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아, 내가 왔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 왔다…”
나훈아 가수가 목이 메어 부르던 노래가 귓가에 울리네요.
돈키:
그래. 봉이 김선달이 팔아먹은 줄 알았는지,
“700리 고향길을 찾았다”고 울먹이던 노래 말이지.
지금도 우리를 반겨줄까 모르겠다.
호새:
저 물줄기가 정말 대동강이에요?
돈키:
남포와 황해도를 지나 서해로 드는 강.
압록·두만·낙동·한강에 이은 다섯 번째 장강이라지.
낭림산맥 한태령에서 발원해 439킬로를 흘러가니
천 리 물길이 따로 없다.
호새:
강바람이 치마폭 날리는 건 아닐 텐데,
뭔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돈키:
대동강변을 따라 달려보고 싶어.
춘천마라톤 때 북한강변을 달리던 기억이 나서.
강변 달리기는 그 자체가 치유야.
내가 쌩쌩 달리면 스쳐가는 풍경이 하나의 영화처럼 이어지거든.
호새:
시인은 시를 써야지요. 뛰면 시상이 떠 오르겠어요?
돈키:
큰 강엔 큰 문인이 남긴 시화가 흐르지.
대동강을 읊은 시와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호새:
고려 인종 때 정지상(鄭知常)이 지은
그 절창도 이 강에서 나온 거라던데요.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돈키:
이별의 정운이 깃든 고향 들판이지.
‘남포’라는 시어도 굴원이『이소』에서 쓴 구절에 연원한다더라.
평범한 말 같지만, 제대로 발효된 시어란 그런 법이야.
호새:
서경별곡에도 대동강이 나온다던데요.
“질삼 뵈 버리시고 괴시란다 아즐가…”
뭔 말이에요?
돈키:
하던 일 다 팽개치고
사랑만 변치 않으면 세상 끝까지 따르겠다는 뜻이야.
옛 여인들은 순정이 깊었던 거지.
호새:
그 순정, 요즘은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던데요?
사랑은 변하는 거 아녜요?
돈키:
대감과 도령이 문제였지.
곱분이와 삼돌이 순정이 어디 변했겠냐?
갑돌이와 갑순이도 “뿐이래요~” 하지 않았어
호새:
부벽루는 정말 절경인가요?
돈키:
목은 이색, 매월당 김시습도 머물렀고
단원 김홍도도 그림에 담았지.
푸른 절벽 위의 누각을 그려봐라. 장관이지.
호새: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의 대사, 아직도 멋드러지구요.
순애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자 수일이 그러잖아요.
“놓아라!”
“그래,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리 좋았단 말이냐!”
그 목소리가 능라도까지 실려 가는 것 같아요.
돈키:
요즘 같으면 뭐라 할까?
“잘 있어요~ 잘 가세요~” 하겠지.
호새:
아뇨, “빠이빠이야~ ” 이럴걸요. 완전 쿨하게.
호새:
정치외교학 전공했다면 시대극으로 다시 써보죠?
남과 북을 주인공 삼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대신 다른 걸로 비틀어보구요.
돈키:
그건 성대모사 용수 달인이 적격이지.
유람도 페이스 조절이 생명이야.
초반에 오버하면 후반엔 ‘핵핵’거려. 알간?
호새:
‘핵’이요?……
아, 그 ‘핵’?
호새:
강변 풍광이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은 왜 눈물을 흘릴까요?
돈키:
강을 건너는 순간, 삶이 변하니까.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도 뱃사공을 원망하지 않던가?
흐르는 건 물만 아니야.
세월의 강, 고향의 강도 있으니
강가 버들이 흔들거리는 ‘남제장류(楠堤長柳)’ 풍경도 떠올리고.
서경은 지방이었잖아.
상경하느라, 떠나느라,
이별이 시제가 되는 거야.
아프니 시가 나오고, 그 정에 향우회를 만드는 거고.
묘청이 서경천도를 주장하며 개경파와 충돌했던 것도
그만큼 평양의 기상과 위세가 컸기 때문이지.
호새:
천도는 결국 세싸움이네요?
요즘은 서경파는 누구랑 손잡고, 누구랑 싸우나요?
지구촌에 소문난 잔치판이라는데 먹을 건 남아있겠죠?
돈키:
한눈 팔다 시비 걸리지 마라.
“야인시대” 평양박치기 알지?
레슬러인 김일 선수만 박치기 잘하는 게 아니야.
둘러보고만 와도 충분해.
호새:
평양 이야기도 천일야화네요.
돈키:
나·당 연합군과 일전을 벌인 평양성.
임진란에는 조선·명 연합군과 왜군이
전황을 뒤바꾼 곳이기도 하고.
해방 후엔 남북대표회의,
이산가족 상봉, 예술인 공연, 정상회담까지
몇 번이고 오간 도시지.
“평양(평안)감사도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생활 속에 스며 있는 것도
그만한 역사와 정서가 있어서야.
평양 공연에서 용필이 형이 ‘홀로 아리랑’ 부르던데
대동강물에 눈물 한 방울 얹지 않았을까?
호새:
대동강과 한강이 서해에서 만나듯
휴전선의 녹슨 기찻길도 언젠가는 달리겠죠?
돈키:
말도 오래 하면 실어(失語)를 하듯
나라 사이 왕래도 멈추면 굳어버려.
다시 움직이는 날이 와야지.
호새:
어쨋거나 평양이니 평양냉면 한 그릇 들고 갈까요?
돈키:
냉면 들고 박치기 막을 수 있겠냐?
호새:
저는 뒷발차기가 특기라니까요.
하면 할수록 느는 법이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