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바꾸는 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어디로 가시나요? 길을 알아야 발걸음도 덜 무겁지요.
돈키: 네 길, 내 길, 세상에 얼굴 내밀며 출판단지로 가는 거다.
호새: 머리만 굴려 글 쓰면 되는 건 아니겠지요?
돈키: 사람들, 다들 길을 잃은 듯 허둥대고 있지. 이분법에 매이지 않고, 내면의 울림을 글에 담아야 해. 글이 곧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 하지 않니.
호새: 저기 ‘쉬어가면 어떠리’ 카페에서 잠시 숨 좀 고르자구요.
돈키: 책은 좀 읽니? 양서를 읽어야 해. 공부는 남을 위해 하는 거다.
호새: 내 살기도 벅찬데 무슨 글이랍니까.
돈키: 아니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감각이 깨어나면 마음도 깊어지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거늘, 세상사에 눈 감고 살 순 없지 않겠니?
호새: 한 세상뿐인데 꼭 그러해야 합니까?
돈키: 두 세상도 아닌 단 한 세상이니 더욱 그래야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면 세상도 흔들 수 있어. 네가 나를 만나 고생이 많구나.
호새: 주인님, 괜한 말씀 마시고 울렁울렁한 이야기나 풀어봐요.
돈키: ‘성냥팔이 소녀’ 아느냐? 성냥 세 개피로 세상 사람들 가슴을 젖게 했거든.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지.
호새: 글보다도 이 나라엔 머리 좋은 타짜들이 많잖아요? 대동강물 팔던 봉이 김선달도 계시고, 나라조차 팔아넘긴 자도 있었고, 댓글로 나라 흔들던 드루킹에 이어 요즘엔 소녀상에 ATM기 달아 챙겼다는 얘기까지…
돈키: 그러게. 참으로 기이한 인연들이야.
호새: 제 가족들이 묻힌 곳을 ‘말무덤’이라 하대요. 우리는 성냥개비만도 못한가 봅니다. 큰일을 해도 위령제 한번 없었다구요. 애꿎게 말 목을 날려 김유신 장군 기개를 높여도, 남이장군을 대장부로 띄워도 남는 게 없었죠. 저만 해도 죽어라 돈키호태 집사 노릇해도 달랑 홍당무 하나뿐이잖아요.
돈키: 그래, 잘해줘야지. 돌아보면, 말발굽 소리에 백제성이 함락되고, 이어 평양성, 천리장성, 남한산성, 동래성, 남원성도 무너졌지. 구한말에는 한성도 짓밟혔고. 그 긴 상처 탓에 타짜들의 마음이 거칠어진 게 아닐까.
호새: 주인님, 요즘 타짜들은 왜 그런 걸까요? 꼬레아가 지구촌에 이름을 올린 지 천년이 지났잖아요. 나라도 짓밟히고 긴 세월 허리도 굽혔는데, 어찌 그리 허망한 말들만 쏟아낼까요. 내 나라 내 문자로 소통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가요? 여기가 출판단지니 글로 해야 하겠지만, 말이 안 통하면 기백으로라도 소통해야죠. 제가 뒷차기를 좀 하니 조심하세요. 한반도를 확 돌려차 볼까요?
돈키: 코로나에 지쳐 열이 오르는 판에 너마저 날뛰면 되겠니? “말이 말 같아야 참말”이라는 옛말이 있지. 말도 말을 가려 해야 한다. 말 같지 않은 말로 세상마당을 흔들면 되겠니?