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습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취미라 부르기엔 오래된 삶의 습관이 있다.
<마라톤과 걷기>, 세월이 흐르며 그 습관은 싹을 틔우고 잎을 키워, 어느새 전국 곳곳에 발자국을 남겼다. 길 위에서 떠오른 소회를 메모하며 기행수필의 언저리를 서성인 지도 여러 해가 바뀌었다.
취미는 길이 되었고, 길은 사람을 불렀다. 삼총사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이 동행했고, 욕심도 더해져 글은 나름의 화장을 하고 세상에 얼굴을 내밀곤 한다.
‘부산-화성’, “화성제부도-동탄’, ‘화성남양호- 안산대부도‘, 화성-강릉’, ‘수원광교산-평택호’—
이렇게 이어진 1,000여 킬로미터의 발품 이야기를 묶어 《화성소나타(1~4권)》를 출간한 지도 어느덧 8년여가 흘렀다. 코로나19 덕분이라 해야 할지, 몸을 크게 고친 탓에 모임 자리를 멀리하고 대신 국토산하를 유람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정은 확장되었으며 그 기록은《한반도소나타》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여행은 마음을 정화하는데 있어 한 방편이겠다.
깊은 물과 높은 산 앞에 서면 생각은 저절로 깊어지고, 웃자란 마음이 고개를 숙인다.총총 걸음으로 오늘만을 살아가는 인간이 대자연 앞에서니 한없이 작은 생물체임을 깨닫는다. 말 많은 세상에 생각이 정돈되는 큰길로 나선 셈이다. 집에서 출발 고향으로, 인근으로, 팔도로 길을 내다보니 시공간의 범역과 어울린 사고의 키가 한 뼘쯤 자란 듯하다.
머문 시간들이 해를 넘겼고, 공간의 범위는 경기·서울·인천 수도권을 벗어나 강원, 충청, 영·호남, 제주까지 이르렀다. 상상의 나래가 철울 너머로까지 날아올랐다.
그렇게 마음은 부자가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발길로 팔도를 돌았으니, 스스로를 건달이라 불러야겠다. ‘돈키호테’로 분하여 애마 호새와 동행한 기록이다.
걷고, 뛰고, 건너고, 오르기를 반복하며 오감과 사유가 어울려 하나의 유희가 되었다. 부풀려 말하자면, 생장터 고향은 내 삶의 오선지요, 일상의 발걸음은 그 위에의 리듬과 박자다. 누구나 자기 삶의 몸 시인이며,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저마다의 숨결로 팔도의 공간에 수를 놓아 제 향기를 피워낸다. 1년여간의 집필이었으나, 실제는 수십 년 삶의 궤적을 스케치한 셈이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요, 글쓰기는 내면을 정화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 감정이 풍성해 세상을 울릴 때, 진정 그것이 펜의 힘이며 매력이다. 첨단 기술이 세상을 바꾸어도, 그와 어울리는 인문적 바탕은 여전히 필요하다.
어두운 공간에서 쓰인 안네의 일기가 세상에 남긴 울림을 떠올린다. 이름 모를 들꽃이 제때 제 모습으로 피어나듯, 글쓰기 또한 삶의 엔돌핀을 만들어내는 방편이다.
‘한반도 유람’을 마치며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글을 쓰게 된 동기, 길 위의 소소한 에피소드, 여정의 어려움, 길에서 만난 얼굴들, 전작 <화성소나타>와 곧 태어날 <한반도소나타>, 동행했던 이들과 그리고 남겨진 아쉬움들, 무엇보다 고마움이 앞선다. 유람지마다 도움을 준 해설사분들, 사진 촬영 등 번거로운 수고를 해주신 분들, … 헤아릴 수 없는 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이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특히나 서평을 맡아준 문학박사 홍신선 교수님과 추천의 글을 보내준 역사학자 최홍규 교수님 그리고 <화성소나타>에 이어 지면을 내어준 경기도민일보사와 포에버뉴스에도 감사드리며, 번잡한 교정을 맡아준 아들.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모퉁이에 고인 아쉬움은 훗날 보정으로 남겨두려 한다. 바람이 있다면, 이 글이 계기가 되어 내 가족, 내 동네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싹트고 자라나 글동네 문화가 피어나길 소망한다. 나아가 가족 문집이나 ‘제고향 소나타’가 탄생하는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한다.
다시 한 번 돈키호태의 유람에 동행해 기운을 북돋아준 모든 인연을 헤아리며, 다른 날에 그 인연이 더 깊어지기를 소망하며 유람글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