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황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남양황라”라는 말 들어본 적 있니?
호새: 황라… 황금빛 무언가를 뜻하나요? 좀 시적인데요.
돈키: 맞아. 옛 남양군, 남양만에서 이름을 빌려 장안 들판의 가을 황금물결을 표현한 거지.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참 장관이라 <화성팔경>에 선정되었는데 요즘들어 환경오염 탓에 빛이 바래 안타까워.
호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곡식이 익어가는 냄새가 섞인… 그런 풍경이겠어요.
돈키: 그렇지. 발안천과 금곡천이 만난 물길이 남양호로 흘러들고, 주변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지. 가지런히 정리된 들판길을 걷다보면 마치 삶의 주인공이 된 듯 자신을 돌아보게 돼.
호새: 듣기만 해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요.
돈키: 얼마 전 큰아버지랑 다녀왔는데, 한적한 길을 로드바이크 동호인들이 달리더라. 마라톤 훈련 코스로도 참 좋을 것 같더구나. 우리도 다시 가기로 했지.
호새: 그 들판이 마치 사람의 인생 같군요.
돈키: 맞아.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판은 장년기의 풍요로움과 닮았지. 벼를 벤 텅빈 들판은 노년의 아름다운 비움과 같아 그 비움 속엔 채움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단다.
호새: 결국 젊은 날의 열정, 장년의 결실, 그리고 노년의 베풂이 이어지는 거네요.
돈키: 그렇지. 알곡이 되려면 한여름의 뜨거움과 비바람의 시련을 견뎌야 하거든. 그 길을 걸어온 지금, 결실의 계절 바람 속에서 몸과 마음도 어루만지고 있지.
호새: 밀레의 ‘만종’ 같은 풍경이군요.
돈키: 응, 남양호를 배경으로 열두 폭 병풍이 펼쳐진 듯한 풍경이지. 이번 가을엔 꼭 사진에 담고 싶어. 남양황라 숨결축제, 바람결에 출렁이는 황금물결은 마치 우아하게 펄럭거리는 성숙한 여인의 치맛자락 같아
호새: 그 길을… 감색 재킷 걸치고 걸으면,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도 들을 것 같네요.
돈키: 그게 중년에 든 삶의 멋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