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짚모자-경부고속도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드디어 출발이네요, 돈키! 2016년 8월 13일, 오전 11시 30분… 그때 커피숍에서 선배님 제주 생활 이야기 듣고 훌쩍 나온 거죠?
돈키: 그래. 선배의 격려를 등 뒤에 두르고, 한 걸음… 두 걸음… 보무도 당당하게 수원·신갈IC로 향했지.
호새: 오늘은 밀짚모자 쓰셨네요? 도시 한복판에서 보기 쉽지 않은데요.
돈키: 햇볕을 가리기엔 그만이야. 그런데 묘하지? 밀짚모자만 보면 농부 아버지가 떠올라. 배바지에 지게 걸고 굽은 등으로 살아오신…
호새: 그러고 보니 중절모 쓰던 시대도 있었죠. 요즘은 야구모자에 영어 이니셜이 대세고요.
돈키: 그렇지. 만약 밀짚모자에 ‘다저스’, ‘타이거’, ‘트윈스’ 같은 이니셜을 박으면 어떤가 상상도 해보고 말야. 국제경기장에 밀짚모자 등장이라…
호새: 흰 고무신 대신 등산화, 배바지 대신 등산바지… 완전 변신하셨네요. “한여름의 밀짚모자 중년 나그네.”
돈키: 허허. 오늘 목표는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이야. 약 28km. 첫날이라 몸을 천천히 풀어야 하는데… 강행하는 걸로 했지.
호새: 청명역 지나서 흥덕교차로, 한화생명 연수원, 죽전 e마트… 여정이 길군요.
돈키: 활시위 떠난 화살처럼! 목표를 향해 쭉 뻗는다. 발걸음이 쉼 없이 전진해. 마음이 먼저 달려가대.
호새: 저기 육교를 건너 ‘이영 미술관’이 보이네요. 잠깐 쉬어가신 거죠?
돈키: 그늘이 마땅치 않아 바람길목에 앉아 간식으로 허기만 달랬지.
산등성이를 돌자—짜잔—경부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졌어. 시원하게!
호새: 역시 한반도의 대동맥! 수도권에서 영·호남까지 쭉 이어지는 길… 산업 동맥이죠.
돈키: 맞아. 전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묶은 교통망의 큰 줄기야.
1968년에 첫 삽 뜨고 1970년 완공됐지. 그땐 선산 훼손 문제, 예산 문제… 난관도 많았어.
호새: 그런데 결국은 산업근대화의 상징이 되었네요.
돈키: 그렇지. 경부고속도로 이후로 경인·중부·서해안·영동고속도로, 지하철, KTX… 대한민국을 반세기 만에 바뀐 나라로 만든 기반이지.
호새: 흥미로운 게, 초기엔 화물 수송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승용차들이 주륵주륵…
돈키: 폭염 속에도 상·하행선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리지.
나는 때때로 상상해. 대한 청년들이 이 사방으로 열린 교통망을 타고 일본, 중국, 유럽, 미주까지 자동차 트래킹 떠나는 모습 말이야.
호새: 정치권도 그 고속도로처럼 ‘뻥’ 뚫리면 좋을 텐데요…
돈키: 그러게나 말이다.
자, 이제 다시 속도 올려 한화생명 연수원 쪽으로 발걸음—전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