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6 (토)

오피니언

<한반도소나타117>-양평군청

사유의 변곡점


사유의 변곡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새벽 6시인데 벌써 길을 나서요? 어제 막걸리 꽤 드신 것 같은데요?

돈키: 그게 오히려 숙면을 도왔나 봐. 오늘 목적지는 양평군청, 28km 남짓. 노문리 지나 명달계곡, 정배리, 신복리, 덕평리로 이어지는 여정이지.
새벽 산 기운이 차갑더라. 약수로 물병 채우고 한 걸음씩.

호새: 아침 산길 고요가 딱 그려져요.

돈키: 그래, 아스팔트 밟는 소리가 클래식 건반 치는 듯해. 햇살이 막 번질 무렵 명달계곡 입구에 닿았어. 식당 겸 슈퍼 하나 보이길래 아침밥 부탁드렸지.
감자국, 오이상치, 묵은지, 풋고추… 어머니 손맛 그대로야. 고추장에 보리밥 비벼 먹던 그 시절 딱 그 맛.

호새: 산마을에서 만난 어머니 밥상이라… 그거 자체가 여정의 보상 아닌가요?

돈키: 그러게. TV로는 탁구 경기가 한창이라 주인아저씨랑 나랑 눈으로만 ‘대한민국!’ 몇 번을 외쳤는지.
밥값 6천원 드리니 냉수병 다시 채워주시면서 정배리 가는 길도 알려주셨어. "해 뜨기 전 서둘러야 뜨거운 열기 피한다"고.

호새: 천리 길도 한 걸음이라던데, 지금까지 얼마나 걸으셨죠?

돈키: 집 떠난 지 250리쯤 걸었지. 발에 물집 좀 있을 뿐 별 문제 없어. 신기하게도 무디어진 감각이 다시 살아나더라. 솔향, 풀냄새, 산기운… 걷는 맛이 그런 거야. 몸뚱이를 꾸준히 나르는 다리가 고맙더라니까.

호새: 양평군청 도착해서는요?

돈키: 민원실 밖 넓은 쉼터에 배낭 벗어놓고 그대로 의자에 털썩. 스타킹만 신은 채 흐트러져 앉았다니까.
폰으로 보니까 내 모습 참 가관이야. 하지만… 어쩌면 그게 본래 내 모습일지도 몰라.

호새: 강릉까지도 아직 멀었는데 피로가 슬슬 쌓이죠?

돈키: 그렇지. 몸이 오감을 이끌던 단계에서 이제는 의지로 끌고 가야 할 순간이 오는 거야. “어휴, 힘드네”라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오지.
그럴 때 생각하지. 알프스, 에베레스트, 록키, 사하라를 넘는 이들은 어떤 강도로 자신을 이겨낼까.

호새: 그래서 ‘사유의 변곡점’이란 말을 붙이신 거군요.

돈키: 응.
고통과 피로가 쌓일 때 생각이 꺾였다가 다시 솟아오른다.
몸이 다 타들어 갈 때, 오히려 마음의 선이 새롭게 그어지는 거지.

호새: 인고의 여정이 결국 사유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군요.

돈키: 그래.
인고의 여정은, 결국 생각이 바뀌고 깊어지는 지점이야.
그게 바로 ‘사유의 변곡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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