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5 (월)

오피니언

<한반도소나타22>-팔달문

화성대문을 열다


화성대문을 열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팔달문은 화성의 남문이라 들었습니다. 동란의 참화에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네요.
돈키: 그래. 옛사람들은 “남문은 남아 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서문은 서 있고, 동문은 도망갔다” 하며 우스갯소리가 전해오지. 그 말 속에 세월의 격랑을 견뎌낸 문들의 운명이 깃들어 있어..

호새: 오늘은 창룡문 아래에서 윤규섭 선생의 해설을 들었다지요?
돈키: 그래. 화성의 역사와 사연을 품은 말씀에 귀 기울이다 보니 정오를 넘겼다네. 지동시장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에 반주를 곁들이니, 가벼운 취기에 마음마저 느슨해져 흘러가는 강물 같더구나.

호새: 시장통 정조대왕 좌상 앞 ‘불취무귀(不醉無歸)’라는 글귀가 더욱 깊게 다가왔겠아요.
돈키: 그래,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말라.” 축성의 고단함을 위로한 임금의 말씀이지. 그 속에는 백성을 편안케 하지 못한 자책 또한 스며 있네. 왕의 무거운 심회를 술 한 잔 속에 녹여낸 것이야.

호새: 서장대 북소리를 상상하니 옛 군례의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돈키: 둥둥, 북소리에 가슴이 뛰네.나도 문 안으로 들어서며, 시공을 거슬러 이백 년 전 정조시대에 발을 딛는 듯해.

호새: 팔달문이라 이름한 연유는 있나요?
돈키: 여덟 팔(八), 통달할 달(達), 문(門). 사통팔달의 길이 열렸음을 뜻한다지. 본디 팔달산은 탑산이라 불렸다 해, 산세가 탑과 같아 사방이 트이고 교통이 발달한 연유라니 참으로 시원한 이름이야.

호새: 오늘날 세상은 그 사통팔달의 기운을 잃은 듯합니다. 소통은 막히고, 걸음은 종종거림에 불과하니 답답하네요.
돈키: 진정한 건달(乾達), 큰 도량과 기상을 지닌 이가 드물어 세상은 갈피를 잃고 있어.

호새: 선생님의 걸음마다 지난 기억들이 생생하겠어요.
돈키: 맞아. 저기 옛 중앙극장 자리, 중학교 시절 영화 벤허를 단체 관람하던 날이 새롭고, 로데오거리 공원다방은 젊은 날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기로 약속한 뜻깊은 곳이지.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네.

호새: 그러니 팔달문은 선생님께 행복의 문이자 애뜻힌 문이기도 하겠군요.
돈키: 삶은 아직 미완성이라. 갈 길은 멀고, 세월이 무겁게 느껴지지. 남은 것은 오직 다짐과 정진뿐이야. 함께 살아온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팔달산만큼이나 크단다.

호새: 이제 알겠습니다. 팔달문은 단순한 성곽의 남문이 아니라, 선생님의 인생문이자 세월의 대문이겠어요.
돈키: 옳아. 화성의 대문, 팔달문은 곧 나와 우리의 문이지. 역사의 문, 삶의 문, 그리고 다시 열어야 할 내일의 문이라고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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