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띄우는 편지408>

  • 등록 2025.11.27 06: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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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듯


구름에 달 가듯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선다.
빛과 어둠이 서서히 맞바뀌는 이 계절, 또 한 해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생활일기이자 마음의 사초(史草)처럼 적어온 편지글은 어느덧 400여 회를 지나 500회를 향한다.
년초의 다짐에서 시작해 친목회, 동창.동문회, 강연회, 세미나와 박람회, 산행과 마라톤, 영화제와 대중집회까지….
그 모든 자리에 남긴 발자국은 곧 한 해를 살아낸 내 몸의 궤적이자 마음의 지도였다.

아이와 학생, 친구와 노인… 스쳐간 얼굴들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결을 이루었다.
2025년이라는 시간의 무늬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음을, 겨울밤 문득 멈춰선 채 되새겨본다.

굳이 분별하자면 의미를 나누는 일이 무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깊어가는 이 밤, 되돌아보니 마음 한 켠이 은근히 젖는다.
정국의 격랑 속에서도 나름의 호흡과 보폭으로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조용히 대견해진다.

십년 남짓 문인이라는 문패를 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적어온 글들.
<돈키호태유람>의 보정을 거쳐 <한반도소나타> 연재도 마무리했다.
이제는 화성에서 강릉까지 280킬로미터의 여정을 담은 <한반도횡단소나타>,
그리고 부산에서 강릉까지 500여 킬로미터의 기록을 품은 <한반도종단소나타>를 다시 다듬어 세상에 내어놓으려 한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두 눈과 두 귀, 두 발과 두 손, 그리고 한 입.
이 단순한 존재의 조건들이 모여 한 사람의 온전한 삶을 이루고,
그 덕에 세상사의 희노애락을 굽이굽이 체험하며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비록 ‘구름에 달 가듯이’ 유유한 나그네는 아닐지라도,
때때로 스쳐오는 동서양의 리듬과 춤사위가 눈길을 사로잡는 순간들.
그것마저 살아 있음의 기쁨이고, 지인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더욱 고마운 선물이다.

문상을 다녀오던 길, 동창이 전한 말도 오래 남는다.
‘식물인간’이라는 말이 잘못되었다는 그의 지적.
스스로의 방식으로 신진대사를 이어가는 식물에게 병과 무능의 의미를 덧씌우는 것은,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라 했다.

밤이 깊어진다.
서해를 끼고 출발해 온 국토를 돌며 동해에 이른 <한반도소나타>의 발자취.
그 뒤를 이어 화성에서 동해까지의 길을 새로 잇는 <한반도횡단소나타>의 보정 작업.
‘식물인간’이 아닌, 마음과 발이 향하는 자리마다 설 수 있는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새기며,
오늘 밤도 적막을 벗 삼아 한 줄의 글을 닫는다.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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