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영화제 서신면 행사장에 발길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폰인사를 하며 오전을 보냈다. 오후엔 평택에 소재한 국제대학교에서 열리는 WBA 아시아 타이틀 매치를 관람하러 집을 나섰다. 1960년대 후반 TV가 면사무소나 학교에나 있던 시절이다. 우리 귀에 익은 '김기수'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또래들이 어울려 면소재지로 찾아가곤 했다. 그 아릿한 추억을 반추하며 영화제 준비에의 두달여 스트레스를 소리지르며 풀고자 자동차를 몰았다. 여리한 음색의 가수가 '어니언스 편지'로 장내를 어룬 후에 국민의례가 이어졌다. 두 선수의 전력이 소개되고 10라운드 열전의 1라운드 종이 울리자 관중의 눈길이 링위로 향했다. 초반의 슬슬이 타닥으로, 타닥이 퍼벅, 퍽퍽으로 변해가더니 드뎌 9라운드와 파이널 라운드에 이르자 지친 선수에게 힘내라며 응원의 함성 "대~한민국"도 터져 나왔다. 두 선수의 국적이 한국과 일본이라 그럴까? 초반전엔 주위를 살피니 당연히 한국선수의 승리를 점친다. 회를 거듭하며 "어유어유 어떻게 해" 소리가 자주 들리고, 필자의 까막 눈에도 승패는 준비된 청코너 일본선수의 승리여야 했다. 게임 종료 후, 발표 결과가 엇나오자 장내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일본선수측에
나팔꽃이 어디에 피었을까? 답은 어제 성황을 이룬 화성 서신뜰에 열린 250여분이 정성을 모아 만든 꽃밭, 제1회화성, 청소년국제폰영화제다. 곁에서 내내 달그락 대던 소리, "두 달여의 짧은 준비로 과연 이룰 수 있을까" 그 소리를 잠재우며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작으로 고운 무지개가 서신 바닷가에 떳다. 어린시절 부르던 동요의 "꽃밭(어효선 작사, 권중길 작곡)"에 한창이던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고, 도처에서 모여든 자원봉사단이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피었다. 학생들의 호기심과 어울려 피워낸 시대마춤 '폰 놀이마당'이다. "제1회 화성청소년국제폰 영화제" 대회명이 드론에 띄워 하늘에 펄럭였다. 디지털 기기에 토톡 토도독 검지 손가락으로 학생들이 수놓은 세상을 영상으로 띄웠다. 폴짝대는 물가에 "개구리"에서 높은 하늘의 "여우별"까지도 말이다. 한팀 한팀 저마다 작은 영상에 큰 생각을 담았으니 필경 지구촌 화성에서 우주 별나라로에 여행이겠다. 호기심을 쫓아 피운 실제와 창의적인 상상을 엮은 체험으로 솟은 어린맘이 바닷뜰에 우뚝우뚝 할게다. 국내외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출품한 작품을 살피며 청소년들의 세상으로 다가갔다는 심사평이 의미롭다. 격려차 행사장을
화성청소년국제폰영화제 개최일이 일주일 후다. 분주한 맘을 접은 채 "춘천국제마라톤" 하프코스에 참여하는 마라톤 2총사를 응원하러 춘천행이다. 코로나로 멈춘 발길을 제외하곤 3총사는 10여년을 한결같이 춘천 호반길을 달렸다. 전야제 의식으로 유명세 '춘천닭갈비'로 빵빵하게 배를 채우곤 했다. "두어라, 그 맛을 누가 알까하노라"였다. 백리길 호반에 마라토너들이 연출한 풍경도 일품이요, 달린 후 '50년 전통 춘천닭갈비' 집에 버석대는 분위기도 좋고, …. 그 멋과 맛에 어울린 마라토너들이 한둘이랴! 저마다 메고온 답답한 세상사 등짐을 벗어 놓고 흰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아래 아침햇살 사이를 달린다. 하늘이 그리운 엄마의 품, 호수이려나? 건너편에 알록달록한 단풍나무들, 아슴한 시심이 솟는 참 고운 날, 어느 시인이 시를 띄우시려나? 어느 화가가 화폭에 담으시려나? 아릿한 목소리로 부른다. "아, 저 하늘에 흰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2총사가 달려나간 뒤 공원벤치에 앉아 공지천변의 가을을 노래한다. 소풍나온 분들이 듬성한 공원이다. 한세상 어떻게 사셨을까? 저만치에 중절모 쓰신 할아버지와 머플러 두른 흰 머릿결 할머니가 살아오신 세월을
사회유기체설에 근거해 화성지역사회에 또 한 생명체가 태어났다. 배냇짓, 옹알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지나 다섯돌 맞이를 축하한다. ‘화성시와 화성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발간 목표이니 응당 시민의 찌그린 눈살과 무거운 감정을 가져온 '부실공사, 엉터리, 유착 의혹, 불법비리, 오염실태, 갈등,....' 등에 글발과 글길이 가닿았다. 옛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든가? 경천동지할 사건에도 그리그리 입 다물고 가는 세상에 이리저리 그간의 발걸음을 살피니 꽤나 암팡지다. 기원전 그리이스 어느 시인의 말 "혀는 칼날보다 강하다"나 19세기 초반대 영국의 극작가가 구사한 "펜은 칼보다 강하다"란 표현은 "사고.언론.저술.정보의 전달은 직접적인 폭력보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환유한 말이다". 갑순이가 무엇을 했는지? 이서방이 왜 했는지? 삼돌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시비의 알림은 올곧게 뻗어나야 할 '청년 화성'에게 자양분이 될게다. "세상을 바꾸는 힘, 미래를 바꾸는 진실" 그 구호엔 분명 "정의"가 함의 되었겠다. 지구촌 '화성'에서 우주 '화성'에로 이를 힘은 진실이다. 인류를 구원할 성경, 불경, 사서삼경, ....에 견줄 의로운 글길과
글제는 고갯길 오르시는 동네 할머니의 가쁜 숨소리려나? "이 소리가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잠들어도 맥박은 뛰고 있습니다". 귀를 울리던 제약사들의 추억의 광고도 생각난다. 소낙비에 비견할까? 이즘엔 이러저러 개그.유머가 SNS를 타고 쏟아진다. 잊혀져 가는 토속 민요를 해설해주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방송이 생각난다. 개그맨들이 이를 종종 패러디해 웃음을 저자거리에 흩뿌리곤 했다. 패러디를 주워들고 집에 돌아와 누이, 아우, 친구에게 환한 기운을 수차례 건네곤 했을테다. "제1회 화성, 청소년국제폰영화제" 개최일(10월 29)이 열흘 남짓하다. 처녀 행사이니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어휴 어휴' 소리 절로다. 우스개 소리 좀 늘이면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화성편, "방금 이 소리는 제부도 길목 서신뜰에서 폰영화제 준비하다 쉴 참에 허리펴는 소리입니다"라고 소개하려나? 영화제는 시나리오, 배우, 관객이 어우러져야 제맛이 난다. 넉넉한 행사비에 빵빵한 유명세 배우들이 붉은 카펫에 등장하면 금상첨화겠다. 화성청소년국제폰영화제는 제1회라 지방보조금 지원없이 치룬다. 200여분이 1만원부터 10만원까지 갹출하고 문화상품권과 농수산물을
코로나 해제(?)로 거리에 대회를 알리는 홍보 현수막이 봇물처럼 요란하다. 그 가운데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란 문구가 눈길에 스친다. 도대체 "뭘 잃어버렸길래" '반드시'란 의지를 내비쳤나? 내사랑 찾는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인의 애린 맘이려나? 아니면, 전봇대나 담배곽에 부착된 "우리 아이를 찾습니다" 부모의 애타는 맘이려나? 아주 소중한 것일텐데… 비자금, 금괴, 땅문서, …일까? 생각해보니 새정부 든지 서너달쯤부터 진즉 내걸었으니 새정부 성공을 기원하는 뜻은 아닐테고… 도심지에 비바람 불어도 저리 버젓이 걸렸으니 시민의 애타는 맘은 아랑곳 없나보다. 그간 나랏일 봤던 분(?)들이 내다 걸었으니 텅텅 비운 곳간을 염치(?)와 수치(?)로라도 채우려나보다. 집착도 병이란다. 전문의가 내린 처방전은 '잊어야 심신에 좋다' 일게다. "스치는 바람"이라고 몸 들렁이며 범룡이가 노래하지 않았나? "고개숙인 옥경이"가 답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인 것을 말이다. 선조들의 '권불십년'이란 시간 다스림 검정 붓글씨의 '명심보감' 글이나 주현미가 두팔 흔들며 휘어 부르는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기분좋은 몸울림의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노랫가락'도 그리
오늘은 '한글날'이다. 아름답고 고운말 한글이다. "한글날 노래(외솔 최현배 작사 박태현 작곡)"에 등장한 배달의 나라, 세종대왕, 24자, 세계 으뜸글자, … 우리의 그 소리말이 한류에 편승해 지구촌에 널리 퍼져 간다. 어느 언어학자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비롯해 유럽과 북미, 중미지역에 걸쳐 고대 우리말과의 혈연적 관계성을 밝혀내고 있기도 하다. 말은 사용하지 않으면 잊혀지나보다. 돌아보면 우리가 겪은 근세사의 아픔이려. 어릴적 사용하고 들었던 말 조각들이 생각난다. 짱깨, 로스케, 쪽빠리, 양키 등 비속어를 비롯한 쓰던 말들을 더듬어 정리하면 꽤나 두툼할테다. 시대가 변해 그 소리말을 글말로 배우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한글날에 공휴일이라 시간을 내어 아침나절의 오가락 가랑비에도 선산자락 사래 짧은 밭에 심은 고구마를 캐려고 형님과 집을 나섰다. 낫으로 줄거리를 걷어가며 삽으로 두덕을 파헤치니 달포전 손가락 정도 굵기이던 게 주먹만히 드러내 형제의 '와아' 탄성이 쌍나팔 소리다. 어제 모임에도 동창들과 나눈 반가운 '야아' 정담에 음식점이 들썩였던 터라 연일 기분이 짱이다. '와아', '야아'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니 채 '어버버'하는 바다건너 소리말과는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양력 10월 3일 개천절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며 국가가 행사를 거행하는 5대 국경일이다.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곱씹는 '하늘을 열었다-개천'의 의미가 새롭다. 서기 2022년에다 아사달(?)에 건국한 2333년을 더하면 올해는 단기4355년일테다. 어린시절 벽달력엔 음력일과 함께 단기년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 후, 개천절 노래(김성태 작곡 정인보 작사)를 나지막히 불러본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하늘이 열린 날이니 역사적 고찰과 종교적 사고를 닫자. 그 옛적에 천손으로 주변 열국과 자웅을 겨룬 한민족이다. 모진 역경을 딛고 오늘날에 이르는 아득한 그 천손이 아니던가! 반세기전 입시준비로 달달 외우던 용비어천가 2장이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그 새암과 뿌리도, 지구촌을 들썩이는 이즘 한류도 반만년의 선인들의 아득한 발길이 시원일게다. 세간이 시끌시끌 하다. 강
마라톤은 내 '몸사랑'이요, 내 '정신차림'이다. 훌훌 일상을 벗어나 코스모스 살랑이는 들길따라 활개짓이다. "기분좋은 날"이니 아릿한 시어들도 높푸른 하늘에 몽실몽실 피어나려나. 마라톤 삼총사가 늘 그랬던 것처럼 번호표 달고 발안에 자리한 종합운동장을 찾았다. 2,000년 가정의 달 5월에 시작된 생활축제다. 제23회를 맞는 "화성효마라톤"은 가족사랑, 경로효친의 정신문화가 깃든 대회다. 지역의 융.건능이 상징하는 "효"정신문화를 스포츠문화로 승화시킨 '가족사랑' 한마당 놀이이다. 출발신호와 함께 운동장을 나서 한발 한발 내딛는 발길이 땅을 울리고, 바람을 가를테다. 시월의 첫날, 아침을 깨운 시민들의 몸활개가 화성뜰을 수놓겠다. 휘이익, 쿵쿵, 깡총깡총, 아장아장… 그렇게들 제모습에 어울려 내딛는 힘찬 발길이 자연에 순응한 생명력이려. 필자도 여느 때와 달리 삐걱한 몸 탓에 도우미로 왔으나, 제1회부터 오늘에 이른 맘이 달려나가 발안뜰을 가르고 돌담거리 호수 인근, 귀신도 잡는 해병대 관사앞, 하가등리, 관리고개를 돌아온다. 내달려 나가는 선수들을 보니 불현듯 어느 가수의 노래말이 스친다.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 …….. 어허허 어허허 속절
경기북부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교육의 미래" 강연회에 지인 차에 동승해 시간반여를 달려간 나들이다. 강사는 기업, 행정, 정치, 교육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자율, 균형, 미래" 3대원칙을 정립한 경기교육을 이끌 경기교육감이다. 정녕, 얼마나 되었을까? 디지털문화로 지구촌 동네가 된 탓일까? "교육"이란 글자엔 '아비 회초리의 가르침과 어미 사랑의 기름'을 잊은지 오래다. 누구를 가르치며 누가 가르치냐에 의문이 없다. 그저 권위시대와 시민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개성이 표현되는 시대이다보니 인간 존엄성(?)과 어울려야 참교육이라고 부르나보다. 경계를 지은 답습된 사회제도론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버겁지 않은가? 급식문제, 교육시설, 교육인원, 콘텐츠,...등 이미 노정된 여러 난제는 세간을 달군 주지의 사실이다. 스스로 문제의 해결 능력을 키우고 편향된 가치를 벗어난 중도와 지식.기술을 가르쳐 품성을 길러냄이 궁극의 교육이라면 '무엇을 가르치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문제겠다. 그간 기초에 치중된 교육을 벗어나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곁들여 창의성을 돋워야 한다는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운 강연이다. 한비자, 손자, 마키아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