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가 발아래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드디어 광한루예요? 어쩌나, 날이 저무는데…
돈키: 상상해봐라. 저 그네가 창공을 차고 올라가는 걸.
호새: 빈 그네가 날겠어요? 제 눈엔 오색댕기 휘날리며 분홍치마 입은 처녀가 하늘을 차는 게 보이네요. 이도령이 그 모습 보고 가슴에 불났겠죠. 방자는 짚신이 닳도록 쪽지 심부름했을 테고요.
돈키: 봄색이 푸릇푸릇하니 그럴만하지. 무대가 광한루니 풍류가 절로 나잖아. 봄날 처녀가 나무 끝 그네 뛰면 사내들 눈이 돌아가겠지.
호새: 그네 타본 적은 있어요?
돈키: 그럼! 시골에는 큰 느티나무마다 그네가 매여 있었지. 군대 유격훈련에도 그네코스가 있었어. 줄을 제대로 못 잡으면 흙탕물에 풍덩이지. 두 손, 엉덩이, 허리, 다리, 박자를 맞춰야 하늘을 차지. 쌍그네는 호흡이 딱 맞아야 제맛이고 보기에도 좋지. 세상살이도 그네질 같더라—서로 박자 안 맞으면 넘어져.
호새: 요즘은 청룡열차 타며 스릴 느끼죠.
돈키: 운치가 그네만 하겠냐? 낮엔 버들가지 드리운 호수에 원앙이 노닐고, 밤엔 달빛과 별빛이 물에 뜨지. 무지개 오작교 밑엔 잉어가 쭈쭈거리고—그게 바로 광한루의 풍류지.
호새: 선비들은 한시 짓고 풍류 즐기고, 총각들은 그네 타는 처녀에 눈이 멀었겠어요.
돈키: 주인공이 몽룡과 춘향이지. 봄날엔 처녀총각 모두가 도령이고 춘향이야.
호새: 어릴 적 형들 쪽지 심부름 안 했어요?
돈키: 누이가 없었지. 대신 옆집 누이들이 냉이, 달래 캔다며 들로 나갔다가 괜히 뻐꾸기 소리 듣고 오곤 했어.
호새: 남원이 판소리 고장이라죠?
돈키: 그라제. 왜란·호란 겪은 뒤라 여러 의미가 얽혔다지만, 결국 ‘춘향(春香)’이 세상천지를 진동시킨 거야. 사랑이 주제니 만국공통이지. 유명작가도 말했잖아—소설이 히트하려면 ‘아리아리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호새: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 대목, 무릉도원이네요.
돈키: 그럼. “쑥대머리 귀신형용…” 옥중가 들으면 지옥이 따로 없지. 그래도 “암행어사 출두요!” 반전이 있으니 맛이 나는 거야.
호새: 주인공보다 방자랑 향단이 재밌어요. 월매도 만만찮고요. 시쳇말로 원나잇 스탠딩한 딸내미를 꽃가마에 태운 셈 아닌가요?
돈키: 하하, 방자전 보면 쪽지 심부름값이 후하드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게야—남원엔 ‘만인의총’이 있어.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이 있었기에 춘향이도 그네를 뛰고, 판소리도 울려 퍼지는 거야. 나라 없으면 이런 풍류도 없지.
호새: 세상 그네를 멋지게 타는 나그네가 우리네 인생이지요.
돈키: 그렇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숙생의 노래처럼 말이야. 그네는 왔다갔다—한번 구르면 제비가 놀라고, 두 번 거듭차면 세상이 발아래라. 시름도 바람 따라 날아가지.
호새: 세 번 구르면요?
돈키: 세상을 창조하는 거지! 하나, 둘, 셋—팡!
호새: 바람에 치마자락만 날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인생 철학이네요.
돈키: 자, 서문으로 나가서 추어탕 한 그릇 들자.
호새: 추어탕 들고 밤그네 타려구요? 온방죽 물 흐릴 만큼 힘 좋다던데 두어 그릇 해야겠어요.
돈키: 미꾸리처럼 빠져나간다잖아. 그 미물에게도 배울 게 많아.
호새: 세상에 미꾸리 많은 거 아시죠? 광한루에서 변학도가 미꾸리처럼 빠져나가길래 내패(마패)를 보여줬더니 오리들이 잠수해서 찾더라고요. 어찌 됐을까요?
돈키: 하하, 그 답은 <정옥추어탕>집 작가님께 여쭤보자구. 광한루에서 인생그네 타신 분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