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30 (목)

<한반도소나타77>-경주박물관

타임캡슐센터

 

타임캡슐센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박물관에 또 가요?

돈키: 그래. 경북과 경주 일대의 유물이 한데 모인 곳이지.
역사를 품어 미래를 통찰하는 ‘타임캡슐센터’라 부를 만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백견이 불여일행(百見而不如一行)이라 했잖아.
직접 보고, 느끼고, 걷는 것만큼 확실한 공부가 없지.

호새: 기록과 유물로 그 시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겠네요.

돈키: 그렇지. 역사는 승자가 쓰지만, 깨진 파편을 맞추면 또 다른 진실이 드러나.
이곳은 한반도의 천년을 복원하고,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야.

호새: 저기 저건 성덕대왕신종 아닌가요?

돈키: 맞아. 흔히 ‘에밀레종’이라 부르지.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이 전설로 얽힌 종이지.
그 이야기를 모성의 노래로 다시 쓴다면, 지금 세상도 울릴 수 있겠지.

호새: 박물관에서 서너 시간을 머무셨던 이유가 있나요?

돈키: 천년을 지탱한 힘이 무엇이었고, 왜 신라의 문이 닫혔는지가 궁금했어.
예전엔 전쟁과 영웅 중심의 역사를 보았다면,
오늘은 다양성과 창의성,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을 살피고 싶었지.
박물관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여는 문이니까.

호새: 결국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하군요.

돈키: 맞아. 관점이 곧 통찰이지.
시대마다 다르지만, 인간이 모여 결핍을 채우고 풍요를 나누려는 마음은 같아.

호새: 역사관이 없으면 혼돈이 따르겠네요.

돈키: 그렇지. 구성원의 정체성이 흔들리면 사회는 금세 균열이 생겨.
생활문화와 관계망 속에 그 시대의 질서와 이상이 숨어 있거든.

호새: 기획전시관이나 월지에서 한참 머무셨잖아요. 왜죠?

돈키: 고대의 실크로드의 흔적을 살필 수 있고,
유리잔 하나에도 세계가 담겨 있더구나.
월지에선 신라인의 세계관이 새로웠어.
불교의 전래, 간다라 미술, 처용가, 사자토기…
모두가 신라가 세계와 교감하던 증거였지.
8세기, 교통도 불편한 시대에 천축국을 향했던 혜초의 여정이 떠올랐어.

호새: 예로부터 세상은 이미 어울리고 있었군요.

돈키: 그렇지. 그게 안 되면 싸움이 나는 거야.
영명한 군주는 백성을 편안케 하지만,
탐욕스런 자는 백성을 들들 볶아 거리로 내모는 법이지.
그래서 지도자는 검소해야 해. 모범이 곧 공명(共鳴)을 부르거든.

돈키: 호새야, 넌 뭘로 이름을 남기고 싶으냐?
살찐 말? 뛰는 말? 아니면 나는 말?

호새: 이름은 무슨요. 그냥 뛰다 걷다 눕다 보면 그뿐이죠.

돈키: 그게 인생이지.
세상은 여러 갈래길이고, 만족할 줄 알면 그게 곧 행복이야.

호새: 경주박물관도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스미소니언박물관 처럼 세계적인 곳이 되겠죠?

돈키: 규모보단 ‘혼’이 중요해.
이곳은 천년의 고도 위에 세워진, 우리만의 박물관이니까.
주무관의 친절한 해설 속에서 느낀 건
‘시민의 발길이 머무는 문화가 곧 나라의 품격’이라는 거야.

호새: 그럼 이제 고향을 그리는 피리를 불까요?
아니면 엄마를 찾는 종을 울릴까요?
감포 앞바다의 햇살을 담은 유리잔을 부딪칠까요?

돈키: 얼마나 먼 길을 걸어서 왔는데
산 넘고 강 건너 이곳까지 왔으니,
이제 햇살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거리에서
‘찬찬찬’ — 유리잔 부딪치며 한반도의 노래를 불러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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