한용희)의 노랫말이 언뜻해 새김질이다. 한평생을 대학강단에서 후학을 길러내신 교수, 태평양.서해를 널뛰며 발자국을 남기신 경영인, ‘한강의 기적’을 지구촌에 홍보하신 언론인, 고향땅을 지켜오신 흙의 디자이너 농업경영인 그리고 자녀들을 훈육한 어머니들이 어울린 ‘향토문화실버유람단’이 띠띠빵빵을 타고 ‘여기’ 서신(당성)에서 화성동부지역 조망대인 오산(독산성) ‘거기’에로 봄소풍이다. 성곽둘레길과 정상의 세마대에서 주변 경관인 양산봉, 황구지천, 화산, 동탄신시가지, 융.건능, 존슨동산, 안녕뜰…등 한바탕 문화역사해설을 곁들이니, 화자의 입장에서 울멍줄멍한 세사를 비켜선 여여함인자라 ‘유붕이 자원방래한 즐거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이겠다. ‘여기와 거기’를 향하려는 ‘유람단’의 기념으로 치즈~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글제는 어느 종교단체가 마련한 전시회다. 여의도 의사당 대회의실에 마련된 <대한민국, 과연 어디로 가는가?> 주제의 강연장 입구에서 만난 어느 분의 안내로 며칠 후에 관람했던 감상글이다. ‘어머니’, 계집 아이가 태어나 여자로 성장해 새 생명체를 우주공간에 탄생시킨 후 불리는 여인의 별칭,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말이겠다. ‘우리 어머니’ 대신 ‘내 어머니’가 살가운 말인가도 싶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나’를 낳으셨으니 말이다. 살아 생전 당신 모습을 허공에 그리자니 마음이 시큰하다. ‘어머니’란 말에의 끌림은 성스러운 울림이려. 그런 <어머니 사계>의 스케치다. 다정한 봄이오면 맨발인 채 몸빼바지에다 흰 두건을 두른 채 앞산너머 산다랑치 밭에 앉아 아침나절부터 해저물녘까지 호미질하시던 흙의 디자이너요, 장마비 쏟아지는 여름날엔 찐 옥수수.감자.부침개로 자식새끼 허기를 달래주시던 일류 요리사다. 풍성한 환한 가을날엔 도리깨로 콩대를 두들기며 흥겨운 장단가락 을러대던 성악가요, 문풍지 울어대는 까만 겨울밤엔 이불 시침질 하시던 침선가다. 철따른 내 어머니 모습이자 세상 모든 어머니들 모습인게
“2인 이상의 사람이 동시에 '가위, 바위, 보'를 외치고 동시에 각기 특정한 모양의 손을 내밀어 상성 관계에 따라 승부를 결정짓는 게임”이다. ‘가위’는 날이 있어 ‘보’(사물)를 자를 수 있고, ‘주먹’은 ‘가위’가 넘어설 수 없는 단단함이며, ‘보’는 단단한 ‘주먹’을 어루는 부드러움이 있으니 말이다. 삶의 지혜가 깃든 상성 관계 놀이로 어린시절부터 즐긴 탓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요즘 세상사에 치켜들어 그 놀이 말을 튀겨 보자. ‘가위’의 싹뚝은 전설의 ‘고르디우스 매듭’을 잘라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발상전환의 용기에로 비유다. 또한 주먹은 국가적 위난시에 위인들과 뭇 백성들의 결기의 상징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나 “생즉사 사즉생”의 ‘나’를 지켜 낼 생명력인게다. ‘보’는 어떠려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백년이란 짧은 기간에 지구촌에 어깨 으쓱할 번영에 이른 까닭에 우당탕거리는 골물이 없을까만, 요즘 사태를 들판의 교향악‘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피곤하다. 반만년 보다 오랜 역사의 물줄기에 왠 구태스런 찌질한 날파리들이 극성이다. 우리네 할배, 할매, 아비, 어미 허리띠 졸라매고 일궈낸 멋진 장독대에 우물안 외눈박이 말재주
문명의 품격, 한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 19세기 후반에 서구에 알려진 ‘조선(朝鮮)’을 표현한 어구다. 여러 갈래의 해석이 있으나, 우리로선 고요함보다 아침에 깃든 생명력, 바로 잠재된 역동성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면 좋겠다. 귀에 익은 모닝콜, 기상나팔, 알람, ...등에 의해 깨운 심신이 바로 아침이지 않은가? 동틀 무렵 대양에 튀어나는 싱싱한 물고기를 연상하면 좋을 듯 싶다. 그런 15세기 중엽의 ‘조선’을 상상한다. 훈민정음 창제원리에서 요즘의 정보사회의 핵심기술인 디지털 원형을 발견하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발음기관을 본 딴 자음(닿소리)과 천.지.인이 어울린 우주원리를 담은 모음(홀소리), 총 28자의 조합으로 그 어떤 소리도 표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쉽게 익혀 제 분야에 혁신을 불러온 훈민정음은 중세시대 ‘디지털언어’라 할 수 있겠다. 그를 바탕하여 소리문자인 한글이 있기에 전쟁의 폐허속에서도 1세기만에 현재의 국제적 위상을 갖췄다. 지배의 도구로서가 아닌 ‘어린 백성’을 생각하는 애민정신으로 창제했기 때문에 한글은 지구촌 문명의 품격인게다. 세계의 석
‘파기자판’의 가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파기자판’이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할 때 사건을 하급심으로 환송하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행위”란다. 머리말이 등장한 연유는 주지하는 바 처럼, 1심 판결에 반하여 항소심 2심 판결이 통상적 범주를 크게 벗어난 탓에 세간에 회자되기 때문이다. 공정.정의 사회를 위해 우리나라는 3심제도를 운용하기에, 대법원은 검찰에서 상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28일 접수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 체제를 갖췄으나, 다수당이 구성한 입법부의 전횡으로 행정부와 사법부의 제기능이 무력해져 마치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하니, 이는 자유대한 민주체제에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기에 저마다 아우성들이다. 사법부 수장은 취임시, 일련의 사건들에대한 신속.공정한 재판을 하라며 사법부의 본래 의무를 강조했다. 공인의 언행의 무게는 일반인의 그것을 넘어서 사회의 본이 되며 때론 그에 따른 울림이 있다. 공인은 인체에 비유하면 몸을 지탱하는 척추(등뼈)이니 의무를 저버리면 나라 형편이 어떻게 되는 지를 작금
‘타투와 뮷즈’의 상상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서울 나들이에 접한 ‘타투와 뮷즈’ 얘기다. 타투(tattoo)는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로 흔히 주변에서 봐온 조폭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몸통에 덮힌 용, 호랑이, 뱀, ...등의 문신이나, 시나브로 대중화 되어 이제는 상처가 난 흉터를 장식하는 ‘커버업 타투’까지 성행하는 형국이란다. 관련한 분들의 말을 빌리면 타투의 시술과 자격에 관한 법제화의 숙제가 남아 있으나, 비틀린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방편이란 점에서 법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이스페인팅’과는 다른 멋과 맛이 있다. 어쩌면 자신의 팔과 몸에 정인의 이름이나 또는 싯귀를 새김한 어우동 등 예인(㙯ㅅ)들이 ‘타투’의 선각자 일 수 있겠단 생각이다. 과연 “타투”의 선행녀는 누구인가? ‘뮷즈’는 박물관(Museum)과 상품의 합성어(Goods)란다. 유리벽 안에 가둔 문화유산들이 나의 하루 생활속으로 다가왔다. 1차원적인 상품이야 주위에 흔하지만 이제는 재해석을 통해 다양하게 개발해 상품화되고 있어 개인의 취향을 유인하고 있다. 이로인해 문화유산의 역사와 그 의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니 한류의 한 갈래로 성장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