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7 (수)

오피니언

<한반도소나타129>ㅡ부산역-김해

새벽의 출발


새벽의 출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신방구리: 이곳 부산역에서 출발한 거예요?

돈키: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왔지.
역 광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다가, 새벽 두 시쯤 비방울이 떨어지더라.
그 순간 바로 출발했어.
숙박업소에 들러 잠시 눈을 붙일까도 했는데, 마음을 다잡고 인도 따라 밤길을 걸었지.
지금이 아침 여섯 시 사십 분이니까 아마
저녁 일곱 시쯤에 병점에 닿을 수 있을 거야.

신방구리: 시가지를 벗어나면 더 어두웠을 텐데요.
모두 잠든 시간에 혼자 걷는 기분은 어땠어요?

돈키: 담담했지.
열흘 일정으로 떠난 길이거든.
새벽 두 시의 어둠 속에서는 앞만 보고 걷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졌고, 마음이 앞서가 구포에 먼저 닿았지.
군대에서 배운 독도법 덕에 지도를 틈틈이 확인하며 길을 놓치지 않았어.
배움이라는 게, 꼭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더라구.
첫날이라 그런지 발걸음도 가벼웠고.

신방구리: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런데… 이 길이 맞긴 맞아요?

돈키: 맞아.
그땐 터널을 지나 구포까지 가는 동안 열 번은 물어봤을 거야.
지금은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니 길 찾기가 참 편하지.
그래도 여행은 사람들에게 묻고, 헤매고, 돌아가며 가야 제맛인데
차로 움직이니 그 재미가 덜해.

신방구리: 파스칼처럼 만유인력을 발견하려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는 거예요?

돈키: 그저, 걸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지금 돌아보면 팔박구일의 시간이야.
벚꽃 북상 소식이나 KTX 소요 시간, 비행기와 비교하면 참으로 옛스러운 방식이지.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발바닥에 닿는 감각이
전신으로 번져오는 울림이 있어.
그건 분명, 경험할 가치가 있는 감정이야.
시가지를 벗어나니 몸이 때를 알아서 쉴 곳을 찾더라구.
이미 천 리를 걸어본 뒤라
웬만한 걷기는 버거움이 되지 않았어.
지금은 차 안에서 풍경을 보니,
그때와 감정이 조금은 다르게 스며드는 것 같아.
코로나로 모두가 어렵다는데,
저 상가들은 어떻게 버텼을까…
기억 위에 다시 덧칠을 하는 셈이지.

신방구리: 정강이를 걷어 올리고 냇물을 건너는 대신,
다리품으로 낙동강에 걸린 구포대교를 건너는 기분은 어때요?

돈키: 그때도 오전 나절이었어.
난간으로 오르는 입구를 찾느라 잠시 헤맸지.
다리에 오르니,
트인 강물 위를 걷는 기분이더라.
늘 그렇듯,
넓은 들이나 큰 강을 만나면
사람의 마음도 그에 맞춰 넓어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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