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8 (화)

<한반도소나타76>-고도 경주

천년의 세월 담겼어라

 

천년의 세월 담겼어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천년의 풍파, 세월 담겼어라.”
송창식이 부르던 그 경주불국사의 그림 말이야.
구름을 품고 안개를 토하던 토함산의 풍경이 딱 저 노래 한 자락이지.

호새:
저기 저 멀리 감포 앞바다… 문무왕 해저릉인가요?

돈키:
그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비문으로 남긴 왕이지.
학자들 말로는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 마한과는 계통이 다르다고도 해.
흉노계 북방 유목민이 바다 건너 남하하여 이곳에서 꽃 핀 나라로 기마도, 금장식, 화폐, 부장품들.
그 이동의 흔적들이 말해주는 이야기야.

호새:
역사는 대충 훑고 지나가면 안 되죠.
원효대사,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처용가도 빼놓으면 섭하지요.

호새:
경주거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원효대사의 “수허몰가부, 아소지천주”, 그 도끼 말이에요.

돈키:
7세기 중반, 원효대사의 ‘도끼송’ 이야기네.
그로 인해 ‘과부재가금지’법이 생겼다는 설도 있어. 두뇌회전이 빠르고 귀가 컸다는 태종무열왕이
과부였던 요석공주와 원효를 맺게 해서
이두문자를 다듬은 설총을 낳게 했다지.

호새:
신라는 935년에 사라졌으니 원효 이후로 200년은 이어졌네요.

돈키:
원효를 그저 신라 시대 스님으로만 묶을 수는 없지.
일심사상, <무애가>,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 아직도 유효하고 지금에도 필요한 사상이라 생각해. 곁들이면 무애가나 도끼송은 헌강왕 시절 유행하던 라이브 송, 즉 처용가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어.

호새:
도끼송 부르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죠?

돈키:
노래란 목으로만 부르면 울림이 없어.
몸에 혼이 녹아들어야 세상이 울리지.
야호~ 그 메아리도 결국은 들을 사람 가슴에만 닿는 거야.

호새:
맞아요. 동네형의 뻐꾸기 소리에 옆집 누이 사이문 열고 나가더라니까요.
근데, 정말 도끼가 역사에 자주 등장하네요.

돈키:
그래. 도끼는 ‘불목하니’ 장작도끼이기도 하고,
선비가 ‘지부상소’ 할 때엔 추상 같은 기개이기도 하고, 고려 말 무신 이의민은 ‘부월’로 권세도 쥐었지.
동화속 산신령은 금도끼 은도끼로 사람의 마음을 가려냈고…

호새:
그렇다면 세상일도 결국 노래 한 자락으로도 풀리는 건가요?

돈키:
전해오는 신문왕 때의 ‘만파식적’ 이야기 알지?
근심을 없애는 피리랄까. 요즘 세계피리축제를 열잖아. 노래는 마음을 흔들거든.
방탄소년단을 봐. 젊은이들이 열광하잖아.

호새:
유엔에서 ‘제 길을 가라’ 했던 그 스피치 멋져요.

돈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을
요즘 식으로 하면 “넋 놓지 말고 제 정신 차리고 제 길을 가라”는 뜻이지.

호새:
천년의 역사를 몇 줄에 담을 수 있을까요.
옛날 북방 유목민이 이곳까지 왔듯, 제 나라에서
피리 부는 사람들이 옛적에 다 이곳에 모였나봐요?

돈키:
그래. 피리는 어디서든 있어.
흙피리, 풀피리, 버들피리, 대피리, 뿔피리, 보리피리…
소리가 길을 만들고, 사람은 그 길을 따라가는 거야.
우리가 경주에 오는 것도 결국 그 소리 때문이지.
삶도 그렇지 않나.
아리랑 고개 넘어가는 그 한 호흡.
소슬바람에 가슴 젖는 고향소리 같은 거지.

돈키:
이 고장은 손가락 꼽는 지구촌의 명승지인 만큼 큰 생각을 많이 냈어.
신라시대 고승, 경주태생의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를 기억하지? 마르코폴로, 오도릭, 이븐 바투타보다 앞선, 세계 4대 여행기 중 첫 번째야.

호새:
그럼 저도… ‘말’이 하는 기행으로는 한반도 최초가 되겠네요?

돈키:
그러니 똑바로 걸어야지. 서산대사께서 그러셨어.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적에는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말라.
오늘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호새:
그럼요. 똑바로 걸어야죠. 일어나 다시 한번 걸어야지. 노래도 부르며…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삘릴리~
무지개 연못에 웃음꽃 핀다.”

돈키:
그래. 역사를 담아 미래를 열어가는 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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