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러 와요ㅡ천변기행 25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후나절, 아파트 한켠에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빈 화분들이 사람의 손길을 만나 다시 숨을 얻었다. 봉사단과 주민들이 함께 흙을 고르고 꽃을 심자 금세 울긋불긋 제 얼굴을 드러낸다. 그 풍경을 바라보니 문득, “외로울 땐 나를 보러 와요, 울적할 땐 나를 보러 와요” 어느 여가수의 환한 미소와 함께 흘러나오던 노랫말이 마음에 스민다. 천변에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발걸음을 붙잡는다. 잠시 멈춰 바라보니, 꽃 앞에서 사람의 시간도 비로소 느려진다. 꽃이 제때 제 모습으로 피어나듯 사람 또한 그러한 존재일까?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 그 모든 시간이 모여 하나의 향기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은 존재를 꽃으로 피워내는 일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중에서, 김춘수 며칠 전 선산에서 꺾어온 앵두꽃이 거실 한켠에서 은은한 향을 건넨다. 그 시절의 노랫말 한 구절이 잊고 있던 청춘을 살며시 흔들어 깨운다. 오늘 하루, 발길 닿는 곳마다 꽃을 만나
다리를 건너며-천변기행 24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번잡했던 한 주의 흐름이 멎은 휴일, 몸과 마음이 한결 느슨해진다. 활짝 핀 천변의 개나리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뚝방길을 따라 사십여 분을 걷자, 화성에서 오산으로 건너는 세마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도가 없는 탓에 좁다란 난간을 더듬듯 건넌다. 매번 걷던 산책길의 반대편, 낯선 길이 오히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한다. 황구지천은 국가준용하천답게 널따란 모래톱을 품고, 물길은 유연하게 굽어 흐른다.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버드나무들이 천변의 운치를 더하지만, 가시박 덩굴에 뒤덮인 나무들은 숨을 쉬지 못한 채 서서히 말라간다. 자연과 어우러진 이 풍경이야말로 하나의 공원일 터, 제철을 맞은 개나리조차 제 빛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이 못내 아쉽다. 이곳에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때다. 그 생각을 품은 채 걷다 보니, 동탄에서 안녕리 들판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다리를 만난다. 광교산에서 서해까지 이어지는 물길 위에는 수십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양편을 이어주는 단순한 구조물이라기보다, 삶과 삶을 잇는 통로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문득 다리는 기억을 건너게 하는 장치처럼 다가온다. 어느 소설 속 징검다리 위
문학회 스케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홀릭 큐브 해례>의 마침표만을 남긴 채 [문학과 비평] 문인들의 잔치가 열리는 화성박물관 강당으로 향한다. 봄이 먼저 와 있었다. 매화와 앵두, 개나리와 목련이 저마다의 빛으로 피어나 마치 봄처녀의 미소처럼 마음을 스쳐간다. 산자락과 서호, 수원천변에는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도시는 조용히 들떠 있다. 지난 한 해, 천둥과 번개를 지나 서리 맞은 마음들이 겨우내 발효되어 오늘, 비로소 세상에 놓인다. 대상, 작가상, 신인상… 이름은 다르나 모두 한 계절을 통과한 삶의 결실들이다. 박씨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 <흥부전>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꿈, <돈키호테> 청새치와 맞섰던 의지, <노인과 바다> 성냥불 속에 담긴 온기, <성냥팔이 소녀> 별과 우주를 향한 시선, <코스모스> ….. 우리 눈.귀에 익은 이야기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인간의 도리와 용기, 양심과 존재의 의미를 조용히 일깨운다. 글은 결국 내 안의 나를 오래 공들여 담금질한 하나의 보석이다. 작게는 나를 밝히고 이웃으로 번져 마침내는 지구촌의 심장과 어딘가에서 공명할 것이다. 바야흐로 AI
홀릭큐브 해례(解例)-홀릭큐브12 ㅡ구조·언어·놀이의 통합적 생성 원리ㅡ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AI시대흐름에 맞춤 발명품(발명가 박경화), 홀릭큐브에 홀려서 11회 연재한 글(편지434-445)을 바탕하여 거창한(?) 글제를 달아 논문 형태로 정리했다. 근일내 참고문헌과 혜례용례 도표를 첨부해 논지를 심화시켜 교육정책과 여러분야 실용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연구배경> 기존 연구들은 블록 놀이의 인지 발달 효과, 블록 기반 프로그래밍 언어, 구조주의적 의미 생성 등을 각각 개별적으로 다루어 왔다. 그러나 구조적 놀이를 언어 생성 체계 및 의미 생성 모델로 통합적으로 설명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공백을 보완하고자 한다. 1. 연구 목적 본 연구는 ‘홀릭큐브(Holic Cube)’를 단순한 조립 놀이가 아닌, 구조적 사고 도구, 언어 생성 모형, 창의적 교육 매체로 재정의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한다. -왜 인간은 ‘놀이’를 통해 구조를 이해하는가? -블록, 핀, 홀의 결합은 언어와 사고 생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2. 이론적 배경 (1) 구조주의 관점 의미는 개별 요소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
홀릭큐브, 봄을 만지다-홀릭큐브11 시인·우호태 겨울이 물러난 자리마다 조용히 숨이 돌아오고 얼어 있던 땅속에서 이름 없는 것들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홀릭큐브여, 너의 작은 구멍들 속으로 봄빛이 스며든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피어날 자리를 품고 있는 따뜻한 틈 열두 개의 숨결은 열두 번의 계절을 불러 먼저 핀 매화의 떨림과 노란 개나리의 웃음과 목련의 하얀 침묵까지 가만히 이어 놓는다 모서리마다 흐르는 선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살며시 기대어 가지가 바람을 배우듯 물길이 낮은 곳을 찾듯 그렇게 이어진다 작은 핀 하나에도 인연이 깃들어 꽃과 벌이 만나고 바람이 씨앗을 안고 어디론가 흘러간다 어지러워 보이던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는 순간 비로소 알게 된다 봄은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계절이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 있던 나를, 세상을, 조용히 밝혀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홀릭큐브여, 너를 손에 쥐는 일은 작은 우주를 만지며 내 안의 봄을 깨우는 한 번의 숨 같은 일이다
홀릭해례본-홀릭큐브10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세상의 모든 구조는 보이는 결과 이전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그 가능성은 아직 선택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며, 그 자리를 우리는 ‘홀(Hole)’이라 부른다. 홀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열려 있음이며, 구조가 태어나기 전의 자리다. 이 가능성은 어느 순간 관계를 만나게 된다. 관계는 두 요소를 연결하며 흐름을 만들고 방향을 만든다. 이 작용을 우리는 ‘핀(Pin)’이라 한다. 핀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작용과 상호작용이며, 구조를 향해 나아가는 힘이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는 마침내 하나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 결과를 ‘큐브(Cube)’라 한다. 큐브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관계가 쌓여 드러난 구조이며,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 상태다. 이로써 홀과 핀과 큐브는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을 이루게 된다. 가능성은 열리고, 관계는 이어지며, 구조는 드러난다. 이러한 구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선형 구조다. 이는 시작을 의미하며,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이 흐름이 꺾이는 순간 방향이 생기고 변화가 시작된다. 방향이 길어지면 과정과 거리의 의미
동서양 사상과 인물, 구조로읽다-홀릭큐브9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구조를 발견한 사람들. 세상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안의 질서를 읽어낸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어떤 이는 자연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을 읽었고, 어떤 이는 인간의 소리 속에서 질서와 구조를 발견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을 관계로 이해하려 했다. 이들은 시대와 지역은 달랐지만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품고 있었다.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동양에 관계와 흐름을 본 사람들이다. 조선의 세종대왕은 소리라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구조로 풀어낸 인물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자음과 모음의 결합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소리를 ‘만들 수 있는 구조’로 바꾸어 놓았다. 이는 곧 가능성(홀) → 결합(핀) → 음절(큐브)의 과정과 닮아 있다. 장영실은 자연의 흐름을 기계로 구현한 인물이다. 물의 흐름, 시간의 흐름을 장치로 재현하며 보이지 않던 관계를 눈앞에 드러냈다. 이는 관계(핀)를 통해 구조(큐브)를 실현한 사례다. 최한기는 세상을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기(氣)’의 흐름으로 이해했다. 이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이며, 홀(가능성)과 핀(관계)의 연속적 작용으
우리는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홀릭큐브8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현대 과학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어 놓았다. 특히 양자역학은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가능성과 관계의 상태로 설명한다. 입자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여러 가능성 속에 존재하다가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결과로 드러난다. 또한 물리학 전반에서도 힘과 에너지는 관계를 통해 전달된다. 세계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관계의 네트워크다. 이러한 변화는 과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바로 인공지능 시대다 AI는 이미 문장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식의 생산과 처리라는 영역에서 인간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AI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그 결과를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지는 않는다. AI는 패턴을 학습하지만, 그 패턴을 넘어서는 방향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관계를 정의하고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우리는 더 이상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
모든 움직임에는 구조가 있다-홀릭큐브7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구조는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권도의 동작을 떠올려 보자. 태권도의 품새는 단순한 동작의 나열이 아니다. 방향, 균형, 중심, 흐름이 정교하게 연결된 구조다. 한 동작이 다음 동작과 이어지며 전체 흐름을 만들어낸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개별 선수의 능력보다 패스와 위치,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 관계가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음악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 하나의 음은 의미를 가지기 어렵지만, 리듬으로 연결되고 화성으로 쌓일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수학 또한 예외가 아니다. 숫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패턴과 관계의 표현이며, 공식은 구조를 압축한 언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들은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원리를 가진다. 움직임 → 연결 → 구조 이 흐름은 몸, 예술, 학문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잘한다’고 말하는 순간은 대개 구조를 이해하고 있을 때다. 반대로 어려움을 느낄 때는 구조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이 구조를 어떻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영역
보이지 않는 것을 구조로 만든다는 것-홀릭큐브6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인류의 역사 속에는 보이지 않는 원리를 눈에 보이게 만든 결정적 순간이 있다. 바로 우리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다. 소리라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구조로 풀어낸 체계다. 자음은 발성기관의 형태를 본떴고, 모음은 천지인의 원리를 담았다. 이 둘이 결합하면서 소리는 질서를 얻고, 의미를 전달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보이지 않던 것이 구조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관계, 과정, 구조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시도가 등장한다. 공간과 관계를 구조로 드러내는 방법 홀릭큐브는 바로 그 시도 가운데 하나다. 한글이 소리를 구조화했다면, 홀릭큐브는 공간과 관계를 구조화한다. 이는 단순한 도구의 차이가 아니다. 표현의 도구에서 구성의 도구로의 전환이다 우리는 이제 생각을 말하는 단계를 넘어 생각을 만들어가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구조적 사고는 특정 분야에만 머무는 것일까? 다음 글에서는 이 원리가 몸과 예술, 수학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