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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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띄우는 편지404

가을 아침햇살-천변기행17


가을 아침햇살-천변기행17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아침 산책길의 공기가 산뜻하다. 밤새 내린 비로 냇물은 불어나고, 모래톱에는 청둥오리들이 납작 몸을 낮추어 있다. 동녘 햇살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가마우지의 모습 또한 눈에 들어온다. 저 생명들은 왜 저런 모양새로 있는 것일까. 걷다 보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갓 퍼지지 않은 햇살 아래, 제 얼굴을 드러내는 꽃들이 눈길을 붙든다. 아내가 일러준 이름들은 낯설면서도 정겹다. 애기나팔꽃, 둥근잎 유홍초, 도깨비가지, 돌동부…. 봄부터 헤아려본 꽃들이 수십 종이라 이제는 천변 꽃도감을 만들어야 할 듯하다. 어제 능행차 행렬에서 보았던 붉음, 노랑, 파랑, 하양의 깃발빛이 이 꽃빛과 겹쳐 떠오른다. 토종과 귀화종이 어우러져 풀섶에 스며들 듯, 산책길의 운치를 더한다.

문득 울긋불긋 수숫대가 시선을 붙든다.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한다. 또래들과 파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던 화살, 예쁘게 만들던 수수깡 안경, 돌상에 올랐던 수수떡, 수수빗자루, 수수엿…. 오래전 동화 속 <해와 달이 된 오누이>까지 끌려오니, 참으로 오랜만의 해후다.

저만치 앞서 걷는 이의 뒷모습이 원근감을 만들어내니, 그 또한 가을의 정취다. 아침이 서늘하다. 파란 하늘 아래 고요가 드리워진다.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 하고 금이 갈 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드리우고 있건만.] ……………<벽공> 이희승

하늘에 눈길을 두었다가 발길이 가시박 덩굴에 채인다. 길가로, 하늘로, 덩굴손을 뻗어내는 가시박. 천변 뚝방에 지천이다. 붙들어 올라가는 그 집요한 손길은 생명력의 비밀을 새삼 일러준다. 가을 햇살에 꼿꼿하게 세워진 덩굴손, 오늘의 생각을 길게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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