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453

  • 등록 2026.04.05 19: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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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기–의식의 귀환


멍때리기–의식의 귀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휴일이다.
시간이 잠시 나를 내려놓는 날.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다.
발걸음은 이유 없이, 그러나 정확히
팔달문으로 향한다.
봄은 방향을 알고 있는 듯하다.

 

로데오거리를 지나 행궁으로 이어지는 길,
사람들은 흐르고, 언어는 섞이고
표정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은 채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그 사이에 서서 점점 나를 잊는다.

 

행궁마당—
유모차의 속도,
킥보드의 리듬,
오토바이의 진동,
그리고
달고나의 달콤한 냄새,
솜사탕처럼 가벼운 웃음들.
모든 것이 살아 있는데 나는 잠시 멈춘다.

 

전통체험관 앞,
제기차기, 굴렁쇠, 사방치기, 투호—
아이들의 움직임이 시간의 오래된 결을 두드린다.
그때,
나는 멍해진다.
생각이 멈추고 판단이 사라지고
이름 붙일 필요 없는 세계가 열린다.
의식이 풀리는 순간, 나는 사라진다.

 

그리고—
부활절 리허설의 마이크소리.
청년들의 몸짓이 벚꽃처럼 흩어지고
공기는 보이지 않는 리듬으로 진동한다.
햇살은 더 깊어지고,
하늘 위 해를 향해
여객기 한 대가 빛을 가르며 지나간다.

 

그때,
아이의 손을 떠난 연—
두 날개를 편 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하늘로 올라간다.
나는 그 연을 따라 다시 나를 본다.
멍때림 속에서 흩어졌던 시간의 조각들,
잊고 있던 나의 얼굴들이 하나씩 돌아온다.

 

그 순간,
나는 안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끊어졌던 의식이 다시 이어지는 순간,
나는 다시 나로 살아난다.

 

돌아오는 길,
사람들의 행진 속에서
또 하나의 내가 걸어온다.
팔달산의 벚꽃은 말없이 흩날리고,
환한 얼굴들은 봄빛을 품은 채 지나간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조용히,
내 안의 꽃 하나
다시 피어난다.
비유티풀 선데이다.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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