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화산이요
호새:
“호남, 호남” 하는데 잘생긴 남자란 말인가요? 호남이 무슨 말이래요?
돈키:
조선 말기에 비롯되었다는〈호남가>에 호남지방의 특색이 담겨 있어. 들어볼래?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光州) 고향(故鄕)을 보랴 하고
제주어선(濟州漁船)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갈 제
흥양(興陽)의 돋는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 있고 …
우리 호남(湖南)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백성(全州百姓)을 거나리고
장성(長城)을 멀리 쌓고 장수(長水)를 돌아들어
여산석(礪山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삼례(參禮)가 으뜸인가 거드렁거리누나.]
돈키:
지리적으로는 대략 금강 이남 지역을 말하지. 대관령 고개 동서로는 영동(관동)·영서(관서)로 나뉘고, 문경새재나 조령 이남 지방을 영남이라 부르잖아.
‘호남’이란 명칭은 기상예보나 정치권에서 쓰이는 지리 용어로, 생활어에 가깝다고 보면 돼.
호새:
고을마다 특색을 노래해서 그런지 호남분들 머리가 좋더라고요. 듣자니 막걸리 한 보시기 들이키고, 영산강 굽어보는 정자에 올라 부채 펴 들고 소리하는 선비 모습이 그려져요.
돈키:
삶이 풍경 속에 녹아 있으니 절로 흥이 돋아 몸이 돌아가지. 그게 우리가락의 멋이야. 판소리 두어 마당 곁들이면 제맛이 나지.
녹음방초(綠陰芳草)에 꾀꼬리 울어대는 호시절에 춘흥이 돋으면 절세가인이라도 눈에 찰까? 시 한 수 놓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지.
호새:
“꽃이 피면 화산이요, 잎이 피면 청산이라…” ‘강강술래’ 같은 남도민요는요?
돈키:
전라도를 중심으로 충청,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불리는 민요를 통칭해 남도민요라 하지.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밀양아리랑, 쾌지나칭칭나네… 흔히 듣던 노래들이야.
황해·평안 지방의 서도민요, 경기·서울 지역의 경기민요와 함께 3대 민요로 꼽히지. 여럿이 마당을 빙 둘러서 불러야 제격이야.
호새: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어 어부가 탄식을 하는디…” 수궁가 판소리는 뭐래요?
돈키:
“범 내려온다” 하더니 국악 공부 시작했네.
고수의 장단 가락과 추임새에 맞춰 소리꾼이 몸짓과 함께 부르는 연극이라 보면 돼.
둘러선 관객이 ‘판’이 되니까 그게 한몫이지.
충·효를 바탕으로 의리와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이 배어 있어.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완창하려면 서너 시간에서 길게는 예닐곱 시간까지 걸려. 득음의 경지에 이르려면 고된 수련이 필요하지.
호새:
‘서편제’에 나오잖아요. 눈까지 멀게 하며 소리의 골을 찾아가는 모습이나, 떠났던 동호가 누이와 소리를 어루며 소리 없는 강을 건너 해후하는 장면이 짠했어요.
사랑, 우애, 효, 꾀… 우리네 삶이 녹아 있으니 내 마음도 풀리더라고요.
오페라나 뮤지컬이 서양의 것이라면, 우리에겐 판소리와 창극이 있는 셈이죠. 희로애락을 표현하니 동서양이 다를 게 없어요.
호새:
‘적벽가’ 버전으로 소리 지망생들의 ‘대양가’도 나올라나요?
돈키:
호남지방에는 소쇄원, 면앙정, 환벽당, 송강정, 식영정 같은 이름난 정자들이 있거든.
정원의 풍광도 멋지지만, 그 주인공들의 삶과 어울린 시문이 곧 가사문학이야. 판소리의 연원도 거기서 비롯됐지.
교류하던 선비들의 글발이 사계절 자연의 골과 마루에 걸려 지금까지 이어지는 셈이야.
호새:
호남지방은 먹거리 릴레이를 하나 봐요. 남원추어탕, 보성녹차, 장성장뇌삼, 신안소금, 고창복분자, 임실치즈, 영광굴비… 꽤 많더라고요.
‘장수막걸리’는 장수(長壽)가 아니라 장수(長水)에서 나온 건가요?
돈키:
마한·백제의 역사와 유불사상의 깊은 골짜기에 근세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며, 한옥·소리·춤사위·비빔밥 같은 전통이 이어졌지.
요즘은 새만금 조성, 비엔날레, 정원박람회 같은 큰 행사들이 호남의 에너지를 돋우고 있어.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도 이제 KTX가 달리니, 한번 휘이 둘러봐야겠네.
호새:
‘호남가’에 등장한 곳을 다 들르나요?
돈키: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게 유람이지.
호남의 산·강·들·바다를 사람의 몸에 비유한 이도 있더군. 그만큼 조화롭다는 뜻이지.
글솜씨와 예술, 맛이 뛰어나 문향(文鄕)·예향(藝鄕)·미향(味鄕)이라 부르고, 의로움이 깊어 의향(義鄕)이라 하기도 해.
몇 군데만 들러도 호남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음식맛도 일품이니 꼭 가봐야지.
호새:
산수유가 배시시 웃음꽃 흘리는데 ‘사랑가’ 한 대목 듣자고요.
돈키:
“이 애야, 이리 와 봐라. 업고 놀자~”
호새: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