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을 나서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드뎌 관심 갖던 해양문화재를 살필 장소네요.
돈키: 근해 바다는 고대 유산의 수장고니, 이를테면 타임캡슐이지. 알 수 없었던 일들이나 당시의 생활양식, 나라 간 해상교류를 살필 자료실이야.
호새: 고대 해양문화를 살피려면 우리말 변천과 한자 어원, 일본말도 알아야겠어요.
돈키: 고고학자·역사학자·국문학자들이 연구하는 분야지. 그냥 그렇구나 이해하고, 물길에 관한 거니 물 ‘수(水)’자 정도는 공부해야지.
호새: 샘이 냇물이 되고, 내가 강이 되어, 바다로 가는 거네요.
돈키:『설문해자로 어원을 살피면 샘 ‘천(泉)’, 내 ‘천(川)’, 강 ‘강(江)’, 바다 ‘해(海)’, 대양 ‘양(洋)’의 의미가 분명해지지. 마시는 물인지, 건너는 물인지, 낚시 할 물인지, 아니면 수평선을 바라보며 배를 타고 나가는 바다인지를말이지. 해양문화재는 바람을 이용해 목적지에 오가다 풍랑을 만나 침몰한 배에서 나온 유물들을 정리한 것들이 많아.
호새: 어느 시기에 어디서, 누가, 왜, 무엇을 싣고 가다 침몰했는지 살필 수 있겠네요. 대하드라마 소재도 되겠어요.
돈키: 연구를 많이 해야지. 당시 시류, 풍습, 언어, 생활양식… 기본지식이 풍부해야 할 거야. 이곳이 바로 그런 장소지. 들어가 볼까? – 휘릭
호새: 바다길 기록이 재미있겠어요.
돈키: 해양문명사를 살펴야지. 고대 국가들이 서·남해상에서 싸우기도 하고 오가기도 했으니 그 흔적을 찾아내야 해.
정화, 디아스, 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마, 베스푸치, 마젤란 같은 원양 탐험가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도 1세기 허황옥의 가야 도래, 사국시대에 서해교류, 9세기 장보고의 서남아 항로와 청해진 설치, 고려시대 벽란항 무역, 12세기의 서긍의 <고려도경>에 보이는 고군산 입도, 12~13세기 베트남인의 도래, 14세기 유구인 망명, 17세기 벨테브레(박연) 표류, 17세기 하멜 표류, 19세기 홍어장수 문순득의 유구·여송·마카오·중국에 이르는 남방해로 탐험 등… 이런 인물들을 통해 바닷길을 추론할 수도 있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른 통상·외교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료이지.
호새: 우리는 하멜 표류기 같은 기록이 없나요?
돈키: 홍어장수 이야기지. 정약전의<표해시말>과 이강회의 <유암총서>에 남겨져 세상에 드러난 거야. 19세기 초 민간인이 태사도(흑산도 인근) 홍어를 홍보하러 나섰다가 표류한 이야기지. 그 즈음 서양은 벌써 17세기에 동인도회사를 세워 지구촌을 누볐고, 중국은 명·청 교체기, 조선은 상평통보가 돌다 대기근을 맞아 해상정책은 엄두도 못 내던 시기였어. 표류담이 실학자를 만나 <표해시말>로 정리된 게 그나마 다행이지.
호새: 신안 앞바다 유물을 살피니 고려청자가 중·일·베트남산보다 뛰어나다고 하네요.
돈키: 그래, 송나라 사신이 『고려도경』에 남긴 말의 의미가 크지. 강진 등 여러 섬에서 도요지가 발견되니 해상무역의 인기 품목이었을 거야. 자기(磁器)와 잘 어울린 차문화도 유행했고, 초의선사와 다산의 차담도 전해지잖아. 아마 호남이 차 생산지로 유명한 연유겠지.
호새: 신안선을 보니 어떻든가요?
돈키: 서해나 남해 연안에 침몰한 무역선이 한둘이겠어? 바닷길의 의미를 살피는 거지. 옛적에 청자를 실어 보냈고, 지금은 자동차와 반도체를 실어 보내고 있어. 황해와 남해를 넘어 먼바다에 꿈을 실어 보내는 동기부여를 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야.
호새: 장보관에 멋진 글이 있다면요? “당신의 꿈은 무엇이냐(What’s your dream)”
돈키: 문을 열고 나서야지. 대양으로 말이야. 고래도 잡고 상어도 잡고 세상을 낚는 거야. 동네에서나 서성대기보다는 태평양 위에 ‘코리아’가 떠야겠지.
호새: 그래서 고흥(高興)에 나로호 우주센터가 있나 보네요.
돈키: 중국은 기원전 3세기, 일본은 16세기에 전국 통일을 이뤘지. 우리는 10세기였지만, 근세사를 살피면 시사하는 바가 커. 바다는 트여 있어 그만큼 개방적이라는 뜻이지.
호새: 바다 타임캡슐을 살피니 세상을 깊고 넓게 바라보라는 의미처럼 느껴져요. 동남아 해상탐험기 『표해시말』, 짝짝! 대~한민국 이네요.
돈키: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 알지?
호새: 그럼요. “문순득의 홍어” 버전도 우리의 멋진(?) 해양사네요?
돈키: 아마도 코리아는 옛적에 천문과학국이었으니 해양대국이었을 거야. 어서 숨겨진 사료들을 찾아내 이를 밝혀가야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