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2 (토)

오피니언

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408

우주엑스포


우주엑스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철학자 스피노자는 말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그 말은 인간이란 존재가 파국의 공포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 존재임을 가리킨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우주 시대’ 역시 그 연장선이다.
지구는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일론 머스크는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보존을 위해
“지구의 백업 행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2029년 화성 착륙을 시작으로 2050년까지 100만 명을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다.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 실행 계획이라는 점에서,
장자가 말한 구만리를 나는 대붕이나 봉이 김선달의 기지조차 이 앞에서는 전설이 된다.

그런 시대에, 우연처럼 찾아온 ‘우주엑스포 추진위원회’와의 인연은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는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두 눈, 두 귀, 두 발, 한 입을 가진 평범한 이들,
그러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믿음 하나로 ‘우주엑스포’를 준비해 온 그들의 자세는
우주를 경작하는 농부요, 시대를 경작하는 철학자다.
그들을 ‘우주박사’라 부르고 싶다.

일상의 작은 기쁨—집 울타리 너머의 산책길, 바닷가 바람—이 대기권을 넘어서는 우주적 상상으로 이어진다. 길은 늘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은밀히 자라나고 있나보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높푸른 가을하늘로 화살을 쏘아 올리며 그 끝에 꿈을 묶어보지 않았던가.
여름밤 은하수를 바라보며 북두칠성을 세어보던 시간,
그것이 바로 우리 내면의 최초의 우주 탐험이었다.
<스타워즈>의 은하 전쟁, <은하철도 999>의 여행이 주었던 설렘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동경이었다.

내가 천문학을 스쳤던 순간들—
고구려 벽화의 천문도, 여러 천문과학관, 태양계의 행성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안드로메다와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블랙홀과 빅뱅 우주론…그 모든 만남은 결국
‘우주를 안다는 것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임을 가르쳐주었다.

지금, 우주엑스포의 막이 코리아에서 오른다.
이는 단순한 산업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우주를 향한 인간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다.

미·중·러 등 열국은 이미 우주개발의 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상·통신·관측을 위한 인공위성 발사 준비에 한창이다.
그러나 우주엑스포가 의미하는 바는, 경쟁만은 아닌게다.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해
우주과학기술의 총체적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산업의 문을 열며
다음 세대의 길잡이가 될 인재와 철학을 세우는 일을 시작한다.
기술이 아니라 ‘태도’를 남기는 일이다.

땅은 좁아지고, 바다는 경계가 되었다.
이제 인간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하늘을 향한다.
꿈은 머물 곳을 잃었고, 우주는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운다.

그러니 날자.
지구촌에서 별나라 ‘화성’까지,
우리의 오래된 동경을 따라 날아오르자.


포토뉴스

더보기

섹션별 BEST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