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421

  • 등록 2026.02.28 06:08:32
크게보기

눈의 행복


눈의 행복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가방 속에 시집 한 권을 넣었다.
고(故) 김남조의 <심장>.

심장이 아프다 했으나,
오늘은 눈이 먼저 뛴다.

의정회 정기모임을 마치고
평생지기와 함께 동해 쪽으로 차를 몰았다.
지인의 부름으로 나선 길,
모처럼 바다를 향하는 여정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처럼
길은 늘 뜻밖의 선물을 숨겨 둔다.

수년 전, <한반도횡단소나타>를 쓰기 위해
화성에서 강릉까지
이백팔십 킬로미터를 걸었던 기억이
차창 밖 겨울빛 위로 겹쳐진다.

산과 들과 마을이
제 빛을 천천히 되찾는다.
눈에 생기가 도니
심신에 가벼운 날개가 돋는다.

도심을 벗어나서일까.
아니면 빛이 마음을 씻어주어서일까.

강릉.

대관령의 바람,
경포대의 물빛,
동해의 수평선.
고구려 때 ‘하슬라’라 불리던 고장,

큰 바다와 밝음을 품은 이름이
지금도 숨결처럼 살아 있다.

회의를 마치고 명함이 오간다.
이름 석 자가 손에서 손으로 건너갈 때마다
어느 시인의 구절처럼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온다.
한 사람의 일생이 건너온다.”

빛에 드러난 얼굴들.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행복.

길 위에서 마주친 자작나무 숲,
산허리에 흰 숨을 두른 겨울산,
갈림길 가까이 더욱 푸르던 솔숲.

이번 길,
눈이 쉬지 않는다.

눈이 행복한 날,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빛은 사라지지 않고
가슴으로 스며든다.

겨울빛 속에서도
봄바다의 노래가 번진다.
문득 오래 즐겨 듣던 가락이 떠오른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간다.”

오늘,
심장은 아프지 않다.

눈이 먼저 웃었기 때문이다.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Copyright @2020 포에버뉴스 Corp.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로 432, 2층 202호(평동)| 대표전화 : 010-2023-1676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경순 등록번호 : 경기, 아 52599 | 등록일 : 2020.07.09 | 발행인 : 김경순 | 편집인 : 홍순권 포에버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2020 포에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forevernews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