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곡리 선사유적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비 오는데 어디 가요?
돈키: 비 오니 가는 거다. 한탄강 유역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주변을 둘러볼 거야.
호새: 거기까지는 멀잖아요?
돈키: 현생 인류가 케냐의 여인으로부터 시작됐다지. 아득한 세월을 건너 거기까지 왔는데, 그게 뭐가 멀어.
호새: 선사유적지가 여기저기 있는데 굳이 한탄강까지 가요?
돈키: 그곳에서 미군 병사 그렉 보웬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했어. 그 덕분에 고고학계의 기존 ‘<모비우스 학설>이 뒤집혔지. 전곡리 선사유적지가 그때부터 세상에 알려졌단다.
호새: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돈키: 그럼. 전기 구석기문화의 실존이 밝혀지면서 한반도 인류사가 수십만년으로 깊어졌어. 우리 역사 자긍심을 크게 높인 사건이지. 반만년 역사도 그 뿌리를 증명한 셈이고. 게다가 전국 곳곳 구석기 유적은 내몽골까지 이어지는 문화권과도 닿아 있어. ‘동북공정’으로 왜곡되는 만주 일대 고대사를 바로잡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되지.
호새: 저쪽에 구석기인들이 토끼몰이처럼 코끼리랑 코뿔소를 사냥하네요. 이곳에도 살았나 봐요?
돈키: 글쎄, 사료를 더 살펴봐야겠지.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 관람이 쉽지 않으니 오늘은 유적지 코스를 걸어보자.
호새: 비가 그쳐 풀빛이 산뜻하네요. 저거 집 아닌가요?
돈키: 이곳을 타임캡슐 이라 생각해봐. 수만 년 전 구석기인들의 삶이 저장된 공간이야. 옷, 먹거리, 집, 무덤…. 오늘날 모든 생활 원형이 여기서 비롯된 거지.
호새: 자연과 맞서기보다, 섬기며 사는 생명들 같아요.
돈키: 맞다. 그 경험이 수만 년 쌓여 내 몸 DNA에도 새겨져 있을 거다. 우리 민족은 북방계와 남방계의 혼합이라지. 그래서 이곳은 꼭 와봐야 해. 원시촌이자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는 곳이지. 사냥, 열매 채집, 아이들 교육…. 거기에도 질서가 있었다. 요즘 우리가 잃어가는 공동체 정신의 원형이야.
호새: 그러면, 저 구석기인들이 먹거리를 준비하듯 이 시대 지도자들도 국민과 젊은이들을 위해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고 있을까요?
돈키: 글쎄다. 옛말에 ‘내 배 곯아야 남의 배 곯는 줄 안다’ 했는데, 지금은 제 배만 채우는 것 같아 걱정이지.
호새: 매스컴 봐도 희망이 잘 안 보여요. 그나마 환한 얼굴이 위안인데, 요즘은 화난 얼굴만 보이잖아요.
돈키: 얼굴은 정신이 깃든 굴이야. 맑고 밝아야 하는데, 다들 기(氣)가 뒤틀려 어둡고 칙칙하다. 근심스럽구나. 배고프지? 뭐라도 먹자.
돈키: 구석기 아지매! 라면이랑 옥수수 좀 주시오.
호새: 어디서 왔어요?
돈키: 화성에서 두어 시간 걸려 왔습니다만, 사람이 별로 안 보이네요.
아지매: 코로나도 그렇고 장사가 안 돼요. 몇 해 전 이곳 왔을 땐 장사꾼이 1등, 다음이 공무원, 농부였는데…. 지금은 공무원이 왕, 농부가 그다음, 장사는 꼴찌요. 애들은 대학까지 마쳤는데 사는 게 더 힘들어졌네요.
호새: 아지매, 왜 이름이 한탄강이에요?
아지매: 글쎄, 사는 게 고단하니 ‘한탄(恨歎)강’이라 하나!.
호새: 주인님, 정말 그래서 한탄강인가요?
돈키: 글쎄. 원래는 큰 여울이 많아 대탄강(大灘江)이라 불렀고, 한자 표기로 한탄강(漢灘江)이 됐지. 하지만 이 강에는 애환도 많다. 6·25 격전지였으니 피와 눈물이 흐른 곳이지. 왕건에게 쫓긴 궁예의 비명, 이 근처에 묻힌 경순왕의 눈물도 담았을 거다. 그래서 ‘한탄강(恨歎江)’이라 불러도 낯설지 않지.
돈키: 바람이 전하는 말이 있다지.
“한탄강에 오시라. 인생의 큰 바다도 환히 건너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