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7 (토)

오피니언

화성에서 띄우는 편지(5월 17일)

날 보러 와요

 

날 보러 와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외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울적할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서러움을 잊고 웃어보아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방긋한 웃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율동이 생각난다. 한편,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꽃”을 비유한 ‘나’의 성찰을 낳는 시 구절이다. ‘너’가 ‘나”요 ‘내’가 ‘너’인거다. 늘이면 ‘나’는 ‘우리’로 깊어가니 자연이며 우주인게다. 살피면 키워드는 믿음과 소망을 품은 이 세상에 제일인 ‘너와 나’의 ‘사랑’이다.

 

요즘 돌아가는 대선정국에 세간의 전언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진즉 길 떠난 야권은 포장된 상품이 ‘가시는 걸음마다’ 순행(?)인가? 여권은 와글와글 할 장터에 채 보부상들을 틀어 쥔 기존 거상들이 존재감(?) 탓에 긴 채비를 한다 싶다.

 

이어달리기 바톤을 넘긴 러너들이다. “날 보러 와요” 손짓하니 가야 할게다. “~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애타게 부르니 응답할게다.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달려라 냇물아, 괴로움 다 잊으시고, 우러러 볼수록”, 누군들 부르지 않았으리! 그 기본은 ‘수신’의 가르침이다. 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 받침은 무엇보다도 ‘가화만사성’인게다. 이어달리기 예비 런너로 한동안 세상을 향해 제소리한 분들이지 않은가? 보러 오라니 가고, 불러 달라니 목메어 부른게다. 집안 형편을 살필 일이다.

 

어버이, 스승님 처럼 존재감은 헌신과 희생에서 가치를 발한다. 보러 가고 부르니 응답하라. 심모원려에 못지 않은 경계에 선 찰나의 결단이 필요하다. ‘혼돈’은 ‘코스모스’ 전주곡이다.

그 옛적 노랫말이 떠오른다.

“뉘우치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 때는 늦으리 때는 늦으리”

 

5월 산야에는 “홀로 우는 새” 보다는 뻐꾸기, 꾀꼬리, 꿩, …제 울음이 제멋이다. ‘하르르’ 오월에 이은 ‘푸르르’’ 유월에 꽃피울 꼿꼿한 암행어사 울림이

‘coming so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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