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의 근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집에서 마시는 상수도 근원이 오대산이라면서요?
돈키: 그렇다네. 정상인 비로봉이 해발 1156미터야. 백두대간 줄기라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가지. 두물머리에서 본 남한강 물줄기의 일부가 바로 여기서 시작해 흘러간 거야.
호새: 와… 그 물이 여기서부터 흘러간다는 게 신기하네요. 얼마나 걸려 흘러갔을까요?
돈키: 글쎄. 사실 얽매인 일상의 울타리를 잊으려 집을 나섰는데, 오히려 시간을 헤아리게 되더라고. 오르막 산자락엔 소나무, 잣나무, 떡갈나무… 이름 모를 풀꽃들이 발길을 붙잡아. 사람 손길이 덜 닿은 곳이라 제 모습대로 자라나 참 자연스럽지.
호새: 산책길 분위기가 그려지네요.
돈키: 해발 800m쯤 오르니 조용해.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고, 차량도 인적도 드물어 아침 산자락이 고요하더군. 그 순간, 오랜만에 고독이 찾아와 내 안의 나를 만났지. "왜 이 길을 걷고 있나?" 스스로 묻는데, 출발시 마음이 산새소리처럼 스쳐가더라고.
호새: 다시 걷고 싶어도 쉽지 않은 길일 것 같네요.
돈키: 그럴거야. 심심할 틈 없는 산책길이야. 매미가 허물을 벗듯 하얀 살결의 자작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마치 지친 몸을 풍욕하는 듯했어. 대관령 휴게소에 닿으니 아침 9시 40분. 대관령-강릉 구간에 참여할 일행이 교통체증 탓에 늦는다고 해 쫓기던 마음이 여유를 찾았지.
호새: 아, 그래서 휴게소에서 옥수수에다 커피?
돈키: 맞아. 얼룩백이 옥수수에 커피라서 퓨전 간식이더라니까. 멍하니 주차장 윗 단을 바라보니 대관령 고개가 보였지. 집을 나서며 상상하던 공간이라 기운이 나대. 구비구비 돌아내려갈 고개라는 생각에 마음이 앞서 오르더라.
호새: 고지가 바로 코앞이니 힘이 났겠어요.
돈키: 이제 다 왔구나 싶었거든. 휴게소를 떠나 양떼목장 입구 쪽으로 가는데 발걸음이 나는 듯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