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8 (목)

오피니언

<한반도소나타42>-안성

맞춤랜드

 

맞춤랜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안성하면 ‘안성맞춤’ 인가요?
돈키: 그래. 유기전(鍮器展)에서 비롯된 ‘안성맞춤’도 이름났지만, 시민의 발길을 붙잡는 남사당놀이와 전국 3대 장터로 꼽히던 안성장도 빼놓을 수 없지. 삼남지방의 길목이라 역사와 문화가 두텁게 스며 있단다. 원곡만세고개, 그리고 교과서에서 만난 시인 조병화, 박두진의 작품세계도 안성 땅과 깊이 맞닿아 있지.

호새: 남사당놀이요?
돈키: 풍물놀이,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라 부르는 여섯 마당으로 펼쳐지는 놀이야. 북 가락 울리면 대접이 돌고, 땅재주·줄재주·탈놀이·인형극이 어우러져 한바탕 흥겨워지지. 그중에서도 줄타기는 백미야. 어름산이가 줄 위에서 재주부리며 던지는 재담이 관객의 배꼽을 쥐게 하지. 안성 태생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가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도 그 덕분이야.

호새: 외줄타는 기분이 어떨까요?
돈키: 아슬아슬 줄 위에서 중심을 잡는 건 삶 그 자체지. 보는 이는 두근두근, 타는 이는 출렁출렁… 위태로움과 흥겨움이 함께 어울려야 신명이 나. 꼭 우리네 인생 같지 않니?

호새: 부채 흔들며 사위질하는 동작이 재미있겠어요.
돈키: 폴짝폴짝, 사사삭, 휘청휘청… 금세 떨어질 듯하던 어름산이가 “아이고, 애 떨어질 뻔했네” 하고 외치면 관객은 한바탕 웃는 거야. 재주는 기술이지만, 진짜 맛은 익살이지.

호새: ‘미리내’ 성지도 유명하다죠?
돈키: 그렇지. 순교 성인 김대건 신부를 모신 곳이야. 교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불빛이 은하수처럼 흘러 ‘미리내’라 불렸지. 화성 왕림본당과 이어지는 유서 깊은 신앙지로, 한국 천주교사의 큰 발자취가 살아 있어.

호새: 장터라니 할머니국밥이 떠오르네요.
돈키: 장터는 삶의 교류처지. 소금, 유기, 어물, 죽제품, 피륙…. 보부상이 오가며 생활필품이 흘러들었어. 장날이면 풍물패가 흥을 돋우고 사람들 발길은 끊이지 않았지. 근세 들어서는 오산·수원장과도 이어지는 큰 장터였단다. 국밥 한 그릇에 동동주 한 사발, 그 맛이 안성맞춤이지.

호새: 제 입맛에도 딱이겠어요.
돈키: 가을엔 홍당무, 겨울엔 국밥이 제격이지. 옛 장터 국밥도 좋지만, 요즘은 퓨전 음식도 즐길 만해. 입맛도 시대와 더불어 흐르는 거야.

호새: 맞춤랜드, 미리내, 장터까지 둘러봤으니 이제 어디로 가나요?
돈키: 안성천으로 가자꾸나. 황구지천과 진위천을 받아 평택호로 흘러드는 큰 물줄기야. 이곳에서 “청망이들”이라 불린 격전이 벌어졌지. 육지에선 안성천, 바다에선 경기만 풍도 앞바다에서 싸움이 있었어. 청나라가 패하며 조선의 지배력이 일본으로 넘어가 동아시아 판도가 바뀌었지.

호새: 안성바우덕이와 안성맞춤, 참 흥미롭네요.
돈키: 안성맞춤은 단순한 말이 아니란다. 눈맞춤이 썸을 부르고, 몸맞춤이 생명을 낳지. 눈높이 맞추는 게 세상을 이끄는 힘이야. 말 그대로 ‘딱 들어맞는 삶’의 철학이지.

호새: 줄 잘 서고, 줄 꽉 잡아야 한다는 말이군요. 사는 게 줄타기 같아요. 그런데 “임자가 따로 있나…” 하는 시 구절은 뭔가요?
돈키: 조병화 시인의 ‘의자’를 빗댄 말이지. “아침을 몰고 오면 묵은 의자 비워 주겠다”는 구절처럼, 삶은 끊임없는 자리 물림이야. 운동화 끈 조여 매고 달려가자꾸나, 우리를 기다리는 ‘안성맞춤’ 회전의자가 있을거야.





 


포토뉴스

더보기

섹션별 BEST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