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여인– 황구지천변 기행17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주말 아침, 천변 산책에 나섰다. 며칠 전 평생지기가 거실에 들여놓은 들국화 향기가 아직 코끝에 남아있다. 눈을 돌리니, 천변 비탈에도 노란 들국화가 올망졸망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들판에 나가 데이지 꽃을 더 많이 꺾어보리라.”
시인 나딘 스테어가 85세에 남겼다는 그 구절이 떠올라, 손끝으로 한 가지를 조심스레 꺾는다. 노란 꽃잎에서 진한 가을 향기가 피어난다.
이승을 떠난 가수 현철이 상사병의 처방전처럼 부르던 노래, <들국화 여인>의 그 고운 빛깔이 이렇지 싶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가을을 남기고 서늘한 바람 속으로 사라질 꽃, 들국화다.
천변 오른편 안녕뜰은 이미 추수를 끝내 텅 비었다.
한때 푸르게 물결치던 이곳도 누렇게 익은 끝에 마음을 비워내니, 자연의 섭리요 생명의 순환이다.
어제, <화성 동서남북 문화기행> 영상과 웹툰 마무리를 위해 원로 문인을 찾아 들렀던 충남 당진의 풍경과는 사뭇 달라, 잠시 고개가 갸웃해진다.
왼편 물길 한가운데 모래톱 위에는 가마우지와 청둥오리들이 앉아 제 몸단장에 열심이다. 제 자리에 제 있음에 눈인사만 나누고 그냥 지나친다.
돌아오며 천변에 넓게 펼쳐진 코스모스 꽃밭으로 내려섰다.
봄날엔 노란 유채가 일렁이던 곳이, 가을에는 하양·자주·분홍빛 코스모스로 곱게 물들어 사람들을 불러 세운다.
여섯 마디 노인(?)이 <대머리 총각> 대신해 들국화·코스모스·금잔화·억새에 연신 탄성을 내며 앞서 걷는 평생지기 여심의 모습을 폰카메라에 담는다. 그야말로 환한 가을 꽃밭이다.
<꽃밭에서>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 정훈희 노래]
눈길에 깃드는 맑은 햇살, 높푸른 하늘, 하얀 뭉게구름이 유난히 선명한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