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불심(山靜佛心)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협천이라 하지 않고 합천이라 하네요?
황강이 합천을 가르며 낙동강에 합류한다면요?
돈키: 세 지역이 합쳐진 고장이라 하기도 하고,
한자음을 가차(假借)한 이름이라 보기도 해.
가야·백제·신라가 서로 교류하고, 때로는 싸우며
강을 따라 바다 건너 왜까지 이어진 길목이지.
특히 5~7세기 신라의 융성과 가야의 쇠락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 무대야.
호새: 고대의 왕들도
요즘 통치자들처럼 강이나 바다를 건너
큰일을 벌였던 모양이에요. –휘릭
호새: 장경각에 뭔 경판이 저리 많대요?
돈키: 오다가 관리소에서 들었는데,
가야산의 만물상이 유명하대.
세상은 군상이 모여 사는 곳이니
그릇 크기에 따라 법문도 많아지는 법이지.
부처님의 팔만 법문을 새긴 곳이라 생각해봐.
호새: 홍보실장이 여기가
한국 화엄종의 ‘1번지’라던데,
그 뜻을 헤아리다 보면 한세상 다 저물겠어요.
돈키: 어찌 자성의 깨달음에
그리 많은 법어가 필요하겠느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처럼,
마음자리에 다다르면 내가 곧 부처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스스로 등불 삼아 진리의 길을 비추라는 뜻일 게야.
크고 넓은 시공을 초월한 깨달음,
그 화엄의 말씀을 모신 화엄십찰 중 한 곳이니,
짧은 머무름이라도 의미롭지 않겠니.
두 손을 모으면, 그곳이 곧 마음자리야.
호새: 주변의 고령토가
토기를 빚기엔 그만인가 봐요.
이박사: 고령토는 백토라서 유명하지.
이곳은 가야 6국 중 대가야국 자리야.
가야역사박물관에 가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어.
돈키: 그래, 고령토의 유래를 떠나
산과 물, 땅이 모두 제정신이 깃든 그릇이야.
흙이 이름을 가졌듯, 사람도 이름값을 해야지.
‘가야’라는 이름이 400~600년을 이어왔으니
그 고대의 역사를 새로 되새길 필요가 있어.
지배 세력이 수차례 바뀐 그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거든.
호새: 토기도 저장용만은 아니잖아요?
대장경도 고령토판에 새기면 단단하겠어요.
때도 되었는데, 쉬어가죠? –휘릭
이박사: 산채비빔밥 어때요?
가든맨1: 식사하러 가능교?
따라 오이소. 집사람이 직접 담근 장맛이 일품이라예.
호새: 오토바이 타고 와 일러주니,
이도 인연이지요. 가보자구요. –휘릭
돈키: 음식점이 한산하네요.
가든맨1: 코로나 때문에 음식점들 다 개점휴업이에요.
가든맨2: 많이 잡수이소. 입맛에 맞을 끼라예.
돈키: 저기 걸린 ‘산정불심(山靜佛心)’ 글씨, 정이 그득하네요.
가든맨1: 취미로 썼는데, 이 동네 사람들 마음이지요.
이박사: 된장 맛이 깊고, 음식 맛이 그만이네요.
가든맨2: 사람도 그렇잖아요.
장도 푹 익어야 제맛이 나듯이.
호새: 이곳 분들, 큰 깨달음 곁에 계시니
한소식씩은 하시겠어요?
가든맨1: 한소식이 별건교?
제때 꽃피고 단풍들고,
오가는 이웃이랑 웃고 지내면 그게 제일이지요.
다섯놈 키워 다 밥술이나 먹고 사니, 됐지 뭐예요.
가든맨2: 잘살고 못살고 말 없는 게 복이라예.
이박사: 부모님이 경우 밝으시니
자식분들도 복 받으셨네요. 건강하세요. –휘릭
호새: 공기 맑고, 물 좋고, 인심 좋으니
여기가 곧 자연이네요.
돈키: 자성의 소리를 낸 분들이지.
병의 근원은 집착이라는데,
출가 제자 못지않은 깨달음을 얻은 유마거사가 있었어.
법당에 두 손 모으지 않아도
본성대로 행하면 누구나 부처라 했지.
호새: 그 본성이 새벽에 깨어
새벽기도를 하나 봐요?
돈키: 그럴지도.
속담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선인들의 경전 같은 거야.
“밥술이나 먹고 살면 됐다”는 그 한마디,
그 속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게’가 있지.
이곳 가야산이 바로 해인이네.
호새: 국난 극복의 뜻으로 새긴 대장경처럼,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한 22세기 대장경을
다시 새겨보면 어떨까요?
호새: 그런데요,
‘밥술’이 밥하고 술은 아니죠?
돈키: 허허,
그 밥술이야말로
삶의불심이 아닐까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