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3 (목)

<한반도소나타71>–안동에서

정신문화의 수도

 

정신문화의 수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인가요?

돈키: 그렇지. 어떻게 영남학파의 본향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게. 이 고장엔 안향, 우탁, 이제현, 김계행, 그리고 퇴계 이황 선생까지… 성리학의 물줄기가 깊고 넓게 흐르지.

호새: 학문뿐 아니라 사람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아요. 주먹왕 김두한도 안동김씨라고 하던데요?

돈키: 하하, 그럴 수도 있지. 안동은 이름난 집안이 많거든. 안동댐, 역동서원, 묵계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 학봉고택… 하루 이틀로는 다 둘러보기 어렵다네.

호새: 유림의 본산이라면 예절도 엄격하겠어요. 그럼 오늘은 안동소주 대신 안동찜닭은 포기인가요?
돈키: 그럴 리가. 오늘은 안동간고등어 조림 밥상을 차릴 거야. 짠한 사랑가가 들려오는 월영교도 돌아볼 거고.

호새: 우탁 선생 제향이 매년 열린다던데, 역동서원 이름은 왜 ‘역동’인가요?
돈키: 우탁 선생이 ‘역’을 깊이 공부하고, 이 땅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이야. 고려 후기의 대학자지. ‘지부상소’로 올곧은 뜻을 밝힌 분이고, ‘탄로가’와 여러 한시가 전해오지. 퇴계 선생께서 서원에 사액을 청하고, 직접 현판을 쓰셨다네. 정신적 사부로 모신 셈이지.

호새: 퇴계 선생의 도산서원은 ‘추노지향’이라 하던데요?
돈키: 그래. 퇴계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도산서원을 세우며 “공자와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와 노나라처럼 예의 바르고 학문이 왕성하라”는 뜻으로 남긴 글이지. ‘퇴거계상’이라는 별호처럼 세속을 떠나 자연 속에서 도를 닦고, 성리학의 기틀을 이 땅에 마련한 뜻이 담겨 있네. 그 서원 현판은 명필 한호, 즉 한석봉의 글씨야.

호새: 현실 참여형 율곡과 달리 퇴계는 제자 양성에 힘썼으니 학파가 생겼겠어요.
돈키: 맞아. 영남의 남명 조식, 여헌 장현광, 고봉 기대승, 율곡 이이, 그리고 퇴계의 제자 우성전, 겸암 유몽룡,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이들의 서찰이 오가며 학문이 자랐지. 논쟁도 있었지만, 사랑과 깨달음이 함께 담긴 편지들이야. 깊은 학문이 백천의 지류를 낳은 셈이지.

호새: 학봉 김성일 선생은 왜의 형국을 살피고 돌아와 전쟁을 예견했다죠? 그런데 황윤길과 의견이 달랐다던데요?

돈키: 스승 퇴계는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바쳐 군주의 마음공부를 가르쳤고, 제자는 현실의 위험을 직언했지. 옳고 그름을 떠나 안타까운 일이야. ‘청출어람청어람’이 세상을 발전시키듯, 학문은 시비보다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본질이지.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 괜한 소리가 아니야.

호새: 달을 벗삼던 이태백처럼, 세상을 아는 눈이 필요하겠네요.
돈키: 그렇지. 그는 달을 읊었지만, 그 마음속엔 세상과 사람을 향한 깊은 물음이 있었겠지. 동산에 올라 달을 본 그가 뒷짐을 졌는가, 구두를 신었는가를 다투는 건 부질없다네. 본질을 보는 눈이 중요하지.

호새: 그런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 때 안동까지 도성을 옮겼다죠?

돈키: 그래. 나라의 중심이 이곳으로 옮겨온 적도 있지. 조선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선조가 의주까지 간 것처럼 말일세. 결국 임금도, 백성도 세상공부를 해야 하는 거야.

호새: 사극에 자주 나오는 “전하, 소인을 죽여주옵소서”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돈키: 하하, 그 다음엔 꼭 임금이 머리 싸매고 두통약 먹지. 나라가 흔들리는 전조지.

호새: 왕 노릇, 참 쉽지 않겠어요. 죽일 수도, 버릴 수도 없으니.

호새: 그런데요, 안동에 ‘까치구멍집’이라는 집이 있다던데요?

돈키: 그건 통풍을 위한 옛 지혜야. 베르누이의 유속 원리를 생활에 녹여낸 거지. 바람이 드나드는 구멍 하나에도 선조의 지혜가 숨어 있네. 사실 세상살이도 다 까치구멍집 아니겠나? 성리학도, 불교도, 기독사상도 결국 사람 사는 길을 찾는 공부야.

호새: 하회탈춤의 ‘주지마당’이나 ‘할미마당’도 세상살이의 까치구멍 같네요.
돈키: 맞다네. 웃음 속에 세상사 고달픔을 녹인 지혜지.

호새: ‘정신문화의 수도’답게 국학진흥원에서 밤새워 공부해봐야겠네요.

돈키: 유·불·기 사상이 이 땅에 함께 뿌리내린 곳이지. 근세의 성직자들도 이 지역에서 배움을 얻었어. 깊은 터에는 늘 큰 빛이 스며들지. 디지털 세상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결국 이 나라의 정신은 이곳 안동의 까치구멍처럼 숨 쉬고 있을 거야.

호새: 단양 장회나루 건너 매화, 두향의 그 향기… 여전하겠죠?
돈키: 그 향기야말로 세월을 넘어 흐르는 인간의 품격이지.

호새: 군대 동기들과 오랫만에 회포니 시 한수 어때요?
돈키: 월영교 난간에서 감정을 그려볼까.

<월영교에서>

바람결 칠백리, 안동이라
선인이 켜켜이 쌓은 자취
물가에 피어나는 그 향기
천년 세월을 곱게 담았네

청춘이 울던 시절 인연들
어울린 월영교 그 발길들
물결에 일렁이는 긴 생각
하늘의 이치를 어찌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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