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4 (일)

오피니언

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399

대한국민에게 고함


대한국민에게 고함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늘 아내와의 약속대로 독산으로 아침길을 나섰다. 발밑에 채이는 나무뿌리와 코끝에 스미는 솔향이 함께 어우러져 산뜻하다.
산책을 하다 보면 헐렁한 몸짓에 소소한 생각들이 이어져, 감각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가 맞닿는 순간이 있다. 평소 풀리지 않던 고민이 번뜩이는 영감으로 풀리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걷다 보니 정치권의 장면이 떠오른다. 어제 본 야당 전당대회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단상 위에서 열정을 토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사는 집단이 사회다. 생존을 위한 먹거리 해결과 갈등의 조정은 정치의 본령이다. 정부에 권한을 위임하고, 정치인은 정당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남용을 막기위해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 견제와 균형은 국민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기적 같은 변화를 경험했다. 왕조에서 제국으로, 식민지에서 독립국가로, 빈곤에서 경제부국으로. ‘한강의 기적’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언제나 그늘을 핑계 삼아 새로운 갈등의 나이테를 만들었다. 갈등 자체야 사회의 숙명이라지만, 지금의 정쟁은 도를 넘었다. 어린 시절의 윗마을·아랫마을 눈싸움이나 운동회의 청백전이야 웃고 끝나지만, 지금의 도를 넘어선 여권의 독주와 야권의 편싸움은 국민을 지치게 한다.

정치는 결국 ‘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인은 바람 따라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개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구호와 말재주보다 중요한 것은 눈 위에 남는 뚜렷한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이 길게 이어져야 신뢰가 쌓이고, 품위 있는 정치가로 우뚝 설 수 있다.

우리 정치사에 진정한 정치가는 몇이나 되는가? 백과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많아도, 국민이 마음으로 우러르는 이는 드물다. 정치꾼, 정치인, 정치가―품격의 차이다. 지금 진행 중인 야당의 전당대회는 단순한 당대표 선출이 아니다. 여야를 넘어, G10 경제위상에 걸맞은 정치가를 세워야 할 역사적 시험대다.

국부를 세 번이나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정치권이다. 그 자리에 가담했거나 방관한 이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정치활동을 했을까? ‘당대표’라는 자리는 중요하다. 그 자리에 서는 인물이 ‘정치가의 표상’으로 어울리는가, 국민이 존중할 수있는가는 더욱 중요하다.

지금 정치권을 향한 민심은 엄혹하다. “임대”라는 글자가 빈 건물에만 붙는 게 아니다. “수입”이라는 말이 물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권과 야권 모두 새겨야 할 말이다. 부모 세대는 못 배워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식을 건강한 국민으로 키워냈다. 국민은 멋대로 휘두를 군중이 아니라, 설득하고 타협해야 할 주권자다.

야권은 스스로 묻자. 그대들에게 진정 용기와 결단이 있는가? 소잃은 외양간 혁신에 양복에 구두 차림이 왠 말인가? 국민은 보여주기를 원치 않는다. 진짜 행동, 진짜 실천을 원한다.

역사를 돌아보라. 피히테, 링컨, 마틴 루터 킹, 처칠 등 시대의 거인들은 철학자이자 정치가, 성직자이자 지도자로 국민에게 울림을 주었다.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도 그런 울림이다. 여권은 품격 있는 힘을, 야권은 생사를 건 혁신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말잔치가 아닌, 행동하는 정치인을 원한다. 태풍은 파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강력한 에너지다. “정치는 다 그런 거야”라는 체념을 떨쳐내고, 다시금 함께 뭉쳐야 할 때다.

국민은 기다린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할 정치가의 탄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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