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구지천변 기행16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입추가 지나서일까. 아침 공기가 한결 서늘하다.
여름의 기세와 가을의 숨결이 맞물린 경계에서, 스물네 절기의 한마디가 왜 그리 지혜로운지 새삼 깨닫는다.
휴일마다 오르던 산행을 잠시 접고, 이른 아침 평생지기와 천변 둑방길을 천천히 달린다. 이미 이 길 위에는 하루를 앞당겨 시작한 발걸음들이 지나갔다. 다릿발 아래 족구장에선 청년들이 날렵한 몸짓으로 공을 차며 기합과 웃음을 터뜨린다. 그 소리에 풀꽃들이 깜짝 놀라, 밤새 맺었던 이슬을 털어내는 듯하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냇물 위로는 청둥오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작은 새들도 나뭇가지에 포롱포롱 날아오르고, 째재재 지저귀며 저마다의 아침을 연다. 길가 무성한 풀잎들은 예초기의 날에 잘려 바닥에 누웠다. 풀향이 아침 공기에 번져 숨결마저 상쾌하다.
보폭은 고르게, 팔은 앞뒤로 부드럽게 흔들며, 약간 기울인 상체로 달린다. 들숨과 날숨이 귓가를 스치고, 온몸이 천천히 깨어난다. 오직 아침 향기와 나만이 있는 둑방길. 오감이 이 길과 하나로 섞여 자연이 된다. 너는 너, 나는 나 경계를 지우지 않아 이미 걷는 사람도 달리는 이도 자연의 일부인게다.
오가며 나눈 몇 마디 말마저 풀꽃이 되어 흐른다. 집 앞에 다다르니 물살에 몸을 맡긴 오리 떼가 보인다. 그중 한 마리가 잠수하듯 물속으로 자맥질한다.
“좋네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아침에 달리면 좋겠어요.” 아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그럴까. 그럼 일찍 자고 일어나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