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저옵서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무슨 바람이 불어 바다까지 건너려는 거예요? 철인삼종 준비한다고 수영해 갈 것도 아니고, 날트리라도 타겠다는 건가요?
돈키: 하하, 차라리 드론이라도 타고 날아갈까 싶구나.
호새: 그러다 마라톤 삼총사가 한라산 정상까지 뛰어올라 가는 건 아니겠죠?
돈키: 등산만 해도 충분하지. 그래도 보물섬 제주로 간다니, 마음이 괜히 한 번 더 뛴다.
호새: 남한에서 가장 큰 산을 이고, 바다 한가운데 둥근 뚜껑처럼 누운 섬이니, 해양국 코리아의 숨결이 모여든 곳이지요.
돈키: 저 높은 한라의 기상과 먼 바람의 그리움이 끊임없이 뒤섞이는 땅이지. 제주엔 바람이 많다던데, 바람이 있어야 비로소 제 맛이 나는 섬이라더라.
호새: 노래도 많죠. “내 이름은 바람이란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바람이려오…”, “바람이 분다 연평바다에…”. 사람들은 어찌 그리 바람에 마음을 매달았을까요.
돈키: 바람이 있어야 숨이 살아. 인생도 제때의 바람을 맞아야 한다네. 때를 놓치면 입 돌아가듯, 사는 일도 금세 뒤틀리더라고. 바람 많은 탐라국에선 어떤 이야기가 피었다가 사라졌는지, 그게 자꾸 궁금해져.
호새: 돌 많은 섬이라 하죠.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방이 저마다 묵묵히 인사할 것 같아요.
돈키: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그 노랫말이 괜히 떠올라. 한라산 눈이 녹아 꽃이 피었을까 싶고.
호새: 허, 조심하세요. 제주 아가씨들 만만치 않아요. 흑산도 아가씨는 서울만 바라보다 까매지고, 울산 큰 애기는 서울 간 삼돌이만 하염없이 기다린다지만…
돈키: 제주 아가씨는 다르지. “진짜진짜 좋아해” 속내도 숨기지 않고, “혼저옵서예” 해도 안 오면 스스로 서울까지 올라와서 “제3한강교”를 흔들어댔다니까. 그때 서울 총각들, 마음이 들썩였지.
호새: 벽계수 떨어뜨린 황진이 못지않은 매력인가 봐요.
돈키: “오오 뚜루뚜루뚜~ 하! 강물은 흘러갑니다…” 그 한마디 ‘하!’에 지진계가 반응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어. 그 시대 총각들, 지금의 60~70되겠지. 참, 정신없던 때였을 게야.
호새: 신발 날릴 대신 마음을 날려버렸군요.
돈키: 제주도는 땅도 하늘도 사람도 특별해. 바닷바람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한라산이 섬의 심장처럼 가운데를 박고 있으니,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풍광이지. 그 안에 오래 쌓인 삶의 습속을 살펴보려 해.
호새: 박물관도 가야 하고, 제주 옛 그림도 봐야 하고… 오늘 일정이 빽빽하겠네요.
돈키: 불로초 전설도 있고, 흑돼지 이야기, 삼별초의 숨결도 남아 있지. 식물원, 테마공원도 두어 곳 들러보자고.
호새: 해녀분들도 만나야죠. 물결 속에서 숨을 길러온 분들.
돈키: 일출봉의 불꽃 같은 새벽도 보고, 백록담의 고요한 푸름도 보아야지. 세계자동차박물관과 피아노박물관도 가서, 기계와 음악, 두 문명의 숨을 느껴보자.
호새: 제주 바람이 세다니 천천히 다녀와요. 유채꽃길은 이미 마음에 노랗게 번질 것 같고, 달콤한 초콜릿도 하나쯤 사먹어야죠. 착시, 추억, 빛과 소리, 공룡, 정원… 테마파크만 돌아도 한 달이 모자라겠어요.
돈키: 뭍에서 떨어져 있으면서도 절해고도까지는 아닌, 늘 그리움을 품은 섬이지. 추사 선생이 세한도의 단단한 선을 그리며 긴 유배를 견딘 자리이기도 하고, 타히티의 고갱이 떠오르기도 해. 이중섭의 은지화가 남긴 영혼의 흔적도 있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연상케 하는 너븐숭이도 있고.
호새: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낸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저는 제자리에 오는 걸까요?
돈키: 그 말 뒤엔 시대의 아픔이 숨었지. 제주 초지에서 몽골 말을 기르고, 사람은 바다를 건너야 비로소 다른 삶을 만났어. 바람에 실려 온 것이 꽃만이 아니야. 유채도 벚꽃도 바람 타고 북상하고, 사람도 역사도 바람에 끌려 흘러갔지. 그 흐름의 비밀을 품은 곳—그게 제주라는 보물섬이더라.
호새: 오늘 바람이 불어서 좋은 걸까요? 아니면 좋은 날이라 바람이 부는 걸까요?
돈키: 글쎄… 그건 가봐야 알지. 바람이 알려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