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3 (수)

<한반도소나타112>-2일차

상상이 세상을 바꾼다

 

상상이 세상을 바꾼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축구 보다가 출발이 늦으셨다면서요?
9시 반인데, 오늘 30km 코스가 괜찮겠어요?

돈키: 길이 부른다는데 괜찮고 말고. 경안천에서 팔당대교 지나 양수리까지 이어 걸으면 돼. 준비물도 진열대처럼 척척 정리해놨으니 걸음만 내딛으면 돼.

호새: 그런데 천변 풍경이 유난히 산뜻하네요. 어젯밤 비 때문일까요?

돈키: 오감(五感)이 밤새 쉬었는지 생기가 돌아. 광주시청 지나 상번천 삼거리까지 6km는 경보하듯 훅 지나왔어. 중부고속도로 교각 밑에 그늘? 천국이지. 배낭 베고 누워 바람 맞는 맛. ‘사서하는 고생’이라 더 편하다니까.

호새: 그래도 30km면 장거리죠. 마라톤처럼.

돈키: 그 마라톤 말인데… 매년 서너 번씩 풀코스 도전해. 지친 사람들이 골인점을 향해 비틀비틀 가는데, 응원들이 “돈 주고 뛰라면 안 뛸 거야!” 하고 웃지. 그런데도 달리는 건, 하고 싶은 일이니까 고통도 즐거움이 되는 거야.

호새: ‘마지못해 하는 사람’,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 그런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건가요?

돈키: 그렇지. 증기기관, 전구, 컴퓨터… 다 상상의 발명품이지. 상상은 즐거울 때 튀어나와. 그런 힘이 문명을 움직여왔고…

호새: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빨리만 가려 할까요? 저 고속도로 교각 위에 차들처럼.

돈키: 그러게. 뭘 그리 급한지! 자, 자 걷자고. 저기 남한산성면사무소 이정표가 보이네.

<남한산성>
-삼배구고두의 그림자

호새: 남한산성… 병자호란의 흔적이 남은 곳이라죠?

돈키: 1637년 1월 30일. 청 태종 앞에서 인조가 삼배구고두를 했던 자리. 나라가 무너져 백성의 피눈물이 강물처럼 흐르던 때지. 홍익한·윤집·오달제, 세 학사의 지조는 아직도 전해오나… 그 처절함을 누가 다 헤아리랴.

호새: 김상헌의 시조도 문득 떠오르네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돈키: 그래. 그 굴욕적 조약의 내용이 씁쓸하지.

.청·조선 군신관계
.명과 외교 단절
.인조와 대신의 자식 인질
.성과 도시도 짓지 말라
.매년 조공
.청이 명을 칠 때 조선은 파병

약소국의 설움이라고 해야 하나. 주화파와 척화파가 부딪히며 국력만 소모됐으니 안타까운 일이지.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방, 심지어 6·25전쟁도… 왜 그리 비슷한 참상이 반복될까?

호새: 허니,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겠죠.

돈키: “인간의 본성에는 선악이 공존하되, 훈련된 사람만이 선을 행한다”, 인성교육이란 결국 부끄러움을 아는 힘이고, 지도자일수록 더 필요하지.

호새: 정치권도 사드 문제로 시끄러웠죠.

돈키: 그럴수록 분명해야 해. 국가안위는 어느 논쟁보다 우선해야 해. 부러지지도, 필요 이상 휘지도 않는 균형 감각… 자주국방의 길은 멀어도 결국 그 길뿐이지.

<빗속을 걷는 마음>

호새: 어, 갑자기 소나기요! 우중충한 하늘이 마음까지 젖게 하네요.

돈키: 380년 전의 인조대개의 눈물인가? 퍼붓지만 그냥 맞고 걷자.

호새: 산곡 분기점 지나 어진 삼거리쯤 오니 비가 또 쏟아져요. 잠깐 들어간 건물 안에서 바라보니… 비가 난타를 치네요. 자연의 리듬이에요.

돈키: 저기 운무 좀 봐. 마치 잉크가 번지듯 산자락을 흘러가네. 비 내리는 산야를 바라보는 나그네 마음이 딱 저렇지.

호새: 비가 좀 잦아든다 싶어요. 다시 출발하죠?

돈키: 가자. 하남IC 지나면 팔당대교가 보여. 도심 구간 끝나는 지점만큼 반가운 곳이 또 있겠냐. 한강 물줄기만 떠올려도 마음이 먼저 달려가네.

호새: 상상의 즐거움이 두 다리에 날개를 달아주나봐요.

돈키: 그래! 팔당대교로 날아가 볼까.
 


포토뉴스

더보기

섹션별 BEST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