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3 (토)

오피니언

<한반도소나타125>―영동고속도로

동서를 연결하다


동서를 연결하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저 고갯마루 위에 우뚝 선 비석 보이세요?

돈키: 영동고속도로 개통 기념비지.
백두대간의 기상처럼 서 있구나.
길 하나가 세상을 이렇게 바꾼다는 증거야.

호새: 수도권이랑 강원도가 확 가까워졌죠.

돈키: 그래.
길은 단순히 이어주는 게 아니야.
길이 열리면 삶이 움직이고,
줄기가 뻗으면 가지가 생기지.

호새: 예전엔 강원도 하면
‘…이래요’ 방언에 옥수수, 감자부터 떠올랐는데요.

돈키: 이젠 관광, 레저, 힐링의 땅이지.
고랭지 채소는 식탁으로 오고
바다는 도시의 숨통이 됐어.

호새: 지인들 중에도 강원도에 농가나 세컨하우스 가진 분들 많아요.

돈키: 청춘 때는 막걸리 잔 들고 노래했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완행열차 타고 말이야.

호새: 고래사냥이요? 하하.

돈키: 그래.
그때는 다들 홍길동이었고
강원도는 율도국이었지.

호새: 그 청년들이 지금은요?

돈키: 중년 고개를 넘어
쉼터를 찾아 다시 강원도로 가지.
봄엔 꽃, 여름엔 바다,
가을엔 단풍, 겨울엔 눈.
사계절이 놀이터가 됐어.

호새: 강릉 단오제도 세계무형문화유산이잖아요.

돈키: 지구촌의 축제가 되었지.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강원도는 날아오르기 시작했어.

호새: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뱃길도 융성하겠죠?

돈키: 그날이 오면
이 땅이 다시 용트림 할 거야.

호새: 이 길을 걷는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돈키: 나도다.
길 위에 서 있다는 건
역사 한복판에 있다는 뜻 이니까.

……휘리릭
<강원도 아리랑>―대관령

호새: 강릉시청까지 22킬로,
산기슭 박물관까지는 10킬로네요.
오후 3시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돈키: 고갯마루에선 뛰어야지.
여기가 대관령이야.

호새: 아흔아홉 구비 고개라던데요?

돈키: 옛날 선비는
괴나리봇짐 속 곶감 아흔아홉 개를 먹어야
정상에 올랐다지.

호새: 대관령 이름도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에서 왔다던데요.

돈키: 맞아.
험해서 굴러 떨어질 것 같다는 뜻이지.

호새:
저기요… 바다가 보여요!

돈키: 그래.
250킬로를 걸어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호새: 가슴이 벅차네요.

돈키: “인생 굽이 몇 굽이냐”
노래가 괜히 나온 게 아니야.

호새: 어머니 생각이 나요.

돈키: 그렇지.
자식 키우며 넘으셨을
수많은 삶의 고개들….

호새: 아리랑이 왜 이렇게 가슴에 와닿는지 알겠어요.

돈키: 아리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유년, 청년, 장년…
굽이굽이 걸어온 세월이
여기서 한꺼번에 울리는 거야.

호새: 괴테 말도 떠오르네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돈키: 대관령을 걸었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아흔아홉 구비를 넘지 않은 자
삶을 논하지 말라.”

호새: 곶감 대신
거리표지판을 보며 걸어가야죠.

돈키: 그래, 강릉까지 10킬로 남았다.

호새: 저기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요!

돈키: 물병 하나가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호새: 사진 한 컷 찍고 갑시다.

돈키: 그래.
이 고개를 넘은 증거니까.

호새: 강릉 시가지를 보니 발걸음이 가벼워져요.

돈키: 고개를 넘으면
언제나 길이 평탄해진다.
그게 대관령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법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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