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의 소풍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예정된 서울, 지방나들이를 접고 수원행이다. 화성지역을 비롯해 전국토를 순행한 경험이 있어, 영협 후배의 권유로 수원.화성 걷기운동본부(회장 박세호)가 주최하는 ‘화성둘레길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기행수필 <화성소나타>, <한반도소나타>를 쓰느라 20여회 이상 성곽길을 돌았기에 반가움이 앞서 휘이익 돌았나싶다. ‘비정비팔 흉허복실(非丁非八 胸虛腹實)’ 활쏘는 자세를 단련하는 장소인 연무대에 도착해 눈에 띄는 환한 지인들과 밝은 정월의 인사다. 트래킹은 오감을 통한 몸울림하는 시간으로 들날숨이 일어 천기, 지기가 어울려 인기(몸 기운)의 순환을 가져와 자연스런 야외 소풍인게다. 오랫만에 성곽길을 따라 걸으니 이른 봄(?) 기운이 스민다. 대열에 어울려 걸으니 이내 옛스런 서체 현판의 ‘방화수류정(동북각루)’로 남쪽으론 “서방님 따라서”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가는 수양.능수.왕버들이 휘늘어진 수원팔경 중 제3경관인 ‘남제장류(南堤長柳)’요, 비단구두 사가지고 올 서울 간 ‘오빠 생각’이 절로 나는 장소다. 성벽너머에는 연인의 가슴, 두눈, 술잔, 연못, 하늘 등 10개의 달이 뜬다는 ‘용연(龍淵)’이라 상상
합리적 의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합리적 의심’은 “형사사건에서 유죄 평결을 확보하기 위해 검찰측 증거가 넘어서야 하는 최고의 기준선을 말한다”로 정의할 수 있으니 무죄추정의 원칙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이며, 확장하면 피고인은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간주됨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 체계이며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은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기에 그 권한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면 국가 체계의 근간을 흔들어 나라의 안보와 국민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작금의 탄핵정국 사태가 이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음이다. 대통령제 중심 체계에서 많은 헌법기관이 존재함은 국가안녕과 번영,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므로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그 체계와 권한을 부정하는 행위이기에 매우 위험한 사태를 초래한다. 일반인의 사건진행도 동기, 목적, 절차, 결과 등에 공정성과 합법성이 전제되는 바, 고도의 통치행위를 하는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 지위 보호와 권한 행사에 대한 법률적 접근은 매우 정밀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에대한 부실로 인해 국가 체계가 흔들리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다.. 학계와 심지어 법조계에서 지적하듯, 여러 부문에 드러낸 정당성이 결여된 절차와
<효도 지팡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전나절, 약속된 만남을 위해 서울행이다. 추운 날씨에도 어른들이 시청 지하철 계단을 오른다. 밖으로 나가니 시청앞 대한문 광장에 “동방의 … 태극기 휘날리며… 자유대한 나의 조국…”, 조국찬가(양명문작사 김동진 작곡)의 노래가 서늘하게 들린다. 허한 배를 채우려 좁은 공간의 국수집에 들어서니 대여섯 팀이 따스한 국수를 들고 있다. 앞 좌석 어르신의 ‘효도지팡이’에로 눈길이다. 아마도 자녀나 손자가 당신 몸을 위해 사주셨을텐데, 식탁에 놓인 깃발을 보니 지팡이 집고 작금의 나라 걱정에 맘이라도 보태려 친구분들과 함께 오신게다. 헌정 질서와 공정이 흐트러진 사법부 위중한 사태로 자유민주체제 붕괴를 우려해 종교계와 학계, 구국 인사들이 피토하는 큰 울림말 가까이에로 발길이다. 유구한 자유대한이 붕괴되어 간다는 어느 연사의 절규를 듣자니 그 ‘설마’하던게 현실이 되었다싶다. 동족상잔의 피어린 곳이요, 실향민의 한맺힌 <피어린 육백리>가 언뜻 생각난다. 내 젊은 날의 군복무 장소일지니 이 어찌 통탄치 않으리오. 코리아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드높인 88올림픽에서 코리아나가 부른 노래, 얼마 전 이 광화문 광장에
넌 언제 철 들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근동의 고모댁, 외가댁 어른들을 찾아 뵈니 지난 추석명절 때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일을 깜빡하시고 말씀들도 한층 어눌해지셨다. 흐르는게 아니라 아예 날아가는 세월이다. 총총 걸음하던 어린시절부터 터벅터벅에 이른 여섯마디에 담은 시간배열이 일순간 휘리릭이다. 앞으로 앞으로만 치닫는 바쁜 일상에 과거로의 시배열 순환을 가져오는 명절은 지친 삶에 힐링이요 명상의 시간이다. 외가댁에서 머물던 청년시절, 문풍지 떠는 한겨울밤에, 군불 땐 사랑방 아랫목에서 데우던 등허리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후나절 눈덮힌 천변길에 나섰다. 어느 님이 만드셨나? 눈사람이 공원내 벤치에 홀로 있다. 거무튀튀한 요즘의 험한 말을 “꾸짖는 눈사내가 어쩐지 맘에 들어” 곁에 앉아 한컷 한 후, 순백의 산책길에 주욱 발자국을 내어간다. 최근에 들어 가난한 마음 탓일까? 좌우를 둘러보니 황구지천가에 무리진 오리들이 흘깃흘깃한다. 기러기, 까치, 비둘기 심지어 포르르 포르르 나는 참새들조차도 흐트린 발자국들을 꾸짖나도 싶다. 앞서 달려나간 네바퀴의 구른 자국이 선명한데 과연 어디로 갔을까? 멀리로 눈길을 내니 여의도, 한남동, …, 여러 곳에서
아, 눈물이 난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이른 설(구정) 차례를 아침나절 마친 후, 광화문으로 발길이다. 오후 햇살이 참 따사롭다. 긴긴 날을 가슴 태우는 애국시민을 위한 보답인가도 싶다. 오늘도 세종로에 모였다. 양심을 지키려 저마다 태극기를 들고 내 나라를 지키려 참 많이 모였다. 부산, 마산, 포항, 대전, 고창, 인천, 충주, 의정부, 용인, …, 수원, 화성 등 전국 각지에서 손에 손잡고 상경한 분들이다. 내 몸 주신 내 아비 어미보다도 대한민국과 대통령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국민들, 끝없이 도심에 늘어선 태극기 물결속에 간절한 외침, 무너지는 자유대한을 지키려 유사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니 맘이 슬프다. 진정으로 통탄할 일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 얼마나 고귀한 맹세인가? 고동치는 가슴에 오른 손을 얹어 스크린속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자유 대한을 지키려 강렬한 의지의 눈빛들이다. 자고로 “민심이 천심이다” 하였으니 굽어 살피는 하늘이 이나라를 지키려 백성의 양심을 깨워 모인게다. 제 양심의 발로로 외치나니 숭고한 애국심인게다. 수년간
하늘이시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서울나들이 탓에 심한 감기로 사흘동안 끙끙이다. 몸이 누우니 사방이 고요하다. 고요속에 찾아든 사유로 때 아닌 상상여행이다. 5년전, 긴 시간에 걸쳐 수술을 한지 얼마 후, 특별한 환상(?)을 경험한 바 있다. 인디언 추장,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링컨..., 등과의 만남이다. 특히나 가면속에서 아인슈타인과 수식을 풀어가는 ‘나’를 누워 있는 ‘나’(필자)가 바라보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며, 곁에서 그런 필자를 깨우는 아내에게 수식 마무리를 위해 “잠깐만”이라 했던 그 별난 경험을 상상한다. 오감과 지각이 어울려 일상에서 섭렵된 표층 의식이 깊숙히 저장되어 있다가 분별과 포만 의식이 사윈 탓에 떠올랐다 싶다. 선인들과 대화하는 ‘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아내에게 말하는 ‘나’, 모두 누워있는 ‘나’ 안에 잠재된 의식인게다. 존재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어느 철학자 주장에 기대어 존재자적 사고틀을 벗어나 존재론적 사유나 불가의 십의식을 말하려 함도 아니다. 이를 끄집어 낸 이유는 이즘 진행되는 위중한 사태가 나라의 존망에 상관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중심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끌한 떼법이 웬말인가? 땅땅땅!
황구지천변기행13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한해가 저문다. ‘치자의야(治者意也)’를 새김질하며 번잡한 일들을 미지의 수, X로 대체해 배낭에 넣어 천변산책이다. 정남면 용수교 아래 체육공원에서 양감면 수직교에 이르는 왕복8키로여미터의 천변길로 집근처 송산교에서 4키로미터여 떨어진 곳에서의 출발이다. 둑방길 왼편에는 정남면 용수리, 금복리, 제기리 뜰이 이어가며 그 언저리엔 화성-평택간 고속도로가 뻗어가고, 오른편에 괘랑리, 발산리, 계향리, 귀래리 뜰이 펼쳐져있다. 나름 복장을 단단히 채비하고 나선지라 느슨한 발길과 눈길에 든 사방이 한가롭다. 공놀이 하는 서너명의 청소년들과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 자녀와 한적한 휴일의 편안함을 즐기는 중년 가장, 천내의 천둥오리들을 배경으로 우드볼놀이에 열중인 여섯분 노인들이 체육공원의 겨울을 덥히고 있다. 고즈넉한 길에서 누군가와 마주침은 나름 생각하는 ‘나’를 깨우곤 한다. 따르르 지나치는 자전거, 웃통벗은 채 달려나가는 마라토너, 바사삭 마른 억새풀, 돌아갈 여정을 위해 무리져 나는 기러기떼, 높이 솟은 미류나무 우듬지에 까치 힌마리 등 텅빈 들판에 어울린 천변의 풍경이다. 점점이 걸어가는 겨울나그네의 모습도 둑방길
동탄에서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시청역 밖으로 나서니 인산인해다.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경복궁 앞에서 돌아섰다. 후손들에게 건강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주말집회에 지방에서도 참여했다. 사회단체, 종교단체, 각군 구국동지회, …, 법없이 살아오셨고 남은 여생도 그리 살아가실 어른들까지도 험한 나라 꼴에 정말 많이들 오셨다. 양아치 보다 못한 악동에게 “犬만도 못한 놈”이라며 야단치시던 동네 어른들이 전국에서 모이신게다. 불과 70여년전의 일이다. 어머니! 성아, 아부지, …등 목메여 부른 그 아픔 어찌 되풀이하랴! 삭풍 몰아친 모진 오랜 세월을 버텨오셨기에 어수선한 시국에 올바른 여론 형성에 힘을 보태려함이다. 때 아닌 헌법 공부하시느라 큼지막하게 글씨도 써오셨다. 견공(犬公)도 개판 세상이 너무나 한심스러워 ‘구국구호’ 포대를 두른 채 동참했다. 시청광장을 비롯해 세종대왕동상과 이순신동상 주변의 뜨거운 열기로 한겨울 드센 한기와 완장부대의 탁기도 풀이 죽었나도 싶다. 간절히 호소하는 단상의 연사들과 마중하는 시민들이 일체를 이루는 게 무엇인가? 나라꼴이 이대론 안된다 인게다. 제맘대로 무정부 상태로 끌어가는 무법천지니 말이다. 뻥튀긴 강냉이야 한겨울에 심심풀
즐거운 놀이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교육이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자 수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그 대상은 학생인게다. 하니 학생에겐 이웃과 어울릴 인성과 옳고 그름의 판단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게 공부인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선천적 품성을 바탕해 제때에 제모습을 피워낼 수 있도록 호기심을 돋워 제길로 안내하는 것이 교육이요 이를 따름이 공부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 학습으로 차오르는 기쁨이 작은 행복일지니 당연히 배움터 학교는 즐거운 놀이터 인게다. 어울릴 친구가 있고, 호기심을 돋워 줄 선생님과 실제화해 줄 시설이 있기에 아침 발길을 설레게 하는 공간이면 좋겠다. 경기미래교육, 자율.균형.미래 기둥아래 펼친 7개 분야 주요정책에 대한 해당부서의 업무성과 보고와 전문가들의 토의 및 평가로 진행된 2024년 경기교육정책 성과 보고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제도는 개선이요 의식은 개혁이란다. 오랜 관성이 쉬이 변할까만 나름 큰 성과가 눈에 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교육이 난제를 해결할 좋은 방편이란 인식과 학교교육에 보태어 지역공유학교 나아가 시대흐름인 온라인 교육이 경기미래교육에 어울린 성과요
‘나’를 찾아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오랫만에 충주행이다. 아내와 함께 구순을 넘어선 장인을 찾아뵙는 날이다. 유튜브에 강연이 살가운 분위기로 진행중이다. <나는 누구인가?>, 십여년전 글제와 어울려 삼복더위에 온밤을 지새우며 국토를 순행한 날들이 있었기에 귀가 열렸다. 걷는 동안 사방의 적막속에 찾아든 내면의 적요, 그때 찾은 ‘나’가 있었기에 강연의 주제가 흥미롭다. 어린시절엔 잃어버린 ‘구슬’을 찾으려 장롱밑을 싸리가지로 꽤나 휘저었고, 강건너 ‘구슬’을 찾아온 <고양이와 개>의 동화에 푹 빠진 ‘나’가 있겠다. 그런 여린 필자와 달리 마르코는 <엄마찾아 삼만리>요, 30-40대였을 마르셀은 푸르스트는 ‘나’를 찾아 16년여간 집필했다니 ‘나’란 놈이 대체 무엇인가? ‘나’를 찾아 발자취 남긴 분들이 한둘이랴! 주지하는 바처럼 혜초, 바울, 석가, 공자, ... 등은 진리탐구 여정에서 ‘나’를 찾은 현자들이요 실천가들이다. 이순신, 양규, ….등 무수한 영웅들은 전쟁터에서, 안중근, 윤봉길, ..등 우국지사들은 나라가 처한 위중한 현실에서 ‘나’를 찾았다 싶다. 어디 이뿐이랴! 세종, 슈바이처,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