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3 (수)

오피니언

<한반도소나타30> – 양주별산대

해우소 놀이마당


해우소 놀이마당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요즘 뭐 신나는 일이 없을까요? 코로나-19 때문에 거리엔 셔터 내리고, 입마저 닫아야 하니 마음을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돈키: 원래 민초들의 삶은 고달픈 법이지. 내 배가 불러야 나랏님이 누군지 관심을 두지 않는데, 요즘은 가을낙엽처럼 거리에 나뒹구는 꼴이 참 안쓰럽네. 옛날엔 놀이마당이 열려 두드리고 어울리며 힘든 세상을 견뎠지.

호새: 그럼 오늘 양주별산대 놀이마당에 가볼까요?
돈키: 휴관이라도 가보면 복잡한 생각이 좀 정리될 것 같아.
호새: 가면무도회나 카니발 축제 같은 건가요?

돈키: 글쎄다. 두드리고 지껄이고, 몸짓으로 세상을 한바탕 흔드는 거지. 가설극장 포장을 들추 듯, 윗동네 위선을 풍자와 해학으로 후려치며 놀이패와 관중이 어우러지는 자리야. 요즘은 댓글 달고 패러디하면서 풀지만, 옛날엔 탈을 쓰고 상전 흉보다 해묵은 감정을 털어 내지. 민초들의 해우소였던 거야.

호새: 놀이마당이 열리면 웃음보가 터지겠네요.

돈키: 프랑스 니스, 이탈리아 베네치아, 브라질 카니발도 그렇듯 시대 따라 놀이마당 모양새는 달라졌어. 풍요를 기원하거나 권력에 저항하기도 했고, 오늘날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표현하는 예술로 발전했지. 하지만 전통문화의 원형은 다들 비슷해. 봉산탈춤, 안동 하회탈, 오광대놀이… 들어봤을 거야. 별산대놀이는 산대도감극의 한 갈래로, 마포·애오개·송파 본산대와 달리 경기 지역에서만 펼쳐진 마당놀이거든. 윗동네 민낯을 까발리고, 고달픈 생활을 정화하는 기(氣) 충전소 같은 자리였지.

호새: 그렇다면 저도 오늘은 별산대놀이 말뚝이처럼 한마디 해볼게요.

호새(말뚝이):
타짜님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현충원에 잠든 선열들이 그렇게 하라 했습니까? 몸 주신 부모님들이 그렇게 살라 했습니까? 자식들한테도 그렇게 살라 하겠습니까?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여가수 노래 <너무합니다>야 가슴이나 아리지만, 타짜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배를 불려쌌습니까. 선거 때는 허리 굽히더니 이제 와선 나병환자 취급입니까.

뭘 잘했다고 현수막을 내걸어요. 서민들 허리 부러질 판인데, 차라리 “잘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붙이시오. 그래야 이번 중추절에 서민들 가슴에 온기라도 돌지 않겠습니까. 나라 곳간이 텅텅 비었다는데, 봉급이라도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늘어가는 실업, 자살, 임대, 폐업… 어쩔 겁니까. 쇠귀에 경 읽기라지만, 서민들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점퍼 입고 운동화 신고 소매 걷고, 뭐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좀 해보시오.

어느 인종문제 연구소에서 그러더이다.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민족이 한민족이라고. 꽤 이름난 학자가 말했답디다.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나쁜 습성은 호전성과 무조건적 복종이다.” 반만 년을 짱짱히 버틴 민족인데, 왜 이리 분탕질입니까. 도대체 뭘 하다 타짜들이 된 겁니까.

이참에 몇 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법, 법, 법! 그렇게 노래하더니 제대로 지키긴 하오? 엿장수 마음도 아니고, 이때 저때 다르니 집안 살림을 그렇게 합니까. 정말 ‘싸가지 없는 분들’ 아닙니까.

어이, 저건 또 뭐요. 뭘 그리 허리 굽혀 삽니까. 허리 펴고 시민 눈을 봐야지. 어시장 경매합니까. 윗전 눈치만 살피니 원 참. 아무렴, 잘 붙들고 있어야지. 비 와도 솟고 눈 와도 늘어나는 게 그 자리 아닙니까. 완장 찼을 땐 세상 흔들고 왕창 챙겨가려는 겁니까.

돈키: 호새야, 이제 다 쏟아냈냐? 바다 건너 백이·숙제도 괜히 고개 들었다가 고사리 뜯다 저승 갔어. 어여 밥이나 먹으러 가자.

호새: 기본소득금도 떨어졌는데 밥 살 돈은 있어요? 별산대놀이라는 게 결국 세상 향해 한마디 하는 거잖습니까. 저도 눈과 귀가 있으니 다 보고 듣습니다.
커피집은 코피 나고, 김밥집은 옆구리 터지고, 만두집은 속 터지고, 어물전은 파리 날리고, 빵집은 말라비틀어지고, 떡라면집은 팅팅 불어 터진다네요. 이거 어쩔 겁니까. 뭘 잘했다고 현수막을 걸어요. 철판 깔아야 타짜 되는 모양이군요.

돈키: 야, 인마! 말 같은 말 좀 하고 가자.
호새: 세상 사람들 이야기인데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

돈키: 그래도 이제 잘 할 거야. 나라 운영하는 타짜들인데 큰 생각은 하고 있겠지.

호새: 뭐라 하셨어요? 큰 생각이라고요? 말이 말을 들어도,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지금 하시는 거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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